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50
퍼트리샤 튜더산달 지음, 김수경 옮김 / 에코리브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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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오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라고 말하고 싶으나 실은 멀지 않았다. 물론 아직은 사십이 더 가깝고 또 아직은 내가 전성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별 탈 없이 하루하루 꾸준히,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오십은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피해갈 도리는 없을 것이다.

오십은 젊은 것도 또 완전히 늙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다. 그래서일까. 60~70세 정도의 사람에게 지나간 일을 물어보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삶에 비해 쉰 살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고 한다. <여자 나이 50>을 읽다가 시험 삼아 어머니(현재 66세)에게 여쭈어보았더니, 정말로 쉰 살 전후 몇 년 동안은 별 대단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고 답변하셨다. 오십은 별로 드라마틱한 나이가 아닌가 보다.

1940년생인 퍼트리샤 튜더산달은 <여자 나이 50>에서 50~70세를 영어로 '제3의 연령'이라 부른다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평가받지 못하는 인생의 시기(늙음)에 접어들어, 버려지고 남겨질 것이라 느낄 때 사람들은 저항한다. 적어도 지금의 상태를 지키려 애를 쓴다. 일정 나이를 지나면 우리는 실제보다도 젊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사람은 이를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기도 한다. 옛날과 똑같다고 설득하려 "나이란 건 말야, 스스로 느끼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다. 결국 이렇게 우리는 인생의 전문가, 엑스퍼트(expert)가 될 기회를 놓치고 있다. 엑스퍼트란 본래 '경험이 있는 자'를 뜻하며 경험한 지식을 얻는 것이나 사용한 경험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 23쪽

약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쇠약해지면서 늙어가기 시작하는 자기 자신을 솔직히 인정하고 때로는 주위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것, 그게 바로 오십부터 해야 할 원대한 발달과업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십은 하릴없이 쇠퇴해가기만 하는 연령대라고 보기 어렵다. 원기 왕성한 이십도, 비교적 쌩쌩한 삼십도, 보다 원숙해진 사십도 도무지 감당해낼 수 없는 걸 해내야 하고 해낼 수 있는 연령대일 것이다.

<여자 나이 50>에 의하면 오십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임박한 황혼에 대한 두려움으로 동요한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10년쯤 더 살아야 하므로 오십대의 원대한 심리발달과제를 피해가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 자연으로는 임신을 하기 어려우며 피부는 쭈글쭈글 늘어지고, 무릎관절은 욱신욱신 쑤신다. 거울 속 모습과 마음속에 그리던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다. 튜더산달은 갑자기 다가오는, 늙는다는 깨달음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다.

자전거가 없어! 누군가 훔쳐간 게 틀림없어! 자전거 주차장에서 내 자전거가 보이지 않자 나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찬찬히 찾아보니 자전거는 거기에 있었다. 단지 그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내가 찾던 자전거는 그것보다 훨씬 새 것이고, 더 깨끗해야만 했다. 내 자전거가 찌그러졌다고? 다 닳아버린 타이어라니? 전조등도 비뚤잖아. 칠이 여기저기 벗겨져있을 리 없는데…. 그런데 들고 있던 열쇠가 딱 맞으면서 내 자전거임을 확인해주었다. - 11쪽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태양은 아직 머리 위에서 비추고 있지만, 밤바람은 이미 불기 시작했으며, 가끔씩 느껴지는 밤의 냉기에 몸서리치는 일도 있다. 늙음의 징조를 깨닫는 것은 바로 이런 때다. -13쪽

우리 모두는 나이 들어간다. 매일매일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일매일 자신의 나이를 실감하며 살아가는 건 아니다. 아니, 실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의 아이러니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많은 나이를 솔직히 인정하는 순간, 바로 그 나이가 주는 (다른 나이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인생의 신비를 경험하게 되는 것. 나이 드는 경험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오십을 성실히 통과할 때 비로소 사람은 지혜로워진다는 것….

이제 눈을 감고 자기 자신을 향해 진심으로 물어볼 일이다. 지금보다 젊어(어려)지길 원하는가? 아니면 지혜로워지길 원하는가? 젊음이 아니라 진정으로 지혜를 원한다면, 그럼 정작 지혜란 게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지 아는가? <여자 나이 50>은 대답한다. "지혜는 자신의 실제적인 능력과 생활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 즉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에 저항하지 않는 것(145쪽)"이라고.

그래, <여자 나이 50>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쩌면, 나이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진심으로 자신이 도로 젊어지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 오마이뉴스 책동네 기사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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