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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위대한 개츠비
우린 삼청동을 걸었었죠. 먹쉬돈나에서 떡볶이를 먹고, 전통차를 마시고, 교육박물관에서 교복입고 사진을 찍으며 놀기도 했어요. 한옥 마을을 구경하고, 예쁜 새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 전시회도 구경했죠. 글구 길거리 뽑기에서 뽑은 우리의 커플링^^ 이 얘길 갑자기 왜하나면, 그날 봤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기억하세요?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은 이상한 마차에 오르죠. 예술이 번성했다는 19세기 말의 벨에포크 시대로 돌아간 주인공은 한 바에 도착하는데요, 콜 포터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let's do it, let's do it love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그리고 소개받는게 바로 피츠제럴드 부부였어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영화를 통해 유명해졌지만,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은 역시 '위대한 개츠비'라고 할 수 있죠. 당대에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건 데뷔작인 '낙원의 이쪽'이었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스콧의 사후, 그의 대표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주목받게 되었다고 해요. 스콧은 아버지가 판사였던 명문가의 딸 젤다를 사랑했지만, 사회적 신분의 차이로 결혼을 거절당했어요. 그리고 발표한 '낙원의 이쪽'이 성공하게되자, 젤다에게 청혼하여 결혼에 이르죠.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젤다는 똑똑하고 발랄했지만, 부유한 집안의 딸 특유의 사치스러움이 있었나봐요. 스콧은 데뷔작의 성공으로 번 돈을 그녀와 금새 다 써버리고, 이후 출판사에 책 몇권을 내줄 것을 약속한 뒤 가불하는 방법으로 삶을 살아간대요.
이러한 피츠제럴드 부부의 모습은, 위대한 개츠비에 개츠비와 데이지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어요. 소설속에서 데이지는 부유한 명문가의 딸인 반면, 개츠비는 소위 가난한 서민에 불과했죠. 개츠비는 신분의 벽과 1차대전의 참전으로 인해 사랑하는 데이지와 오랫동안 이별하게 되었고, 그 사이 데이지는 비슷한 명문가의 자제인 톰과 결혼하게 돼요. 개츠비의 이름은 사실 제임스 개츠. 그는 야심이 있는 청년이었죠. 희망찬 미래를 끊임없이 이미지화 하고, 그러기 위해 이름도 그럴듯하게 바꿔요. 데이지라는 상류층 여성과의 사랑 역시, 그의 이미지화의 결과인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의 사랑이 순수하지 않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데이지와 헤어진 뒤 개츠비는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고,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벌이죠. 많은 돈이 투자된 파티의 비밀은, 그 목적이 실은 오가는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로부터 데이지를 만날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였다는 거에요. 그는 평생을 오직 데이지와 만날 순간을 위해 살아왔고, 그의 사랑은 데이지의 살인을 대신 뒤집어써주고, 그녀를 위해 죽기에까지 이르러요.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건, 그의 사랑은 소설의 제목처럼 위대하게 보이네요.
소설의 배경인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는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떠올리게 해요. 개츠비의 집은 웨스트에그에, 데이지와 톰의 집은 당연하게도 이스트에그에 있죠. 그녀의 집에서 개츠비의 집이 내려다보이지만, 매일밤 파티를 벌여도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아요. 아무리 개츠비가 부를 축적했어도, 그의 부가 예컨데 귀족인 아버지의 유산 상속과 같이, 그들이 생각하기에 고상한 방법으로 축적된 것이 아니기에, 데이지는 톰을 선택해요. 현대의 자기계발서들은 끊임없이 말하죠. 바라는 것이 있으면 간절히 이미지화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계급이 없이 동일한 출발선상에 있다고 믿곤 하지만, 실은 자본은 갈수록 공고하게 세습되고 있고, 더이상 출발선은 같지 않죠. 현대사회에도 귀족은 있어요. 개츠비는 신흥부자라도 되었지, 이제 그런 신흥부자가 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죠. 자기계발서들은 부의 세습, 나아가 신분의 세습이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시선을 돌리고, 성공과 실패를 오직 개인에게 전가시키곤 해요. 멸시받는 것은 너의 탓이다, 그러니 계속 소망하고, 계속 노력해라. 하지만, 희망이라는 눈가리개 앞에, 개인을 지치지 않는 부품으로 쓰려는 사회의 못된 속셈이 보이는 건 저뿐일까요? 개츠비의 비극은 이러한 자기계발서의 반례가 되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위대한 개츠비라고 하면 '위대한 캣츠비'라는 강도하 작가의 만화가 떠오르기도 해요. 반전이 충격적이었던 이 웹툰은, 위대한 개츠비와 제목의 유사성에 비해선 그다지 닮은 점이 많진 않아요. 닮은 점이 있다면, 사랑과, 사랑의 비극에 대해 그렸다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웹툰은 흥미로워요. 생각난김에, 개츠비나 데이지의 사랑과는 또 다른, 캣츠비, 하운두, 페르수, 선, 그리고 페르수의 남편의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을거에요.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cats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