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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연구
앨 앨버레즈 지음, 최승자 옮김 / 청하 / 199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책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눈으로 읽어내고 마음 속에 그려내며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배워가던 그 시절에 나는 사람이 스스로 죽음의 강으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한 책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였고 그 인물은 주인공 한스였다. 술에 취해 강물에 투신한 한스의 행동은 어린 내게 최초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기억된다. 그로인해 나는 어느순간 내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의 강에 뛰어들진 않을까 겁을 먹곤 했다. 하지만 사춘기를 거치고 십대의 후반부를 넘기면서 나 역시 죽음에의 호기심과 욕구를 느끼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반드시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시시때때로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한밤중의 꿈결같은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자살이라는 행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자살행위에 대해 옹호하는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몰차게 비난하는 쪽도 아니다. 어찌하였든 많은 이들이 스스로 죽어 사라졌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떠난 자에 대한 산 자들의 이런저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역시 죽음이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것 만큼은 분명한 듯 죽은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작아질 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견도 여러가지다.
자살에 대해서는 주로 동정이나 비난의 형태로 도마 위에 오른다. 그러나 현재의 인간사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또한 한낱 수치나 통계로 분석되고 문서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 알바레즈는 이 점을 비판하고 보완하려 한다. 그와 더불어 저자가 함께 지적하는 문제가 바로 고압적인 종교적 논조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편향적인 분석을 피하고 역사적, 사회적으로 드러난 현상들과 문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점을 되도록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타내려 하고 있다.
이 책의 서두는 실비아 플라스에 대한 저자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실비아 플라스는 미국의 유명한 여류 시인이자 그 이전의 세 번의 자살기도와 결국 자살로 인해 서른을 겨우 넘긴 나이에 목숨을 끊은 것으로 유명한 한 시대적 아이콘이었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알바레즈는 그녀의 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비평을 하고 그녀와 그것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던 것 같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을만큼 그는 프롤로그에서 그녀의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에 대해 늘어놓는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의 죽음에 관한 얘기가 이 책의 중요한 전략적 구성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에 이어 본격적인 분석이 가해지는데 2장에서는 자살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3장에서는 정신분석학을 도입하여 자살자에 대한 해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3장에서는 자살을 문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아 그 분야의 전문가인 알바레즈의 분석이 돋보인다.
역사적으로 자살은 때론 찬미를 받기도 하였고 때론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자살을 예찬하는 종교가 있었고 자연사하는 걸 죄악시 하던 경우가 있던 반면 자살자의 시체에 탄압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자살을 죄악으로 보는 현재의 기독교와는 달리 초기의 기독교에서는 그것에 대해 별반 강압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구약이나 신약 그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자살을 금지한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후에 십계명 중 하나인 <살인하지 말라>는 6번째 계명에 재해석을 가해 지금의 자살금지령이 내려진 것이라 하니 이 또한 재밌는 점이다.
조금은 어렵게 또 조금은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내려가며 아쉬웠던 점은 이 책이 한 영국인에 의해 쓰여져서 그런지 동양이나 제3세계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과 자살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개인의 에고에만 집중되어 결국 이 또한 미완의 연구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럼에도 학술적인 제목과는 달리 비교적 쉽게 읽히고 다양한 분석이 시도되었다는 점이 읽는 재미를 주었다.
그리고 다소 뜬금없어보이는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의 자살미수경험에 대해 고백하고 그러한 죽음 직전까지 다녀온 그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죽음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식으로 저자는 자살이 옳다, 그르다 식의 흑백논법을 펼치며 이야기를 맺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자살은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사정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살은 인간이 행하는 구원에의 처절한 시도로써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것을 바라보아야한다는 점이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아닐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