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좀 예민해서요 - 감각 과민증 소유자의 예민하고 예리한 일기
이현동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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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과민증 소유자의 예민하고 예리한 일기

감각 과민증이란 질병은 아니지만 증상을 지칭하는 학술 용어라고 한다. 유난히 예민한 오감을 지닌 경우 감각 과민증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목차엔 기억, 청각, 시각, 예지, 감정, 아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난 시각은 예민하지 않지만 기억, 청각, 예지, 감정이 예민해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특히 후각이 예민한 편인데 주로 냄새로 그 상황을 기억하는 편이거나 분위기를 기억한다. 그냥 예민한 편이구나 생각했는데 이런 용어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책이 작고 예쁜데 속지가 두꺼워 무게가 꽤 나간다.

 

감각이 좀 깨어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예민'이라는 어휘를 가져다 붙이기엔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랄까. 아니, 아쉽다기보단 뭔가 부족하다고나 할까. '뭔가'라기보단 '꽤'라고 해야 할까. 적확한 단어가, 말이 떠오르지 않지만 확실히 '예민'으론 약하다.

예민하다고 확실히 느끼게 된 계기는 없지만 그냥 계속 예민해왔던 것 같다. 난 후각이 가장 예민하다. 중학생 때 반에 주인을 잃은 체육복이 덩그러니 있어 냄새를 맡았더니 친구 K의 냄새였다. 친구들이 어떻게 알았냐며 변태냐고 한 이후론 냄새로 체육복을 찾아주지 않았다. 냄새에 기억을 저장한다. 집에 나무 침대를 들여 한창 나무 냄새가 났을 때 힘든 일이 있었어서 그 뒤로 이 냄새가 나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원목 냄새를 기피하게 됐다.

어딘가에 입장했을 때 불현듯 다가오는 그 느낌. 그리 편하지 않은 듯한 그 느낌. 작은 소리, 약한 불빛, 옆 사람의 체취에 나의 감각이 쏠리는 듯한 그 느낌. 저기 저 모르는 사람이 내 얘기를 하는 거 같아 놀란 당신. 그렇다면 그대 역시 감각 과민증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예민한 사람은 큰 소리에도 귀를 아파하지만 작은 소리에 더 신경을 쓴다. 나같은 경우 큰소리로 말하는 소리는 여러 소리가 섞이면서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괜찮다. 하지만, 작은 소리로 말하면 대화 내용이 다 들려 신경이 쓰이게 만든다. 기숙사에서 밤늦게까지 친구와 속닥이는 룸메를 보면 뭐라 하지도 못하고 그냥 나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버렸다. 귀에 자체 필터링이 있었으면. 그보다 조용히 좀 해줬으면.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어마어마한 역사를 남긴 봉준호 감독의 한마디가 내게 울림을 줬다. 감각이 지나쳐, 지나치게 개인적인 존재일 수도 있는 내게 위안이 되기도 한 그 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렇다. 난 그저 조금 독특하거나, 그저 조금 창의적일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역시 이 책도 상당히 개인적인 저자의 일기였다. 본인의 예민함보단 예민한 본인의 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아쉽긴 했다. 난 예민한 사람이어서 이해가 가지만,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예민이란 무엇인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민한 사람은 '왜이렇게 예민해'라는 말에 예민하기 때문에!

예민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불편한 게 더 많았다. 특히 난, 왜 이렇게 예민해? 라는 말에 더 예민했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뭘 자꾸 먹고, 먹으면 움직이기 싫어지고, 움직이기 싫어지면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으면 체력이 안 좋아진다. 체력이 안 좋아지면 잠이 많아지고 멍해지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더 예민해지고. 세상이 예민한 사람에게 예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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