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25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한 장석주 시인과 박연준 시인의 여행 에세이다. 책 결혼식이라는 이색적인 타이틀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들의 이야기는 호주에서 시작된다. 한 달간 지인이 장기간 비운 시드니의 한 주택에서 머물며 겪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각기 다른 남녀의 시선으로 그려 냈다. 그들의 진솔한 에세이의 반은 박연주 시인의 글로, 나머지 반은 장석주 시인의 글로 채워진다.두 사람의 문체는 확연히 다르다. 박연준 시인의 문체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마시멜로우 같다면, 장석주 시인은 그와 상반되는 형태로 힘 있고 절도 있는 문체를 지향한다. 장석주 시인은 인문학 저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하다 보니 그의 글에는 철학적 사유를 담은 농후함이 듬뿍 담겨 있다.박연준, JJ를 사랑하는 한 여인은 청초한 꽃잎처럼 하늘거린다. 작은 떨림에도 몸을 웅크릴 줄 아는 그녀는 연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인다. 푸르른 대기 속의 새들의 지저귐이, 석양빛으로 붉게 물든 시드니의 하늘이 그들을 감싸안는다. 그녀는 싱그러운 풀잎이 주는 순수함을 닮았다. 장석주, p를 사랑하는 한 남자에게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녀만큼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그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의 무신경한 언행에는 p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 유칼립투스 숲 속을 거니는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의 온기가 서려 있었다.그들의 글을 읽으며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아득한 시드니의 이국적 정경을 그려 본다. 도시의 적막을 벗어나 광활한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고즈넉함에 젖은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 책은 펼쳐지고 넘겨지고 접히고 웅크린 채로, 쌓이거나 잊힌 채로, 읽히거나 방치된 채로, 가장 많은 시간은 '기다리면서' 낡아간자. 색이 바래고 미세하게 부풀어오르며 책 역시 '나이'를 갖게 된다. 우리는 같이 늙는다. - 박연준 p.55⦁우리는 매일 밤 죽는다. 잠은 작은 죽음이다. 날마다 잠에 드는 까닭에 날마다 죽는 것이다. 아침에는 새로운 생명을 얻어 부활한다. 우리는 날마다 삶과 죽음을 번갈아 겪으면서 큰 죽음을 맞는다. 잠이 작은 죽음이라면 큰 죽음은 영원한 망각에 드는 일이다. 작은 죽음들은 큰 죽음을 위해 드는 보험이다. 우리는 잠자면서 망각과 죽음에 드는 연습을 한다. 삶이라는 전투를 끝내고 망각과 안식에 들 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작은 죽음들을 잘 치르는 사람이 큰 죽음도 잘 맞을 것이다. - 장석주 p.194⦁사람은 저마다 제 꿈을 빚어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그 꿈을 찾기 위한 방황과 모색의 시간을 보낸다. 보통은 청소년 시기에 그것들을 끝내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을 파란만장한 방황과 모색으로 보내기도 한다. 예술가들 중에 그런 유형이 많다. - 장석주 p.206덧붙임 : 기대감에 비해 만족도는 낮았다. 개인적으로 장석주 시인의 저서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번 도서는 그저 시드니에 대한 단상에 불과한 듯 느껴졌다. 그렇다고 책 자체가 실망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책을 읽다가 장석주 시인이 언급한 다비드 르 브로통 <걷기 예찬>을 도서관에 예약했다. 역시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른다는 진리는 명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