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의 소모 - 우울을 삼키는 글
이나연 지음 / 메이킹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울을 삼키는 글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 소개가 없었다는 것이다. 작가 소개나 작가의 말 등 작가의 이야기가 없어서 신선했다. 온전히 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인터넷 책정보에서 찾아보니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고, 글 모임에서 글을 적고 있다고 한다. 우울을 삼키는 글. 나도 때때로 우울을 삼키며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풀어놓고는 한다. 자신의 감정을 적어내려 가는 것만으로도 이 감정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우울을 삼켰을지. 담담하게 읽어나가기 좋은 책인 것 같다.



생각이 범람하여 질식할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생각은 파도처럼 밀려와 제 발치를 두드리는데, 발을 뗄 생각조차 없습니다. 눈을 감고, 숨을 참으면 꼭 우울의 근원에 도달할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울음이 터져 참을 수 없는 날에는 차라리 내가 세상에 없길 기도합니다. 하루는 또 이어지겠죠.


한 걱정이 들기 시작하면 그 생각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끝까지 나를 쫓아와 괴롭히고 다시 생각나게 한다. 내 우울은 손에서 시작해 심장에서 멈춘다. 손이 떨리면 심장에게 전해지고 심장은 그 감정에서 달아나고픈 듯 달려간다. 무섭다. 내 우울의 감정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문득 느껴지면 그날이 바로 내 생각이 범람하는 날이다. 의도적으로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울음은 모두가 잠든 새벽이 되어서야 터진다. 내 우울은 남모르게 숨어있다 새벽이 되면 떳떳해진다.



기분은 하늘을 뚫을 것처럼 올라가다가 미친 듯이 추락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괴물이 된 기분이야. 마냥 좋은 사람도 아니고 또 나쁜 사람도 아니야. 이런 내가 싫어, 나는. 타인과 함께면 애써 밝은 사람인 것처럼 웃고 떠드는 것도 힘들지만 집에 돌아와서 혼자 우는 것도 힘들어. 마음도 공허한데 내가 존재하고 숨을 쉬는 이 집도 공허하니까.


며칠 전에도 적었지만 모두에게 완벽한 사람이기는 어렵다. 내 글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가면을 쓰고 하루를 살아내고 가면을 벗는다. 모두에게 완벽할 사람일 필요 없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내려 놓기가 어렵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전하는 게 위로의 말밖에 없다. 오늘 내 우울의 형태는 어땠는가. 우울과 친해지자. 슬픔 다음의 감정은 희망, 희망 다음의 감정은 기쁨이다. 슬픔이 없으면 기쁨도 없다. 슬픔은, 기쁨을 만나러 가기 위한 과정이다. (갑자기 인사이드 아웃 생각난다)




좀먹어 버린 기억을, 마음을 되찾으려 많은 밤을 달렸다고. 그땐 선명하게 색이 존재했었는데,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온통 회색이었다. 그 기억이 조금 더 행복을 담았으면 하는 마음에.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두었더니 빛이 바랬다. 손끝으로 애써 선을 이으려 해도 삐뚤기만 했다.


끊임없이 달렸지만, 뒤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 푸른 빛인 줄 알았는데 회색 빛이었다면, 난 어떤 마음이 들까. 크게 채우려는 마음은 삐뚤다. 작게 채우려는 마음은 불안하다. 내 마음이 커졌으면. 내가 더 대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난 이런 우울을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면 함께 우울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렇게 담담하게 풀어놓는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함께 우울을 느낀 사람은 분명 다시 우울을 이겨내고 내일을 또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도 수고했다. 고생많았다. 때로는 벽에다 얘기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막막하고. 외로운 하루를 보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열심히 살았을 거야. 우리 인생에게 위로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