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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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비행운

 

 

  아등바등. 지금 삶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나를 표현하는 말이다. 사소한 일에도 노심초사하며 혹은 모든 사람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기대를 하며 하루를 살아 가고있다. 지나가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과정 속에서 핑크빛 결과를 예상하며 버틴다. 그러나 빗나간 결과는 꽤 있었다. 그때 오는 허탈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사실 알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크게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 나를 가장 궁금해 하는 사람은 나이다. '나'가 중심인 세상에서 남을 신경 쓰는 이유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기준은 남에게 있으므로, 남이 입는 옷을 입되 나와 어울려야하고, 남이 바르는 매니큐어 색깔이되, 내 손에서는 촌스럽지 않아야 한다.

  여름옷은 기대만큼 예쁘지 않았다. 보자마자 모두 흥분해서 산 것인데 이상했다. 유행은 왜 금방 낡아버리는지.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쭈글쭈글 함부로 쌓인 옷더미가 내 남루한 취향과 구매의 이력처럼 느껴져 울적했다. 지난해 내가 우쭐한 기분으로 걸치고 다닌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고.(p11)

-너의 여름은 어떠니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손톱에 대 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손톱에 '사로잡혀' 있었다.(p221)

-큐티클

​  그 다음으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이다. 가족은, 그 중에서도 엄마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인생의 전부라고 여길 때가 있다. 우리는 그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뿌듯하다. 엄마에게 독립되어 살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엄마의 품이 그리운 것이 우리다. 균형을 잘 맞추어야 두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고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에 겪는 엄마와 자식 간의 마찰은 사소하면서도 깊은 상처를 안겨준다. 습관이 된 요구는 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번만은 아들이 먼저 연락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정말로 오늘 영웅이에게서 편지가 온 거였다. 초등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어버이날 카드를 제외한곤 기옥 씨도 처음 받아 보는 거였다. 기옥 씨는 A4지를 가로로 두번 접은 모양의 종이를 조심스레 펼쳤다. 그러곤 벌써부터 답장은 뭐라고 쓰나 걱정했다. 연필 잡아본 지 하도 오래돼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건 기옥 씨가 아들에게 편지 대신 신문기사를 오려 보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기옥씨는 편지지를 활짝 펴 설레는 마음으로 안에 담긴 내용을 바라봤다. 몇십 개의 줄이 그어진 하얀 편지지 위엔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단 한 개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엄마, 사식 좀.'

……순간 기옥 씨는 바보같이 종이를 뒤집어봤다. 혹시 뒷편에라도 뭐가 더 쓰여 있지 않나 확인해 본거였다. 하지만 편지지 뒤에도. 앞에도 다른 내용은 없었다. (p197)

-하루의 축

  그럼에도 자식을 쉽게 놓칠 수 없는 것이 엄마고 부모이다. 아무리 자신의 상황이 남들에게는 떳떳하지 못하더라도 자식의 일 앞에서는 망각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자식이 할 수 없는 일을 엄마는 엄마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일상을 이겨내는 것도 아빠니까, 엄마니까이다. 인생을 견디는 것에 거창한 핑계 따위는 필요 없다. 그래도 인생은 지독히 인생 다워서, 인생의 요소인

일상은 지독히 일상다워서 금방 상처를 입는다. 일상이 무서운 것은, 불현듯 피어나는 불안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데에 있다. 몸은 어제와 오늘 다름이 없는 반복으로 지쳐 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기다리던 다음주 화요일이라는 사실이 허탈감과 함께 내일 있을 콘서트를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에는 희노애락이 있고 아이러니가 있으며 행복 끝에는 불행이 있다.

  "살려주세요."
멀리 가림막 너머로 자동차 소음이 들려왔다. 그건 마치 누군가 일부러 퍼뜨린 질 나쁜 소문처럼 A구역을 한 바퀴 휘감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단지 장막 한 장이 드리워졌을 뿐인데. 그 소리가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 울음이 날 것 같았다. (p80)

-벌레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비행운'에는 사소한 인생이 담겨 있다. 잊고 살아도 무방한 것들, 하지만 잊혀지지 않아 괴로운 것들. 그 인생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을 살고 있고, 미래를 살아갈 것이다. 단편 하나하나가 마음을 살랑 살랑 간지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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