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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ㅣ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2
조신영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적절하다.
차라리 얇은 페이퍼북이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한국 출판업계에는 글씨 큰 하드커버가 잘 먹히니깐 이러한 책이 계속 나온다.
한국에서 책을 사는 사람들은 가격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다고 한다.
책을 많이 사지 않기 때문에 정작 사는 사람들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지라도,
이렇게 상향 평준화된 가격 탓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는 것을 습관화하지 못한다.
도서관도 그렇게 많지 않은 나라인데, 곧 이러한 출판 문화에도 큰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한다.
주제가 명확하다.
"경청의 힘"
스토리 텔링 책들의 장점을 활용하기로 마인드를 바꾸었다.
가볍지만 메시지는 같다. 꼭 고상해 보이는 듯한 철학적인 표현으로 메시지를 전해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멋진 표현에 대한 동경심이 있어서인지,
이런 스토리 텔링 책들에게 후한 점수를 잘 주지 못하곤 한다.
그렇지만 손이 가서 읽게 되는 책이고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대화하는 사람의 언어 습관에 맞추셨다. 알기 쉽고 명확하게 인도하셨다.
그분께서 성경에 적혀진 고어만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다면 우리에게까지 그 기회가 왔겠는가.
자, 책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자.
주인공 - 이토벤
'진짜 장사꾼 클레버'가 생각났다. 이 책도 스토리 텔링으로 마케팅을 설명하는 책인데,
여러 기법을 예화를 들며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등장 인물들이 모두 이렇게 클레버, 핸섬, 뷰티? 이런 식으로 의미를 담고 설정되어 있다.
진짜 장사꾼 클레버
구교열
문학세계사 200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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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토벤인가?
성이 '이'이고, 베토벤 같은 헤어 스타일과 악기 회사에 근무하기 때문에 연관성을 지어 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이토벤이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귀머거리 베토벤과 같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이토벤이 어떠한 계기로 '경청'하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내용이다.
아니지, 그의 그런 변화가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출판사의 역량이었을 수도 있으나 오프라인, 온라인 서점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다수의 독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를 하는 책이라는 판단을 하기에 무난하다.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사람들이 경청의 중요성을 모르는가?'
답. 그럴 수 있다. 경청의 중요성은 지속적인 체험으로 깨닫게 된다.
'경청의 중요성'을 이론으로만 배운 사람들은 이론으로 끝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경청하고 있다'라고 착각하기에 전혀 어려움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이토벤이 하는 경청을 살펴보자.
그가 경청을 시작하게 된 원인은 경청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고서가 아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내 말을 들어줘요. 귀를 열어줘요.' 라고 외칠 때엔 바로 한 귀로 흘렸다.
모든 피드백을 다 수용할 수는 없으니깐. 이라는 자세를 가졌겠지.
이토벤은 잘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청력을 정말로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화자의 입모양을 보며 이해하려 하였고, 제스처 하나에도, 표정 하나에도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듣기를 연습하며 이토벤은 깨달은 것이다. 진정한 ‘경청’이 주는 축복을.
그리고 위에서 내가 언급하였듯이 이토벤만 변화한 내용이 아니다.
이토벤에게 쏟아진 이 축복들이 바로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말에 진정으로 귀 기울여주고 내 입장을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얼어 있는 우리의 마음을 녹이는지 아는가?
이토벤이 아닌 그 주위 사람들이 자신들의 녹고 있는 그 마음을 느끼고 회사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콧방귀 낄 수 있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만 그럴 지도 모르고.
하지만 정말 천천히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내가 경청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첫째, 경청이란 의지이다. 내가 온 몸을 다 해서, 에너지를 쏟아서 들으려 하지 않으면 안 들린다는 각오를 가지고 상대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듣기이다.
경청을 가로 막는 요소들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이 책에서는 이토벤이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시도한 경청이기에 멀쩡한 사람들이 경청할 때에 찾아오는 불청객 장애물들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솟아 오르는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
내가 필요한 것만 선별해서 듣고자 하는 두뇌의 활동 등 실제적으로는 허들 앞에서 넘어지고 슬쩍 다른 지름길을 찾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토벤이 그러하듯, 경청이란 ‘옳소! 맞습니다!’ 라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듣기가 아니다.
모두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원론적인 동감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즉 둘째, 경청의 핵심은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공감’이다.
내일 아침에도 잠에서 깨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귀에서 나오는 오로라로는 부족하다. 온 몸에서 오로라를 방출하여 상대의 마음을 사랑으로 받아오자.
그리고 이 경청의 축복을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