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하다'는 술어가 주는 막연한 느낌을 가만히 떠올려 봤다. 손끝에 닿을 수 없는 무언가. 한없이 멀어져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 희뿌연 안개에 휩싸여 형태가 불분명한 무언가. 의미는 모호해도 공통적인 점은 그리움의 대상에 다다르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마음이자 독자의 마음이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화자를 자신의 분신으로 내세움으로써 여러 형태의 목소리로 변주하여 시 속의 정서로 녹여 낸다. 그 마술적 감각으로 언어와 언어의 연쇄 작용을 쉼 없이 혹은 거침없이 내보이는 시인 중 한 명이 바로 이제니 시인이다. 이제니 시인의 특징적인 면모는 시어가 고여 있지 않고 끝없이 흘러감에 있다. 의미 없음으로 귀결되는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생동하며 끌어올려지고 발화되는 형태로써 자신을 찾기를 갈망한다. 시인들은 결국 말해지지 않는 것을 자신만의 시 세계에 표출하고, 그것을 정제된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사람인 것이다 아마 시인 자신은 '그리하여 그녀가 흘려 쓴 것들'이 독자에게까지 흘러들어 그들 자신이 흘려 썼을, 흘려 쓸 시어로 삶의 잔해 속에서도 밝게 빛나길 바랄 것이다.나무 식별하기그 나무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무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평생 제 뿌리를 보지 못하는 나무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눈과 그 귀와 그 입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무는 자라고 있었다.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밤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있다. 나는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너도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밤과 나무는 같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늘과 그늘 사이로 밤이 스며들고 있었다. 너는 너와 내가 나아갈 길이 다르다고 말했다. 잎과 잎이 다르듯이. 줄기와 줄기가 다르듯이. 보이지 않는 너와 보이지 않는 내가 마주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꿈에서 본 나뭇잎이었다. 내가 나로 사라진다면 나는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이라고 생각했다. 참나무와 호두나무 사이에서.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사이에서. 가지는 점점 휘어지고 있었다. 나무는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밤은 어두워 뿌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침묵과 침묵 사이에서. 어스름과 어스름 사이에서. 너도밤나무의 이름은 참 쓸쓸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