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리즈먼: 이단의 역사
그레이엄 핸콕.로버트 보발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06년 5월
절판


카타리파는 가톨릭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존중했다. 카타리파 교도들이 스스로 "선한 기독교도"라고 부른 까닭이 여기 있었다. 그러나 예수가 그들의 종교에서 차지한 위치는 극적으로 달랐다. 가톨릭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사는 육신이 된 말씀"이었다. 카타리파 교도들은 이를 철저히 거부했고 예수를 순수한 성령으로 숭배했다. "선한 신"의 방사(放射)인 투사체 혹은 환영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우리 가운데 살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물질적 현신을 철저히 부인했다. 그들은 또한 예수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가톨릭의 가르침도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들은 예수가 물리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십자가에 처형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중요한 영적 상징인 십자가도 카타리파는 존경은 고사하고 의미도 부인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로마 교회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오도하여 숭배하도록 만든 우상이자 혐오스러운 고문 도구였다.-pp.44-45쪽

기독교도들이 믿는 전능하고 지선한 유일신과 달리 카타리파 교도들은 선한 신과 악한 신의 두 가지 신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원론"을 믿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두 신은 각자의 영역에서만 권능을 발휘했으며, 상대방의 영역에서는 거의 무력했다. 선한 신의 영역은 전적으로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이며 빛으로 충만해 있으며, 선한 신의 창조물인 인간의 영혼이 유래한 곳이었다. 악한 신의 영역은 지구 자체이며, 그 위의 물질세계와 모든 육체적 생활이었다. 즉 암흑과 재앙으로 가득하고 고통과 벌이 존재하는 지옥 같은 곳이었다. … 다시 말해 교황은 선한 신의 종이 아니라 악마의 대리자로서 지상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목적은 우리의 영혼을 사후(死後)에 정신적이고 빛으로 충만한 천국의 영역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속여 인간의 몸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여 물질세계의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오직 카타리파 신앙의 최고 경지에 입문할 때 얻는 특별한 그노시스(즉 영적인 지식)에서 절정을 이루는 일생 동안의 자기 부정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p.45쪽

교회는 몇 세기 동안 지옥의 공포를 이용해 중세 유럽 인들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마음을 닫도록 만들었다. 사실 카타리파의 이원론으로 개종함에 따라 그러한 해방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카타리파의 이원론은 지구 자체보다 더 낮은 지옥은 거론하지 않았다. 지구는 "인간이 빠지는 의식의 가장 낮은 차원"이었다. 즉 지구는 우리의 영혼이 이미 심한 고생을 겪었고, 과거의 수많은 인간 환생의 함정에 빠져든 시련과 고통의 장소였다. 다시 말해 지옥은 가톨릭 교회가 정의한 적때문에 보내지는 미지의 행선지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와 있지만 언젠가 탈출할 운명인 이미 알려진 장소였다.

이러한 교리에 의해서 카타리파는 신도들의 죽음에 대한 모든 공포를 일거에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암흑시대 내내 서유럽 문명의 발전을 막았던 미신과 귀신학의 굴레도 깨뜨렸다. 습관적인 종교행위의 모든 측면으로부터 거미줄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던 카타리파 신도들은 교회의 찬송이 "순진한 사람들을 속인다"고 말하면서,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서 바치는 가톨릭의 헌금은 비합리적인 돈의 낭비라고 비웃었다. -pp.58-59쪽

그들(카타리파)에게 야훼는 숭배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며, 물질세계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악한 신의 수많은 호칭 가운데 하나인 악마-사탄-루시퍼와 동의어로 간주된다. 그들은 널리 알려진 독선적이고 보복적이고 폭력적이고 항상 잔인한 행위를 통해서 그 신을 판단했다. 이러한 행위들을 설명한 구약성서는 가차없이 사악한 야훼의 속성을 찬양한 노래였다. 카타리파와 보고밀파 신도들은 이 성서를 구제불능의 사악한 경전으로 생각했다. 구약은 이 사악한 신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집필되었으므로 기성 기독교들이 채택한 것처럼 구약을 성서로 채택한 것은 악마에 대한 완전한 굴복이었다. 그러므로 카타리파와 보고밀파는 구약성서를 배척했고 구약성서의 권위에 입각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신약성서에 의존했고 극단적인 일부 분파의 경우에는 신약 가운데서도 몇몇 특정한 부분에만 의존했다.-p.83쪽

마니교와 보고밀파 및 카타리파가 인간의 곤경에 관해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그 근저에는 공통적인 불변의 주제가 보인다. 신자와 완덕자, 모든 청취자와 선택자가 볼 때, 그 모든 주제의 중심에는 정신적인 오염을 극소화하고 영혼을 향상시키고 강화하고 정화하고 궁극적으로 (커다란 투쟁 후) 해방시키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세 가지 종교에서 하나의 체제를 받아들여 따르며, 하나의 틀 안에서 노력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체제와 틀은 3세기의 마니교 초창기부터 1,000년도 더 지난 후대의 유럽에서 중세 이원론 종교가 마지막으로 파괴될 때가지 놀라울 정도로 동일했다.-p.115쪽

물질적 생활이 사악하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카타리파와 보고밀파, 마니교는 모두 생명을 극도로 존중했고, 같은 생물인 인간과 동물에게 모든 형태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주는 것에 반대했다. 세 종파는 모두 환생을 믿었다. 모두 우상을 금지했고, 오직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예배를 드렸다. 카타리파와 보고밀파가 구약성서를 두려움에 찬 눈으로 보았고, 구약성서의 하느님인 야훼를 악마로 간주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p.117쪽

팔레스타인과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지중해 연안과 메소포타미아, 이란 전역을 지배했던 보편적 헬레니즘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상당 기간 지속된 이 시대는 사회 활동과 지적 활동이 이례적으로 활발했고, 창의적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 및 강력한 정신 운동이 꽃핀 시기였다. 이 시기에 고대 이집트의 신관들과 이란 마기의 이원론자들, 비교(秘敎), 미트라교의 신비주의 추종자들, 그리스의 플라톤 학파 철학자들, 유대 신비주의자들, 불교 포교자들 및 주변 각지의 여러 가지 영향이 하나의 거대한 헬레니즘의 용광로 속에 합쳐졌다. "사물의 진정한 성격에 관한 지식을 의미하는 영지의 종교, 즉 그노시스주의가 탄생한 것"은 그처럼 "혼란스러웠으나 감격적인 사상적 합류가 이루어진" 그 시대의 어느 시점이었다고 역사학자 조슬린 고트윈은 지적한다.-p.128쪽

그노시스주의와 카타리파 및 보고밀파는 모두 영혼을 악마의 물질세계에 갇힌 포로로 간주했다. 영혼은 물질세계 속으로 더욱 깊이 끌려들어가 더욱 단단히 갇힐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세 집단은 모두 자신들의 신앙체계에 입문하여 그들이 가르치는 영지 습득방법을 통해서, 달리는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감금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p.128쪽

그노시스파와 후대의 보고밀파 및 카타리파는 상호 공통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기성 기독교와 두드러진 특징을 한 가지 공유하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구원"의 신앙이다. 즉 그들은 모두 하나의 신앙 체계를 제시하고 그 체계를 따를 경우 믿는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서조차도 카타리파, 보고밀파, 그노시스파가 선의 한쪽에 함께 서 있는 반면, 기성 기독교의 수호자들은 그 선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의 교리를 "오로지 신앙만을 통한 구원"으로 압축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즉 맹신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단 종파들은 모두 지식을 통한 구원을 제시했다. 즉 계시된 지식, 영감으로 얻은 지식, 구원의 지식을 입문자가 직접 체험한다는 것이다.-p.132쪽

"이단의 존재는 교회 자체의 존재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고 조에 올당부르는 주장한다. 교회와 이단은 "병존한다." 교의에는 항상 이단이 수반된다. 처음부터 기독교회의 역사는 다양한 이단들에 맞서는 전투의 긴 목록이었다.-p.139쪽

1208년 3월 10일 인노켄티우스는 십자군 파견을 선언했다. 이것은 "십자군(Crusade)"이라는 용어가 동료 기독교도들에게 대항하는 전쟁에 최초로 사용된 경우였다. 오래 전 로마의 기독교 황제들처럼 인노켄티우스는 분명히 이단 근절에 가장 높은 우선권을 두었는데, 이는 성지 탈환을 위한 전쟁보다 우선순위가 높았다. -p.155쪽

십자군 참가자는 종군 기간 동안 모든 채무상환의 의무가 자동적으로 연기되고 채권자로부터 재산을 되찾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최하위 천민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p.156쪽

"지상에는 좋은 물체가 없고 천국에는 나쁜 물체가 없으며, 천국의 물체는 얽매인 것이 없고 지상의 물체는 자유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지상의 "복제"는 지금이나 미래에, 모범으로 삼은 천국의 원형보다 항상 열등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보다는 열등한 결과를 낳을지라도 천국의 완벽함을 지상에서 복제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 헤르메스 문서의 분명한 논리이다.-p.239쪽

프랜시스 베이컨을 "미신에 얽매인 과거에서 출현한 현대적인 과학자 및 관찰자 겸 실험자로 간주하는 것은 더 이상 합당하지 않다." … "베이컨은 헤르메스적인 전통에서 출현했다. 그는 자연 마법사들을 통해서 그에게 전달된 르네상스 시대의 마기 철학 및 카발라에서 출현했다 … 베이컨의 과학은 부분적으로 여전히 비교(秘敎)의 과학이다."-p.352쪽

이원주의 종교의 공통적인 중심 개념은 방사(放射)이다. 가능한 가장 단순할 말로 표현한다면, 방사는 현신한 신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창조적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신은 영적이며 순수하고 불가침이다. 이러한 신의 현신은 독립적인 존재를 추구한다. 기원후 처음 4세기 동안 그노시스주의는 이러한 방사 현상들을 이언(eon)이라고 불렀다. 여러 가지 이언은 자기 지식의 등급에 따라 서열이 정해졌으며, 종종 "침묵", "지성", "진리", "지혜" 등 추상적인 특성이 부여되었다.

신 및 이언들은 함께 플레로마(Pleroma)를 이루었다. 플레로마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충만함" 혹은 완전한 집단이다. 세계 창조로 이어지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여러 이언들 가운데 하나의 호기심 혹은 욕망에 의해서 초래되는 플레로마 내에서 타락한 결과였다. 일부 그노시스주의의 구도 속에서는 구약성서의 하느님인 야훼가 타락하여 "방사의 방사" 지위로 전락한 이언으로 묘사되었다. 다른 경우의 야훼는 그보다 훨씬 못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야훼는 물질세계를 창조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총명하지만 자신이 온 곳이 어디이며 사물의 구도 속에서 자신의 작은 역할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카타리파는 예수를 기독교가 생각하듯이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신의 방사로 본다.-p.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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