을유세계문학전집 13
에밀 졸라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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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는 19세기 후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이다. <꿈>(1888)은 에밀 졸라 문학의 정수라 일컫는 '루공-마카르 가'시리즈 20편 중 16번째 작품으로 종교적 신비주의를 담고 있다.
사제복 제조 장인인 위베르 부부는 혹독한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경계심이 많고 사나운 기질의 아이를 증명하는 것이라곤 빈민 구제 사무국의 아동 기록부뿐이다. 친부모의 행방을 추적하던 위베르는 아이에게 행실이 난잡한 어머니가 존재한자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는 이를 은밀한 비밀로 붙여 둔다. 출생 직후의 핏덩이 같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위베르 부부는 버림받은 아이를 수양딸로 받아들이고, 아이에게 사제복에 수 놓는 일을 가르친다. 엄격하고 냉정했던 양어머니 위베르틴은 딸이 혹여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릴까 염려하여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고, 앙젤리크는 일요일 아침 미사를 보기 위해서만 외출할 수 있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환경에 익숙해진 앙젤리크는 양부모의 보살핌 덕분에 유전적으로 거친 기질은 순화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앙젤리크는 성당 그림 유리창 수선공인 펠리시앵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들 앞에 예기치 못한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는데……
푸르른 생명력으로 피어오르던 열망은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져 갔다. 생기를 잃은 두 눈으로 망연히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가 애처롭다. 마음속에 들어찬 회한은 거부할 수 없는 욕망으로 잠식되어 한 줌의 먼지처럼 흩어진다. 자신의 존재가 소멸되어 가는 고통의 과정을 아로새기던 그녀는 절망으로 몸서리쳤다. 화사했던 그녀는 싱그러움을 잊었고, 죽음의 문턱에서 점점 시들어 갔다.

가공된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이상화된 삶의 소실점. 무중력 상태의 환멸. 본질적인 세계의 나를 지우고, 세속에 깃든 자의식에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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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찔레꽃은 장미꽃을 피울 수가 없어요." - p.220

이따금씩 그녀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믿었고, 내면에는 어떤 커다란 침묵이 깔리기도 했다. 순종적인 여자 아이가 되어 체념의 겸손함 속에서 차분하고 냉정하게 무릎 꿇은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도 했다. 그렇게 변해 가는 현명한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예전의 것이 아니라 환경과 교육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엔 피가 물밀듯 치솟으며 그녀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그녀의 건강, 그녀의 열정적인 젊음이 고삐 풀린 암말처럼 날뛰었다. 그리고 원래의 자만심과 열정으로 채워진 그녀는 알지 못하는 그녀의 근본의 격렬한 본성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도대체 왜 그녀가 복종해야 한단 말인가? 그 질문 속에서 그녀에게는 의무는 없었고, 오직 자유로운 욕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 p.254

소멸했을 것이라 믿었던 모든 유전적인 불꽃의 폭발 속에서 그녀는 환희를 느꼈다. 음악 소리가 그녀를 도취시켰고, 그녀는 그들의 찬란하고도 장엄한 출발을 상상했다. - p.273


📌덧붙임 : 에밀 졸라 소설과는 첫 대면이다. 종교적 색채가 짙고 평이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라 다소 무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번역은 훌륭했지만 에밀 졸라 특유의 문체가 심오한 만큼 집중력도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고전스러운 양상이 두드러지는 까닭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에밀 졸라의 작품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 보다는 여타의 소설을 좀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과정은 고역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읽고 나서 만족도가 상승한 작품이었다. 에밀 졸라의 다음 소설로는 <목로주점>을 선택할 예정이다.
부합하는 주제와 소설적 양상은 상이하지만, 에밀 졸라의 <꿈>을 읽으며 지난해 접했던 '미겔 데 우나무노'의 <사랑과 교육>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사랑과 교육>은 현대 교육의 문제에 대한 우나무노의 풍자적인 제언이자 인간 본성을 무시한 채 교육을 통해 천재까지도 기계로 찍어내듯이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는 교육관에 대한 우나무노의 반박 성명이다.

2016.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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