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이 1
토리 헤이든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1월의 어느 날, 이웃집 아이를 유괴한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는 세 살 난 남자아이를 숲으로 끌고 가 나무에 묶은 채로 불을 질렀다. 병원에 실려 간 남자아이는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고, 소녀는 수감되었다. - 11쪽

<한 아이>의 첫대목에 인용된 신문기사다. 특수교육교사 토리 헤이든(Torey L. Hayden, 이 책의 저자)은 이 신문기사를 읽었을 때 말세가 따로 없다며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 일이 자신과 관계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12쪽).

며칠 전, 나는 '버지니아 텍 총기난사 사건'과 '조 군'에 대한 숱한 신문기사(사건의 정황을 보도하는 기사로부터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분석기사까지)들을 열심히 찾아 읽을 때 말세가 따로 없다며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 일이 나와 관계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버지니아 텍 총기난사 사건'과 나는 실제적으로도 직접적으로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실상 관계가 없다. 아들이 자기엄마를 칼로 찌르고, 아버지가 친딸을 성폭행하고, 어떤 여자가 다른 여자의 미모를 시기해 그녀의 얼굴에 황산을 들이붓고, 군대의 상사가 자신의 부하를 구타하는, 요즘도 날마다 보도되는 사건기사들이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는 않은 것처럼···.

그러나 <한 아이>를 읽으며,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불행한 사연들이 나와 어떻게든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아이>의 헤이든처럼 쉴라를 직접 대면하게 되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그런 불행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 저지른 사건의 피해자가 되거나 그 사건의 내막을 접하는 방식으로써라도 나는 그들과 언제든 연결되는 것이다.

분노와 두려움을 쌓아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 <한 아이> 겉그림.
ⓒ 아름드리미디어

헤이든은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헤이든의 반에는 악성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피터(8), 두 번째로 자살하기 위해 마신 하수구 세척제로 인해 식도가 녹아버려 목에 인공튜브를 단 타일러(8), 유아자폐증을 앓고 있는 맥스(6), 자폐인지 정신지체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증세를 보이는 거대몸집의 프레디(7), 얻어맞으면서 성적 노리개가 되어 살아온 사라(7), 소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수잔나 조이(6), 물과 어둠과 자동차와 진공청소기 그리고 침대 밑의 먼지를 끔찍이 무서워하는 윌리엄(9),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아 길모어(9) 등이 공부하고 있었다.

헤이든을 돕는 보조교사로는, 학교측이 배정해준 멕시코계 미국인 안톤과 무서운 엄마 밑에서 자라고 있는 여중생 휘트니가 있다. 특별하고 어수선한 이 반에 저 신문기사의 여자아이, 유괴범이자 방화살인 미수범인 6살짜리 꼬맹이 쉴라가 신입생으로 오게 된다. 주립병원에 들어갈 자리가 나서 수용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관리요청'된 것이었다.

쉴라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쉴라는 더 이상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반대로 모두의 시선을 끌 만큼 나쁜 짓만을 골라서 저지른다. 사랑을 받지 않는 한 거절도 당하지 않을 테니까….

금붕어들의 눈알을 연필로 파내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대고, 다른 어린이들을 넘어뜨리거나 때리고, 오줌을 싸고, 악취가 진동하도록 목욕을 하지 않고, 시험지를 끝도 없이 찢는다. 쉴라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고속도로에 자기를 버렸고 알코올중독자인 아빠는 '나쁜 아이인 자기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구타를 일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쉴라의 집에 한 번 다녀온 사회복지사는 쉴라의 몸에 학대받은 흔적이 하나도 없다고 알려준다. 물론 헤이든은 다르게 생각한다.

그런 흔적이 하나도 없다고? 그럼 그 아이가 왜 우리 반에 들어왔는가 말이다. 그게 흔적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걸 흔적이라고 해야 하는가. - 103쪽

'그런 흔적'이란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분노나 두려움을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쌓아두고 싶어서 쌓아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어린이시기를 그나마 생존해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존전략이라는 게 눈에 보일 리 없다.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에릭과 딜런, 버지니아 공과대학 조승희, 과잉 '얼차려'에 목매다는 몇몇 군인이나 체육대학의 일부 선배들, 신체폭력을 포함한 기자교육에 열을 올리는 어떤 경력기자들, 그리고 우리들이 매일 읽게 되는 인터넷 댓글 중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어떤 글쓴이들, 어쩌면 분노나 두려움을 마음속에 쌓으며 살아온(내지는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본다.

가장 큰 문제는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

물론 사람인 이상 살아가면서 분노할 수 있다. 두려워할 수도 있고, 화낼 수도 있다. 아니, 때때로 분노하고 화낼 수밖에 없다. 너무 당연하다. 분노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고 전혀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귀신'이거나 '시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노나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할 때가 문제다. 조용조용한 말로 표현될 시기를 이미 놓친 폭력적 에너지가 문제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분노나 두려움이 출구를 못 찾고 마음속에서 응어리가 되어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한편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분노나 두려움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무의식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정당한 분노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며 인식하지도 못한다('이유 없이' 화가 난다고 말한다든지…).

그러면 느끼지 못하며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어떻게 있다고 확신하는가? 나는, 부정적 감정들이 일단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의 내면에서 그냥 자동으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입구로 들어간 것은 출구를 통해 바깥으로 나와야 하는데, 입구만 열어놓고 출구는 꼭 막아놓은 채 살아왔다면 어디선가 엉뚱한 데에서 구멍이 뚫려 그것이 출구노릇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해일 수도 있고, 자살일 수도 있으며, 신체폭력이나 언어폭력, 성폭력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든 잔혹하고 폭력적인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헤이든은 자신의 페니스가 잘 삽입되지 않는다고 쉴라의 성기에 칼을 댄 쉴라의 삼촌 제리를 생각하면서, 또 쉴라의 아버지를 관찰하면서 '가해자·피해자'의 판가름이 간단치 않음을 깊이 고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중략)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 한 부분을 떠안고 있었다. 찻숟가락만한 그 작은 핏자국은 나에게 황금보다도 소중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인생이란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 것인가,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새삼 허탈감에 젖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열한 시였다. 시간이 겨우 요것밖에 안 지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쉴라를 무릎에 앉히고 산수문제를 풀다가 피를 발견한 것이 불과 한 시간 전의 일이었던 것이다. - 242쪽

다섯 달 전만 해도 쉴라가 가해자였고, 다른 아이는 피해자였다. 지금 채드(헤이든의 남자친구)가 제리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격분)을 틀림없이 소년의 부모도 가졌을 것이다. 사건의 흉폭성은 묵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쉴라한테서 내가 찾아낸 상흔을 제리한테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람 다 결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악으로만 똘똘 뭉친 인간은 아니었다. 제리도 쉴라처럼 분명히 희생자일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고 문제가 한층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 244~245쪽

쉴라만 희생자가 아니었다. 쉴라의 아버지도 누군가가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이었다. 일찍이 한 소년의 아픔과 괴로움을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 277쪽


제리 삼촌, 아빠 등 피해자들의 폭력성 안에서 피해자이자, 동시에 다른 아이를 유괴하고 살해하려 했던 가해자로서의 쉴라는 사실상 천재소녀였다(모든 지능검사에서 최우수점수를 받음, 일반인의 지능지수를 훨씬 뛰어넘음). 헤이든은 쉴라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쉴라의 표현대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 헤이든은 쉴라의 행동들을 하나하나 이해해가기 시작한다. 일례로 쉴라의 시험지를 찢는 행동이 오답을 두려워하는 데서 기인하는 행동임을 알아챈다(오답이 종이에 기록되니까).

나쁜 일과 좋은 일, 모두엔 끝이 있음을 믿으며...

그렇게 둘이 잘 지내던 차, 장애학생들이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도록 하는 교육지침이 내려졌다. 이제 특수아동들만을 모아서 따로 교육하던 헤이든의 반은 해체되어야 했다. 헤이든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난생 처음으로 사랑받은 공간이었던 '우리 반'의 해체를 슬프게 거부하던 쉴라는 마침내 헤이든의 사려 깊은 친구가 담임으로 있는 학교로 이동된다.

그렇게 하여 <한 아이>의 결말은 기분 좋은 해피엔딩을 이루는 것 같다. 그런 다음, 7년 뒤, 헤이든은 쉴라를 찾아간다. 그 내용은 <한 아이2>에 실려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한 아이2>를 읽지는 못했는데 꼭 읽어볼 생각이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니, 해피엔딩의 속편치고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 같다. 좋은 일엔 끝이 없길 바랐는데….

쉴라가 고개를 들었다.
"왜 좋은 일에는 항상 끝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모든 일이 다 그래."
"나쁜 일은 안 그렇잖아요. 나쁜 일은 사라지지 않아요."
"사라져. 네가 거기에 매달리지 않으면 사라져." - 291쪽


나쁜 일은 늘 사라지지 않고, 좋은 일은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것 같은 현실, 그게 진짜 우리의 현실일지라도 나는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헤이든 선생의 말을 믿어야겠다. 왜냐고? 믿고 싶으니까! 그리고 믿을 만하니까! 그리고,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한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오마이뉴스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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