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딘 리클스 지음, 허윤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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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의학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긴 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삶을 누리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만족감은 단순히 지표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 또는 삶의 밀도라는 비가시적인 개념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진정으로 살았다고 느끼는 시간을 합산해 보면, 인생이 의외로 짧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많은 시간을 '살지 않은 채'로 보내며, 대개 어정쩡한 상태에서 인생이 저절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자신의 미래를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간적 근시안이 가장 큰 문제이다. 흔히들 말하는 'Carpe diem'이나 'Seize the Day'의 본래의 의미가 일부에서 퇴색되었다. 이 표현들은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지, 미래를 희생하고 현재를 무작정 즐기라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도, 막상 행동하지 않는 예비적인 삶은 언제나 우리의 미래를 갉아먹는다. 다른 곳, 다른 사람들, 다른 직업, 다른 삶의 방식을 기대하면서,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일에도 전념하지 못한 채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는 현상, '언젠가는 되겠지' 하며 미래의 나에게 막연히 기대를 거는 상태를 책에서는 '언젠가니즘'이라 부르며 경계하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도 뜨끔하였다.

 

사람들은 보통 물 위를 걷거나 공중을 걸으면 기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진짜 기적이란 물 위나 공중을 걷는 게 아니라 땅 위를 걷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날마다 흰 구름, 초록 잎사귀, 아이의 호기심 어린 까만 눈망울 그리고 우리의 두 눈까지, 모든 게 기적이다.

- 책에서

 

우리 삶에 끝이 없고, 무한하다면 '카르페 디엠'이나 'YOLO' 같은 개념은 필요 없을 것이다. ,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없는 셈이 된다. 귀중한 것은 흘려보내기 마련이다. 아무런 지장 없이 편히 살아갈수록, 정체된 실험실의 쥐들처럼 살다가 생명체의 멸종이든 문화나 가치의 소멸이든 붕괴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고 짧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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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생트의 정원 문지 스펙트럼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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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의 나무들, 들꽃의 향기, 눈 내리는 소리…. 이 모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풍경들이 글로 전달되었을 때,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황홀할 것이다. 상상은 현실을 넘어서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보스코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배경 묘사와 인물들 간의 심리적 묘사는 우리를 환상 세계로 이끈다. 전지전능한 시점에서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경험은 그저 덤일 뿐이다.

이 작품은 세기 초 프로방스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부유하지 않지만, 생기 넘치는 인물들이 훈훈한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곳. 그러나 이 고요한 마을에 텅 빈 영혼을 가진 한 소녀가 버려진다. 마을 사람들은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그녀를 감쌌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채우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의 주인공인 소녀의 이름은 ‘이아생트’. 하이신스 꽃의 이름을 딴 이 소녀는 마법사에게 납치되어 이름과 영혼을 빼앗기고, ‘펠리시엔’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소녀를 찾아 헤매던 청년 콩스탕탱은 그녀의 진정한 이름인 ‘이아생트’를 부르며 그녀의 이름을 되찾아준다. 그 순간, 그녀의 기억과 영혼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한다. 『이아생트의 정원』은 그녀가 본래의 세계로 돌아와 진정한 귀환을 이루고, 굳은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을 담은 이야기다.

❝이아생트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심연의 고요를 깨뜨리는 생명력이 그녀의 두 눈에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내가 보았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

- p.388

그녀는 본래 이름으로 불리며 존재의 의미를 찾았고, 그녀를 둘러싼 정원은 다시금 생명의 온기로 가득 찼다. 존재는 그 자체로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참 자아가 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미약한 인간과, 그 인간 사이의 연대 의식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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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죽는가 - 노화, 수명, 죽음에 관한 새로운 과학
벤키 라마크리슈난 지음,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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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죽을까? ‘불로장생이나 불로불사는 차지하고라도, ‘불로는 하고 싶다. 이 책은 앞서 제기한 질문의 통합적 답변을 하는 벤키 라마크리슈난 박사의 저서이다.

노화와 죽음에 대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저자는 분자생물학 전문가로서 유전자와 단백질, 세포 수준에서의 노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장수 생물의 사례를 들어 인간 수명의 한계를 탐구한다.

텔로미어 길이 감소,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세포 노화 등의 분자적 기전을 통해 노화와 수명 제한의 관련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또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노화 과정을 늦출 방법을 제시한다. 예로, 특정 유전자 변형이나 항산화 물질을 통해 실험동물의 수명을 연장하는 사례와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하여, 노화 관련 생물학적 과정과 이에 대한 실질적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은, 단순히 노화와 죽음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오래 사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세속적인 장수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종종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삶의 질적인 측면을 간과하곤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삶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노화 과학의 최전선을 보여주면서도, 그 한계와 윤리적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이 책은 생물학적 통찰과 철학적 성찰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유한한 수명과 그 속에서 찾아야 할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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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사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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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라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마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녀의 대표작인 연인은 나에게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고, 부영사라는 작품의 제목은 낯설지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충분했다. 작품을 완독 후, 나는 마치 혼돈의 꿈에서 방금 깨어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 작품이 독자에게 난해함을 주는 이유는 바로, 걸인 소녀, 부영사, 대사 부인이라는 세 주인공의 운명이 얽히고설킨 구조 때문이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갑작스레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서로 연관성 없는 내용이 얽혀 흘러간다. 옮긴이 최윤은 그의 해설에서 "이들 인물 사이에는 표면적인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지만, 이야기의 뼈대가 그들을 하나로 엮고 있다. 작품 속 혼돈 가운데서 질서를 찾아내고, 서로 다른 인물들 사이의 본질적인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독자의 역할"이라고 언급했다.

 

독자로서 이 역할을 수행해보니, 이 세 인물이 공통으로 겪는 결핍과 상실, 그리고 깊은 고독함이라는 주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걸인 소녀는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자신의 아이마저 버렸다. 부영사는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버림받았지만, 유일하게 고모와는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 유망한 피아니스트였던 대사 부인은 남편을 따라 세계 곳곳을 떠돌며, 자신과 연결된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한 존재로 변해버렸다. 이들은 모두 마치 존재감이 사라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작품 속의 '철책'은 인종과 계급의 격리와 차별을 상징하는 중대한 기호로 해석되었다. 철책의 바깥에 있는 걸인 소녀, 철책 안의 대사 부인, 그리고 철책을 향해 나아가는 부영사.

이들은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철책의 내외부와 연결되며,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점을 형성한다.

 

인도차이나라는 무대는 존재적 고통이 깊게 뿌리박힌 공간으로 여겨졌다. 상실과 파괴, 광기, 무관심 등 인간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모호한 결말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마지막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였다.

 

조각나고 파편화된 언어, 욕망, 광기, 사랑 등의 주제는 뒤라스가 일생을 걸쳐 추구해 온 세계관이자,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적 특성을 나타낸다. 작가의 세계관과 배경,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이 작품을 더욱 깊이 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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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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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상황에서 한국을 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을 경고한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후속작이 나왔다.

이 책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을 계기로 쓰였다. 20211, 선거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을 점거했고, 트럼프는 이러한 행동을 부추겼다. 이는 21세기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진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정치인들과 극단주의 세력의 묵인으로 인해 후퇴하고 있다.

특히 선거인단 제도, 의회 구성의 불균형, 게리맨더링, 필리버스터 등 여러 제도적 요소가 소수의 이익을 강화하며 대다수의 의지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제도적 문제들은 극단주의 세력과 손잡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선거 과정의 불투명성, 정치적 극단화, 그리고 특정 집단의 과도한 대표성이 주요 문제로 꼽힌다. 예를 들어, 다수대표제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의 선거 제도는 소수파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점은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가 특정 그룹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다수의 의견을 간과하는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는 선거에서 패배한 후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여당과 국회의 반응을 봐도 그렇다. 이는 미국에서 일부 전직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이러한 행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평화로운 권력 이양과 공정한 경쟁을 위협한다.

 

 

또한, 정치적 극단주의와의 결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극단주의 그룹과 협력하여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국 내에서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묵인 또는 지지를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정치인들의 행위와 비슷한 문제를 초래한다.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기회주의자와 극단주의자들이 눈에 띄고 있다. 이들의 존재와 이들이 주도권을 잡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건강한 상식과 합리성을 가진 다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적 정치 문제는 미국과 유사하게 선거의 공정성 문제, 특정 집단의 지나친 대표성, 그리고 정치적 극단주의와의 결탁에서 기인한다. 이 문제들이 양국에서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를 존중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과정을 보장해야 한다. 의식 있는 국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적극적인 활동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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