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
베튤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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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The persional is political) 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감성적인 비눗방울의 표지를 통해 말랑말랑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나의 추측이 무색하게 저자 베튤이 펼쳐 놓은 것은 굉장히 실제적이고 비통섭적인, 그래서 정치적인 이야기들이다. 


저자 베튤은 튀르키예 이주민이자 본국의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힌 가정의 자녀이다. 또한 한국에서 사회학과 연기를 전공하여 글쓰고 연기하며 살고 있는 여성이다. 한국에서 정형화 된 틀에 속하지 못하는 이주민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울거나 웃지 못할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저자는 이렇게 자신을 설명한다. 


p.57 

여자들이 단단해져야만 별것 아닌 게 아닌 일들이 별것 아닌것으로 치부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그 ‘별것’들을 당당하고 발칙하게 발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나의 예민함과 언제나 타인을 향하는 감수성 레이더와 때때로 불편함을 주는 정의로움과 그로 인한 희망과 끝끝내 이런 마음을 품게 만드는 나의 다정. 그 모두를 한껏 지켜내야겠다고 생각했다.


p.108 

“그간 나의 가슴을 웅장하게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모두 이런 나의 위치에 기반한다. 나의 쓸모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들 말이다. 경계 바깥의 존재로서 경계 안을 드나들 여지가 있는 탐구자이자 경계의 안팎에 대해 발화할 수 있는 번역가. 그래서인지 나는 나를 ‘경계에 있다’고 정체화하길 좋아한다.”


어긋남을 즐기며 타협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삶을 ‘블랙코미디’라 칭하며, 불행에 잠기기보다 직시하여 나란히 걸어갈 줄 아는 사람.
예민하지만 다정하고 싶은 사람.
이 모든 말들이 저자 베튤을 설명하는 다른 형태의 언어들이다.

“그런데 왜 글을 쓰는 거야?”
한 스승의 질문에, 저자는 답답해서 글을 쓰게 되었고 결국 책도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던 수많은 순간들.
그때마다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은 뒤섞여 그녀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다.
글쓰기뿐 아니라 연기 또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통로라는 점에서, 그녀가 지향하는 삶의 형태이자 감정의 분출구가 되었을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경계’에 서게 된다.
나 또한 이민자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며 그 감정을 경험했다.
그래서일까. 그런 경험이 없는 이들보다는 이 책을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조금은 쉬웠던 것 같다.
상처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 쉽게 배려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아이러니.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면,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경계를 선이 아닌 면으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이 여성에게 호감을 느꼈고,
그녀의 이야기에, 나아가 비슷한 경계 위의 이야기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p.266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로 인해 새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상상력이 어딘가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은, 또 그것이 어쩌면 누군가의 실질적인 삶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저자의 이야기와 분투를 통해 나는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야 할 삶의 또 다른 예를 발견했고,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비슷한 다른 모양의 삶 또한 상상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베튤은 자신이 바랐던 ‘경계를 조금 더 넓히는 일’에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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