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나는 길을 찾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에 빠져 허위적거리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거창하게 구도의 길을 걸어간 것은 아니었으며、 구도의 길을 걷기에는 세파에 너무나 찌들어 있는 영혼이었던지라 나와는 동떨어진 별나라의 이야기였고、 구도는 코흘리게 어린애들 동화책 한 언저리에 나오는 신선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속의 허무맹랑한 거짓말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직장이라고 다니고는 있었지만、 그날이 그날인 무료한 일상의 늪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오뉴월 아스팔트에 달궈져 축축 늘어져 내리는 시간 속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닥치는대로 책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내 젊음의 끝자락은 그리도 참담했다。 그렇게 한숨만이 내 친구였던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문득 줌잉되어지는 제목에서 내 손길은 멈춰졌고、 그 좁디 좁은 책측면으로 <무탄트>라는 빛을 발하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환상적인 제목의 책과 만나게 되었다。원심력에 이끌리듯 나는 곧장 가까운 의자에 앉혀졌고(정말 그랬다。 눈에 뵈지 않는 뭔가의 힘에 이끌려 앉혀졌다。)、 단숨에 2장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숨이 멎을 듯한 절박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탁' 소리를 내며 책을 덮고 말았다。 그 후、 <무탄트>를 한번 일독하는데 무려 한달이란 시간을 투자했다。별로 어렵지도 않은 평이한 문장의 소설책을 한달씩이나 걸려서 읽은 적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내가 별로 길지도 않은 소설 한권을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탄트>속에 형이상학적인 철학이 내포된 구절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고등수학식이 포함되어 있어서도 아니었다。 어린시절 좋아하는 과자를 아무도 몰래 숨겨두고 조금씩 꺼내먹는 아이 같은 마음이었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어린아이 때는 먹기가 아까워서 아꼈고、 <무탄트>는 읽기가 아까워서 아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수년이 지난 후、 나는 「뭐든 소중한 것은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향한 감정일지라도、 결코 한번에 전부 줘서는 안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류시화 시인의 2001년 번역판으로 얼마전에 다시 읽어봤습니다。 이로써 모건 여사의 안내를 받으며 <무탄트> 세계로의 두번째 동반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무탄트> 여행길에 동참하실 분은 어서오세요。 요금은 무임승차이고、 커피 한잔이면 족할터……
발행일 : 1990년 6월 1일지은이 : 르 클레지오옮긴이 : 김화영펴낸곳 : 세계사책정가 : 4,500만원I S B N : 8933830138 [절판 또는 품절]
1。내가 죽으면 나를 알고 있었던 이 대상들은 더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되겠지。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생명이 꺼져버릴 때、 내게 주어졌던 이 통일성을 내가 마침내 흩어버리게 될 때 소용돌이는 중심을 바꿀 것이며 세계는 그 자체의 존재방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긍정과 부정의 대결、 소란、 빠른 움직임、 압박들이 이제는 더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의 차디차고 불타는 흐름이 멈추게 될 때、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던 저 숨은 목소리가 말하기를 그치게 될 때、 흉물스럽고 고통스러운 이 모든 소란이 잠잠해질 때、 세계는 간단하게 이 상처를 되아무릴 것이며、 부드럽고 한가한 새 살의 층을 넓혀갈 것이다。 더이상 과거의 잠재적 나를 초월하여 가기 위한 무슨 상처자국도 추억도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여행하지 않으리라。 나는 이제 현실의 천을 찢는 일을 그만 둘 것이며 내 의식의 충동은 마치 우스꽝스러운 새 울음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이 문득 잊혀져버릴 것이다。 촘촘하고 검은 상보는 툭 떨어져버릴 것이고、 나는 그게 떨어지는 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이기도록 생겨먹지 않았다。 나는 지탱하기에 너무나 센 전류를 받아서 버쩍 달아오른 가는 줄、 사물의 모서리들을 비치고자 하다가 스스로 타버리는 가는 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줄이 끊어지고 장님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때 개개의 대상은 계속하여 옛날의 그것이 될 것이며 내 어떠한 시선도 그것을 창조할 수 없어질 것이다。 여러 해들、 여러 세기들을 초월하여、 현실적인 거리를 초월하여、 나를 초월하여、 앞도 뒤도 아닌、 원인도 결과도 아닌、 절대로 그 인간이 아닌 채。 나는 벌써 나의 무력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나의 상상불가능 속에서 포기해 버렸다。 나는 벌써 제거되었고 박탈되었고 공허에로 넘어갔다。 나는 벌써 죽었다。 그렇다。 살아 있기 위해서 내가 한 모든 몸짓마다 수천번 죽었다。 ♧ 침묵 1장 전문(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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