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오수영 지음 / 별빛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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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독립출판에서 이런 산문집을 내는 경우, 필력이 굉장히 좋거나 마음에 와닿는 글이 많다. 최근 이런 산문집을 아주 좋게 읽은 기억이 있어 이 책도 많은 기대가 됐다. 저자는 자신이 깨지기 쉬운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신중하고 조심스럽다고 이야기한다. 또, 연약한 마음은 나약함의 상징이 아닌 남들보다 섬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선물이라 믿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은 이런 마음은 현실에서는 나약함의 상징이 되기 쉽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너무 착하고 여린 사람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혼자서 몰래 앓는다.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서서히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급기야 깨져버린다. 한번 깨져버린 마음을 한 조각씩 주워 담아 다시 이어붙여 볼 수는 있겠지만 한번 깨졌던 흔적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그 사람의 여생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처음 책을 펼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읽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책 더 읽고 싶을 정도로 이런 산문집에 빠져 있다. 깨진 마음은 언젠가 다시 깨져버리기 쉽고, 깨진 파편은 다시금 심장을 찔러오기 마련이다. 다시 이어붙여 너덜너덜해진 심장은 흉측해보이지만, 그럼에도 온전한 나만의 것이다. 나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래서 난 내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날이 선 마음은 결국 다시 자신을 괴롭힐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매 순간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생생한 기억은 그때의 감정과 분위기, 심지어는 피부에 닿던 공기의 감촉까지도 온전히 되살려, 우리가 지나간 특정한 시간으로 돌아가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안겨주기도 한다. 현실 속 삶의 방향은 분명 앞을 향하고만 있는데 기억과 마음은 과거 속에서 방향을 잃고 끊임없이 방황한다.

성격과 기억력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민할수록 기억하는 게 많아지고 기억에 연연하게 된다고 한다. 자존감이 낮아질수록 좋지 못한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자신의 현재를 붙잡는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게 하고 더 좋은 경험을 하게 한다. 좋았던 경험은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아 내게 좋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내 좌우명이 '기회가 있을 때 좋은 경험을 하자' 이다. 그냥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살자인데 이런 기억은 내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나를 최고로 성장하게 하는 것은 돈이다.

분명 이제는 트라우마의 수명이 다했다고 느껴져서 방심한 채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팔팔한 모습으로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의 존재가 행복 속에서도 기필코 불안을 발굴하게 만들고, 게다가 무작정 가시를 뻗쳐대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까지 다치게 하는 고삐가 풀린 괴물로 성장한다.

문득 찾아온다. 밑도 끝도 없이 불안해지는 마음과 빨라지는 심장 박동, 두려움. 지금은 빈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지만 학생 때는 수시로 찾아올 정도로 날 괴롭혔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그게 공황장애의 일부이자 트라우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으려 하는데 젓가락을 손에 쥘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진다.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울렁임이 트라우마였다는 것을 몰랐다는 사실이 날 슬프게 했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이야기하고 털어놓지만, 어린 시절의 난 어떻게 이겨냈을까.

어김없이 연말은 찾아오고, 작년보다 용기는 줄어들고, 미련은 많아지고, 그렇게 세월은 나를 관통하며, 많은 것들을 어지럽히는데, 그럼에도 사랑의 대상과 그 관계를 향한 희망만이 또다시 새롭게 다가올 시간 앞에서 움츠려들지 않게 하고,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도 이렇게 삶에 완벽하게 젖어들고.

난 연말이 좋다. 작년보다 못한 1년이어서 내게 나쁜 기억을 남겼을지라도. 1년이 지나고 1년 간 고생했던 결과가 나올 때. 그 결과가 만족스럽거나 좋을 때 난 그 연말이 더 좋아진다. 나쁜 기억의 1년은 더 멋진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리셋 버튼처럼 말이다. 힘들었던 1년을 마무리하고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연말정산, 연말 시상식, 크리스마스 그리고 나의 1년 다이어리가 완성된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비소설이나 책을 잘 못 읽는 사람은 시집이나 이런 산문집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산문집이 자신에게 맞지 않을 경우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고, 자신에게 맞을 경우 공감을 선물해준다. 나에겐 충분한 공감과 아름다움을 선물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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