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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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25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한 장석주 시인과 박연준 시인의 여행 에세이다. 책 결혼식이라는 이색적인 타이틀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들의 이야기는 호주에서 시작된다. 한 달간 지인이 장기간 비운 시드니의 한 주택에서 머물며 겪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각기 다른 남녀의 시선으로 그려 냈다. 그들의 진솔한 에세이의 반은 박연주 시인의 글로, 나머지 반은 장석주 시인의 글로 채워진다.

두 사람의 문체는 확연히 다르다. 박연준 시인의 문체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마시멜로우 같다면, 장석주 시인은 그와 상반되는 형태로 힘 있고 절도 있는 문체를 지향한다. 장석주 시인은 인문학 저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하다 보니 그의 글에는 철학적 사유를 담은 농후함이 듬뿍 담겨 있다.

박연준, JJ를 사랑하는 한 여인은 청초한 꽃잎처럼 하늘거린다. 작은 떨림에도 몸을 웅크릴 줄 아는 그녀는 연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인다. 푸르른 대기 속의 새들의 지저귐이, 석양빛으로 붉게 물든 시드니의 하늘이 그들을 감싸안는다. 그녀는 싱그러운 풀잎이 주는 순수함을 닮았다.

장석주, p를 사랑하는 한 남자에게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녀만큼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그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의 무신경한 언행에는 p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 유칼립투스 숲 속을 거니는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의 온기가 서려 있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아득한 시드니의 이국적 정경을 그려 본다. 도시의 적막을 벗어나 광활한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고즈넉함에 젖은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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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펼쳐지고 넘겨지고 접히고 웅크린 채로, 쌓이거나 잊힌 채로, 읽히거나 방치된 채로, 가장 많은 시간은 '기다리면서' 낡아간자. 색이 바래고 미세하게 부풀어오르며 책 역시 '나이'를 갖게 된다. 우리는 같이 늙는다. - 박연준 p.55

⦁우리는 매일 밤 죽는다. 잠은 작은 죽음이다. 날마다 잠에 드는 까닭에 날마다 죽는 것이다. 아침에는 새로운 생명을 얻어 부활한다. 우리는 날마다 삶과 죽음을 번갈아 겪으면서 큰 죽음을 맞는다. 잠이 작은 죽음이라면 큰 죽음은 영원한 망각에 드는 일이다. 작은 죽음들은 큰 죽음을 위해 드는 보험이다. 우리는 잠자면서 망각과 죽음에 드는 연습을 한다. 삶이라는 전투를 끝내고 망각과 안식에 들 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작은 죽음들을 잘 치르는 사람이 큰 죽음도 잘 맞을 것이다. - 장석주 p.194

⦁사람은 저마다 제 꿈을 빚어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그 꿈을 찾기 위한 방황과 모색의 시간을 보낸다. 보통은 청소년 시기에 그것들을 끝내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을 파란만장한 방황과 모색으로 보내기도 한다. 예술가들 중에 그런 유형이 많다. - 장석주 p.206

덧붙임 : 기대감에 비해 만족도는 낮았다. 개인적으로 장석주 시인의 저서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번 도서는 그저 시드니에 대한 단상에 불과한 듯 느껴졌다. 그렇다고 책 자체가 실망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책을 읽다가 장석주 시인이 언급한 다비드 르 브로통 <걷기 예찬>을 도서관에 예약했다. 역시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른다는 진리는 명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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