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 호주 참사람 부족과 함께 한 백인 의사의 감동 여행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1995년 나는 길을 찾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에 빠져 허위적거리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거창하게 구도의 길을 걸어간 것은 아니었으며、 구도의 길을 걷기에는 세파에 너무나 찌들어 있는 영혼이었던지라 나와는 동떨어진 별나라의 이야기였고、 구도는 코흘리게 어린애들 동화책 한 언저리에 나오는 신선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속의 허무맹랑한 거짓말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직장이라고 다니고는 있었지만、 그날이 그날인 무료한 일상의 늪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오뉴월 아스팔트에 달궈져 축축 늘어져 내리는 시간 속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닥치는대로 책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내 젊음의 끝자락은 그리도 참담했다。 그렇게 한숨만이 내 친구였던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문득 줌잉되어지는 제목에서 내 손길은 멈춰졌고、 그 좁디 좁은 책측면으로 <무탄트>라는 빛을 발하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환상적인 제목의 책과 만나게 되었다。
원심력에 이끌리듯 나는 곧장 가까운 의자에 앉혀졌고(정말 그랬다。 눈에 뵈지 않는 뭔가의 힘에 이끌려 앉혀졌다。)、 단숨에 2장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숨이 멎을 듯한 절박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탁' 소리를 내며 책을 덮고 말았다。 그 후、 <무탄트>를 한번 일독하는데 무려 한달이란 시간을 투자했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평이한 문장의 소설책을 한달씩이나 걸려서 읽은 적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내가 별로 길지도 않은 소설 한권을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탄트>속에 형이상학적인 철학이 내포된 구절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고등수학식이 포함되어 있어서도 아니었다。 어린시절 좋아하는 과자를 아무도 몰래 숨겨두고 조금씩 꺼내먹는 아이 같은 마음이었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어린아이 때는 먹기가 아까워서 아꼈고、 <무탄트>는 읽기가 아까워서 아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수년이 지난 후、 나는 「뭐든 소중한 것은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향한 감정일지라도、 결코 한번에 전부 줘서는 안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류시화 시인의 2001년 번역판으로 얼마전에 다시 읽어봤습니다。 이로써 모건 여사의 안내를 받으며 <무탄트> 세계로의 두번째 동반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무탄트> 여행길에 동참하실 분은 어서오세요。 요금은 무임승차이고、 커피 한잔이면 족할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