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진화 -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
크리스틴 케닐리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체적으로 이 책은 저자의 독립적인 생각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관련 연구자들의 다양한 연구결과, 생각들을 총 정리하면서 언어진화론에 관한 종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내용의 독창성은 다소 떨어진다. 그러나 이 책의 강점은, 주로 2000년대 이후에 나온 따끈따끈한 연구결과들을 집대성하고 있으며 어떤 한 연구자만의 편을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객관성을 기하려 크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이 책이 레퍼런스하고 있는 자료의 출처는 대단히 폭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상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긴 하겠지만, 이 부분은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 5년여에 걸쳐 수행된 관련 연구자들과의 인터뷰가 제대로 작동한 결과일것이다.

 

 물론 이 책이 이런저런 다양한 이론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있다고 해서 연구자들의 제각각인 목소리를 무질서하게 나열하고 있는것도 아니다. 다행스럽게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한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 책의 저자도 그 점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언어라는것이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의 단일체로 생각될 수 없다는 점, 인간외의 다른 동물과 비교해 인간만의 언어적 특수성을 주장하는것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 언어에 있어 (촘스키 학파가 신성시 하고 있는)통사론은 전혀 핵심이 아니라는 점, 언어의 생득적 기제를 주장하는것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전제 없이는 무의하다는 점, 특히 언어처리에 관련된 유전자와 뇌의 부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언어처리에만 특화된것이 아니라 다른 행동을 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그리하여 언어와 행동과 생각은 따로 분리될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점, 더 나아가 언어 진화를 이해하려면 현생 언어의 선행물로 여겨지는 개체간 신호전달 메커니즘(손짓, 얼굴표정등)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에 이르러 촘스키의 영향력을 벗어난 여러 흥미로운 연구들이 나타나고 있는데(언어 진화 연구에서의 촘스키의 막대한-부정적-영향력은 이 책에서 여러 차례 강조되고 있다), 특히 나는 그 중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언어의 진화과정을 이해하려는 시도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내 생각엔, 앞으로는 분명히 여기서 뭔가 의미있는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상하게도 현재 이런 연구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 촘스키가 언어 진화에 관한 모든 연구를 사이비로 규정해왔는데, 그것이 관련 연구자들에겐 거의 언어진화를 연구하지 말라는 권위적인 법률 문구처럼 작용했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여러면에서 기존에 나온 <언어본능>과 비교함직하다. 스티븐 핑커가 소위 진화심리학자들을 대변하여 언어처리의 모듈성, 언어의 유전자적 상관물,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언어의 생득적 특성을 진화심리학이라는 틀안에 녹여내는 독창성을 발휘했다면(그 책 이전엔 그런 내용을 주장하는 책이 없었다), <언어의 진화>는 그만한 독창성을 보여주진 않지만, 핑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주장마저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입장에 불과하다는식의 일반화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더 큰 그림을 보자" 라고 제안한다.(이 책에 의하면 기존의 진화 심리학자들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생각한 면이있다. 언어라는게 그리 단순한게 아닌데도 말이다.)

나 역시 저자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현장에 좀 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연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어쨋든 언어학이 언어만을 연구하는 학문이어서는 안된다는것이 예전부터 내가 가져온 신념이었는데, 많은 최신 연구결과들이 이런 내 생각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는것 같아 기분이 좋다.

번역상태도 좋고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아 대중서로도 흠이 없을뿐 아니라, 최신의 연구성과를 폭넓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 연구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만하다. 내 생각에 여지껏 나온 언어학 관련 책 중에 이렇게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내용을 담은 책도 없으니 이쪽 분야의 최신 연구결과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당장 읽어 보시길 권한다. 물론 언제나 그렇지만 이 책도 어떤 형태의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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