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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만나면 경영이 즐겁다 - 개인의 행복과 조직의 성과를 이끄는 감사경영
이미영.김만석.김병욱 지음 / 프로방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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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원리로 설명하는 감사 실천의 효과 <감사를 만나면 경영이 즐겁다-김만석,이미영,김병욱>

 

 최근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시작으로, SNS를 통해 여러가지 릴레이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엔 감사 릴레이도 있었다. 누군가 삶에서 감사한 점에 대해 5가지 정도를 적고 후발 주자를 지목하면, 그 주자 역시 감사한 점 5가지를 적고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식이다. 부담을 주는 일부 릴레이들과는 다르게, 감사 릴레이는 부담없이 작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에서 감사했던 일들을 돌아보고 행복한 감정을 갖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을 기꺼이 릴레이에 동참하게 하였다. 그런데 릴레이에 참여했던 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무조건 삶을 긍정하라고 말하는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의 말일 경우 더욱 그렇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삶의 어려움들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려 한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회의적인 자세로 삶에 임하는 것 역시 좋지 않다. 삶에 의욕을 생기게 하고, 사회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희망이요, 희망의 근간에는 생에 대한 감사와, 변화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내가 그러하듯, 누구나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개인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삶을 활기차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이것이 피상적으로만 와닿았기 때문이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것이 진짜 좋을까? 왜 좋을까?' 이 책은 그러한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감사 실천의 효과를 원리로 설명하고 입증해보자!' 

 

 이 책은 김만석, 이미영, 김병욱 저자 3인방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쓰여졌다. '어떠한 방식으로 감사하는 것이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을까?', '실천을 지속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이러한 고민들은 실제로 감사하는 삶을 실천해보지 않고는 갖기 힘든 고민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여타의 긍정심리학 책들이나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 단순하게 하면 된다는 식이 아니라, 원리로 납득시키고, 다양한 사례로 입증하며, 개인과 회사 조직 내에서 지속적으로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해준다. '선택의 원리''긍정해석의 원리', '파동의 원리' 등을 통해 감사의 효과를 설명하고, '습관의 원리''감사행동 4단계 원리'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준다. 또한 부록에서는 '행복나눔 125' 를 소개하고, '감사 경영 program'을 제시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많은 기업들과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책은 어려움 속에서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고민하고 있는 사람과 기업 모두에게 적합하다. 저자들은 말한다. 감사를 통해 개인이 행복해지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조직과 회사 역시 행복해진다고. 그리고 진짜 그렇게 되었다고. '가화만사성'이라 하였다. 옛 선인들도, 개인으로부터의, 가정으로부터의 행복이, 직장과 사회에 영향을 미침을 인지하고 계셨다. SNS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감사 릴레이를 작성했듯, 부담없는 마음으로 저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자. 어느덧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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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2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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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몇군데 해외 여행을 다녀왔지만, 그저 관광을 다녀온 느낌이에요.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지, 작가님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듣고나면 이번 방학, 어디로든 제 발로 떠나고 싶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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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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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백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이에게

 

 추리 소설 좋아하시나요? 범인이 누구일지 궁금해하며 나름의 추리를 해보고, 이 작가는 정말 천재라며 감탄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얘 범인)이런 낙서가 되어 있어 분노했던, 그런 기억들이 혹시 있으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이러한 다른 추리 소설들에 비해,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던져 줘요. 소설은 피해자의 어머니인 여교사의 독백으로 시작돼요. 학생 중 범인이 있다며 말하는 그녀의 독백 속에는, 단 두명의 학생 이름만이 등장하죠. 집이 전파상을 하는 '와타나베'군과, 피해자 마나미에게 솜토끼를 사주는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던 '시모무라'군 말이에요. '고백'은 이처럼 누구나 추리 할 수 있을만한 힌트를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바로 다음 장에서, 다른 학생의 입을 통해 범인이 이들이었다고 대놓고 말하죠. 범인이 누구인지 초반부터 알아버렸으니, 재미없어서 책을 덮게 되지 않냐구요? 아니요, '고백'은 마지막장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만큼 흥미롭게 읽혀요. '고백'이 추구하는 추리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는 추리가 아니에요. 그 추리는 가해자가 어떠한 심리로 가해를 하게 되었는지, 피해자의 복수 이후엔 또 어떠한 심리로 살아가게 되는지, 그 심리에 대한 추리죠. 말씀드렸다시피, 가해자는 두명, 와타나베 슈야와 시모무라 나오키에요. 슈야가 그가 발명한 전기충격 기구로 마나미를 기절시키고, 나오키는 기절한 마나미를 수영장에 빠뜨리죠. 어린 마나미는 결국 익사하게 돼요. 둘은 범행의 공모자이긴 하지만 상당히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어요. 자라온 가정환경도, 범행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상태도, 복수를 당한 후의 태도변화도 모두 다르죠. 

 

 우선 슈야의 경우를 볼까요? 그의 어머니는 재능있는 과학자였어요. 연구가 벽에 부딪쳤던 어느날 교통사고까지 당한 그녀는, 평범한 전파상인 아버지와 결혼하여 슈야를 낳고, 일을 그만두었죠.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는 여전히 지적인 열망이 있었어요. 그녀는 슈야를 키우며 논문을 썼는데, 그것으로 교수직 제의까지 받게되죠. 하지만 아이를 버리고 떠날 수가 없다며 거절해요. 얼마전 보았던 최윤영 아나운서의 인터뷰가 떠오르네요. 그녀도 집에서 육아를 하다 보니 우울했다고 해요. 아이가 마냥 예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까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대요. 결국 일과 육아를 함께하니 그제야 숨통이 조금 트인다는 내용이었어요. 슈야의 어머니도 그런 우울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문제는 그럴 때 그녀가 슈야를 학대했다는 것이죠. 그리곤 슈야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에 목놓아 울어요. 어린 슈야가 자라온 가정환경은 이러했어요.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스스로도 어머니의 발목을 잡은 것은 자신이라며 슬퍼하죠. 결국 학대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되자, 슈야의 어머니는 '슈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는 규칙을 어기더라도 달려올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요. 그 이후 슈야의 모든 삶은 오직 어머니가 달려올 그날을 위한 여정이었어요. 그는 과학자인 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발명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멀리 있는 어머니에게까지 소문이 들리도록 파괴적인 것이어야 했죠. 전기충격기를 이용한 마나미의 살인 사건이 조용히 묻히자, 그는 새로운 계획을 하고, 결국엔 학교에 폭탄을 설치하기까지 해요. 복수를 당한 것은 아무 상관 없었어요. 오히려 그것으로 어머니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좋으니까요.

 

 나오키의 경우 오히려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죠. 나오키의 어머니는 '내 자식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이었어요. 항상 나오키를 자랑하고 칭찬했죠. 나오키가 성적이 좋지 못하자, '넌 착하다'라고 칭찬하며, 성적을 발표하는 학교에 편지를 쓰기까지 했던 분이에요. 그녀는 어쩌면 평범한 어머니일수도 있어요.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자식 교육에 힘쓰는 수많은 강남 학원가의 어머니들을 알고 있으니까요. 나오키의 슬픔은, 자신이 그러한 어머니의 기대에 못미친다는 것을 아는데 있어요. 그로인해 발생하는 괴리감은 스스로를 점점 더 보잘것없게 느껴지게 하죠. 똑똑한 와타나베가 접근하자 슈야는 기뻤어요. 그와 함께 있으면 자신도 비슷한 등급의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거든요. 와타나베가 발명품으로 나쁜놈들을 응징하자고 하자, 마치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양 들떴어요. 존재의 가치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계획한 일이 끝난 후, 슈야가 그를 이용했을 뿐이라며 친구로서의 가치를 부정했을 때, 그는 무너지고 말아요. 여린 자신을 부정하고 슈야보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절해있었을 뿐인 마나미를 수영장에 던지죠. 유코의 복수 이후 나오키는 등교를 거부했어요. 종국에 나오키가 어머니를 찌른 까닭은, 자신과 같이 공포에 떨고 있을거라 여겼던 슈야가 학교에 등교했다는 말을 들은 것과, 어머니가 자신에게 '실패'라는 말을 꺼낸 것 때문이었죠. 부여잡고 있던 자신의 가치라는 끈이 끊어져버리는 순간이었거든요. 어쩌면 나오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사태를 돌이킬 수 없이 확정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하죠.

 

 이처럼 다른 둘에게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그건 '고독' 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해요. 사람은 아무것도 주어진 것 없이 세상에 던져졌어요. 그리고 언젠간 다시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운명이죠. 그렇기에 우린 존재의 불안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해요. 그렇기에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확인받고 싶어하는데, 타인은 이러한 역할을 해줘요. 그런데, 그 누구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절대적인 고독감을 느끼게 되겠죠. 그러한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의 쓰임을 알아준다고 여겨지면 집착하게 되고요. 슈야는 그 대상이 어머니였고, 나오키는 일시적이긴 했지만 슈야였던 것이죠. 슈야는 자신의 과학적 재능을 인정받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도, 친구들도, 마지막 객관적인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유코선생님조차, 발명품의 가치를 칭찬해주지 않죠. 그래서 전국발명품대회에 출전에 수상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회적 사건의 그늘에 가려져 생각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자 좌절하고 말아요. 나오키는 인정받고는 싶지만, 그럴만한 자신의 재능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데에 문제가 있었죠. 자유로운 환경에서 차분히 그가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켜봐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어머니의 지나친 관심과,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학교의 환경은, 그를 빠르게 누군가의 관심을 받게하는 방향으로 내몰리게 했어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 받지 못한 그들은 절대적으로 고독했어요.

 

 이러한 사정을 생각하면 그저 고독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 두 가해자의 입장도 모두 이해가는 면이 있죠. 안타까운 마음에, 이들의 범죄에 대해 이를 참작 사유로 삼아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그것은 제3자의 입장일 뿐, 죽은 마나미의 어머니인 유코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들의 범죄는 단순히 우발적인 것도 아니고 계획적인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대상은 아무것도 모르고 연약한 어린아이를 향했죠. 인터넷과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으로 인해 어린 학생들의 강력범죄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형사미성년자제도는 한계가 있죠. 유코는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에이즈환자인 자신의 남편의 혈액을 두 가해자의 우유 속에 집어넣어요. 그리고 그것은 여렸던 나오키에겐 효과적인 복수가 되죠. 그러나 그녀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원치 않았던 남편이 이를 몰래 저지한 것을 알자, 슈야를 향한 다른 복수를 준비하게 되요. 슈야가 학교에 설치했던 폭탄은 그녀에 의해 슈야의 어머니의 연구실로 향했어요. 

 

 자신의 손으로 꼭 복수하겠다는 유코의 입장은 이해가 되죠. 그러나 이러한 비극을 원천적으로 막고, 복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사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육아와 일이 보다 병행하기 쉬운 환경이라면 어땠을까요? 교수직을 제의하며 슈야를 함께 데려가 이후 양육과 학업에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면요. 슈야의 어머니는 학문적 성과를 올리면서도 슈야라는 가능성 있는 과학자를 키울 수 있었을 거에요. 또, 나오키의 어머니가 말한 적이 있듯, 학교에서 착한아이의 인품도 인정해 준다면요? 학교의 교육이 비단 인품만이 아니라, 개인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비교하여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봐주는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나오키와 같은 학생을 지킬 수 있었겠죠.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슈야와 나오키와 같은 아픔을 지닌 아이들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여성의 사회진출은 늘어나지만 육아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아직은 미비한 까닭에, 아이를 부담으로 여기는 워킹맘들이 많이 있죠. 게다가 게임 속에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컴퓨터 게임으로 내몰리는 많은 아이들이 있어요. 이러한 아이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행복한 사회를 위해, 한방향으로 몰아가는 사회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경제가 어려울수록, 발전에만 신경쓰느라, 교육에 대해서는 무뎌지기 쉬우니까요. 저도 머지않아 워킹맘이되고, 아이를 키우게 될테죠. '고백'을 읽고 받은 이러한 느낌을 잊지 않으려구요.

 

2013.2.15

청하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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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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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우린 삼청동을 걸었었죠. 먹쉬돈나에서 떡볶이를 먹고, 전통차를 마시고, 교육박물관에서 교복입고 사진을 찍으며 놀기도 했어요. 한옥 마을을 구경하고, 예쁜 새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 전시회도 구경했죠. 글구 길거리 뽑기에서 뽑은 우리의 커플링^^ 이 얘길 갑자기 왜하나면, 그날 봤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기억하세요?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은 이상한 마차에 오르죠. 예술이 번성했다는 19세기 말의 벨에포크 시대로 돌아간 주인공은 한 바에 도착하는데요, 콜 포터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let's do it, let's do it love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그리고 소개받는게 바로 피츠제럴드 부부였어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영화를 통해 유명해졌지만,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은 역시 '위대한 개츠비'라고 할 수 있죠. 당대에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건 데뷔작인 '낙원의 이쪽'이었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스콧의 사후, 그의 대표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주목받게 되었다고 해요. 스콧은 아버지가 판사였던 명문가의 딸 젤다를 사랑했지만, 사회적 신분의 차이로 결혼을 거절당했어요. 그리고 발표한 '낙원의 이쪽'이 성공하게되자, 젤다에게 청혼하여 결혼에 이르죠.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젤다는 똑똑하고 발랄했지만, 부유한 집안의 딸 특유의 사치스러움이 있었나봐요. 스콧은 데뷔작의 성공으로 번 돈을 그녀와 금새 다 써버리고, 이후 출판사에 책 몇권을 내줄 것을 약속한 뒤 가불하는 방법으로 삶을 살아간대요.

 

 이러한 피츠제럴드 부부의 모습은, 위대한 개츠비에 개츠비와 데이지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어요. 소설속에서 데이지는 부유한 명문가의 딸인 반면, 개츠비는 소위 가난한 서민에 불과했죠. 개츠비는 신분의 벽과 1차대전의 참전으로 인해 사랑하는 데이지와 오랫동안 이별하게 되었고, 그 사이 데이지는 비슷한 명문가의 자제인 톰과 결혼하게 돼요. 개츠비의 이름은 사실 제임스 개츠. 그는 야심이 있는 청년이었죠. 희망찬 미래를 끊임없이 이미지화 하고, 그러기 위해 이름도 그럴듯하게 바꿔요. 데이지라는 상류층 여성과의 사랑 역시, 그의 이미지화의 결과인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의 사랑이 순수하지 않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데이지와 헤어진 뒤 개츠비는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고,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벌이죠. 많은 돈이 투자된 파티의 비밀은, 그 목적이 실은 오가는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로부터 데이지를 만날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였다는 거에요. 그는 평생을 오직 데이지와 만날 순간을 위해 살아왔고, 그의 사랑은 데이지의 살인을 대신 뒤집어써주고, 그녀를 위해 죽기에까지 이르러요.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건, 그의 사랑은 소설의 제목처럼 위대하게 보이네요.

 

 소설의 배경인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는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떠올리게 해요. 개츠비의 집은 웨스트에그에, 데이지와 톰의 집은 당연하게도 이스트에그에 있죠. 그녀의 집에서 개츠비의 집이 내려다보이지만, 매일밤 파티를 벌여도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아요. 아무리 개츠비가 부를 축적했어도, 그의 부가 예컨데 귀족인 아버지의 유산 상속과 같이, 그들이 생각하기에 고상한 방법으로 축적된 것이 아니기에, 데이지는 톰을 선택해요. 현대의 자기계발서들은 끊임없이 말하죠. 바라는 것이 있으면 간절히 이미지화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계급이 없이 동일한 출발선상에 있다고 믿곤 하지만, 실은 자본은 갈수록 공고하게 세습되고 있고, 더이상 출발선은 같지 않죠. 현대사회에도 귀족은 있어요. 개츠비는 신흥부자라도 되었지, 이제 그런 신흥부자가 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죠. 자기계발서들은 부의 세습, 나아가 신분의 세습이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시선을 돌리고, 성공과 실패를 오직 개인에게 전가시키곤 해요. 멸시받는 것은 너의 탓이다, 그러니 계속 소망하고, 계속 노력해라. 하지만, 희망이라는 눈가리개 앞에, 개인을 지치지 않는 부품으로 쓰려는 사회의 못된 속셈이 보이는 건 저뿐일까요? 개츠비의 비극은 이러한 자기계발서의 반례가 되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위대한 개츠비라고 하면 '위대한 캣츠비'라는 강도하 작가의 만화가 떠오르기도 해요. 반전이 충격적이었던 이 웹툰은, 위대한 개츠비와 제목의 유사성에 비해선 그다지 닮은 점이 많진 않아요. 닮은 점이 있다면, 사랑과, 사랑의 비극에 대해 그렸다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웹툰은 흥미로워요. 생각난김에, 개츠비나 데이지의 사랑과는 또 다른, 캣츠비, 하운두, 페르수, 선, 그리고 페르수의 남편의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을거에요.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cats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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