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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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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순간의 소설

 

   작년(2013)에 엄청난 히트를 일으킨 책, 『28』. 『7년의 밤』이라는 작품으로 익히 알고 있는 작가였다. 책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호기심은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읽으면서는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 먼자들의 도시』 (해냄, 2002)가 떠올랐고, 읽은 후 느낌은 영화 <연가시>(2012)와 비슷했다.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시작되는 공포감은 소설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마저 잠식시켜갔다.

  작가는 단 하나의 문장도 노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 휘몰아치는 문장들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촘촘한 시간들이 느껴진다. 이러한 문장력은 엄청난 분량의 책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앉아 5시간 만에 책을 독파하게끔 한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쏟아지는 인물들의 행동과 사건의 긴장감은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썼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을 단어 하나로 정리하자면 절망이다. 독자가 목도하는 것들 전부가 절망이다. 특히 재형이라는 인물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가 인간답게 살았던 적은 이었을까? 적어도 이 소설이 시작되고 끝나는 그의 인생에서는 과감하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썰매견의 운전수로서 드림랜드의 의사로서 그는 승승장구를 하나 곧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의 인생은 롤러코스트 같았다. 잔잔한 호수가 아닌 거센 파도와 같은 인생이었다.

  이 소설은 장면마다 충격적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빨간 눈을 전염시키는 원인을 개로 보고 개를 살처분 하는 장면이었다. 작가의 말과 소설의 분위기상 자연스럽게 AI 때문에 살처분 당하는 조류들, 구제역 때분에 살처분 당하는 돼지와 소가 떠올랐다. 소설의 힘은 대단했다. 뉴스에서 무덤덤하게 보이는 가축들의 죽음, 돼지농장 아들인 지인과 그 농장에 놀러간 또다른 지인들을 통해 들었던 생생한 현장을 보거나 들었던 것보다 더 임펙트가 있었다.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도드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엄청난 수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자연과 어울리고 자연에 수긍하면서 살았던 인간들이 언제부터인가 자연과 맞서기 시작했고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예전부터 대두 되어왔지만, 인간이 과연 그러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생태계의 질서에서 인간이 최우위를 차지하고 이게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지나친 인간의 욕망은 올바른 것일까? 과도한 욕망은 인간 외의 생명들이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간 또한 언젠가 자연의 섭리에 의하여 조절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인간들이 인간들을 위하여 가축들을 살처분 하듯이 자연은 자연을 위하여 인간을 살처분 할 수 도 있다는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상상을 말이다.

  "끝내 이렇게 될 것을. 결국에는 쉬차와 같은 길로 올 것을. 살려고 애쓴 내가 하도 참담해서, 살려고 저지른짓이 너무 끔찍해서, 필사적으로 불어댄 휘슬이 부끄러워서, 차마 울 수가 없었어." 그녀는 움켜쥔 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숨겼다. 목이 답답해왔다. 하고 싶은 말이 목젖 밑에서 신물처럼 솟구쳤다.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하겠느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p345~6)

​  인상이 깊은 부분이다. 살고자 하는 본성. 그 본성이 진화하고 발달하여 인간을 오늘날까지 이르게 한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삶은 선택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 채, 내재적으로 살고자 하기 위해서 본성적으로 움직였던 건 아닐까. 살고자 하기 위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말이다. 논점하고 많이 벗어났지만 어쩌면 자살마저도 살고자 하기 위해 본성으로 움직였던 건 아닐까 하는 잡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인간,삶, 자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 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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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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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을 위한 소설

 

   작품을 읽고 재미있으면 해당 작가의 데뷔작부터 최근 작품까지 읽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도 그 일환으로 읽게 되었다. 지난 학기(2013년 2학기), 교수님께서 올해 가장 눈 여겨 볼 만한 단편으로 『김 박사는 누구인가』(문학과지성사, 2013)에 수록되어 있는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를 추천해주셨다. 수업시간에 이 작품을 읽고 와서 품평을 하기로 했었다. 종교에 거부감이 있었던 나는 '목사'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책을 덮어버렸다. 종교 색채가 짙을 것 같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지만, 당시 수업 시간에 당당하게 말했다. "소설이 재미없었어요." 자고로 청춘은 패기가 있어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근거를 바탕으로 나름 생각해서 나온 말이었다. 일단 부끄러움의 시간을 갖겠다.

  하, 하, 하.

  그리고 이기호 작가를 잊고 있었다. 1년 만에 찾은 동네 도서관을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두 달만에 만난 『김 박사는 누구인가』를 보자마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업 당시에는 느낄 수 없는 의무감이 생겼다. 용기(수업 때가 계속 생각나서 내야만 했다)를 내서 책을 뒤적이기를 몇 번. 이기호 작가가 전해주는 인물의 생동감과 삶의 아이러니한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사과는 잘해요』(현대문학, 2009)를 거쳐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문학동네, 2006)까지 읽었다.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는 솔직히 별로였다. ​자. 좋습니다. 이 소설은 저 위 부제처럼 누군가 누군가에게 직접 소리내어 읽어주도록 씌어진 소설입니다. 친구나 형제자매, 선후배 사이도 좋고요. 부부나 연인 사이라면 더욱더 좋습니다. (p9) ​를 읽고 시루떡(연인)에게 읽어줄까 하다가 두 세장 읽고 나 혼자 읽기로 했다. 막판에 이야기꾼을 꿈꾸는 독자라면 흥미가 있는 부분이겠지만 그 외에는 딱히 감흥이 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뒤 소설은 재미있었다. 특히 「당신이 잠든 밤에」와 「국기게양대 로망스-당신이 잠든 밤에 2」를 읽고 제목을 곱씹으면 소설 속 문장 문장 하나가 온 몸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깊은 작품은 「할머니, 이젠 걱정마세요」였다. 평소 노인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두 소재가 지루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 완성도도 높고 읽는 내내 흥미도 유지했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책이 아닌, 할머니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할머니를 통해서 뱀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죽은 사람들이 때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죽어 나무가 되고, 또 누군가는 죽어 새가 되고 하였다. 글을 몰랐던 나는, 할머니를 통해서만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촉 낮은 백열전구가 깜빡깜빡거릴 때마다, 두 사람들이 누워 있는 할머니 머리맡에 찾아와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을 보았다. 어린 나는, 그 사람들이 무서워 할머니의 말라버린 가슴에 자주 얼굴을 파묻혀야만 했다. (p237~238)작품의 시작 부분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와 살면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살았던 내게는 추억과 함께 뚜렷한 공간이 구축되었고 6·25전쟁이라는 멀게만 느껴졌던 사건이 내 삶에 훅하고 침투하는 것 같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다. 잊혀져서는 안 될 과거의 아픔(하지만 대부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을 어떻게든 책임지고자 하는 '나'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목은 '할머니, 이젠 걱정마세요'이다.

  그 외에도 소설집에 수록 된 소설 제목만 읽어봐도 인물들의 생동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 있어서 이기호 작가의 소설을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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