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로미오와 줄리엇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어쩌면 아련하고 아름답기 까지 하지만 실제로도 그렇까. 남겨하 할 것들과 남긴 것들 사이에서 끝내 숨을 멈춘다는 것은 비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는다 라는 가정을 해볼까. 비로소 우리는 그 비극의 실체와 대면할 수 있다. 그것은 상실감이다. 익숙하고 또 다정했던 사람이 영원히 내 곁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비극, 그래 그 이상이다.
목사는 자신이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자신에게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다. 시쳇말로 눈이 감아지지 않을 상황인 것이다. 그런 그가 남겨질 사람들에게 남겨줄 것을 쓰기 시작했다. 막대한 유산도 아니오 수백 번 했던 설교문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역사이자 진실이 담긴 조언이었다.
살아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을 알기에 그저 묵묵히 편지를 쓸 뿐인 것이다. 상기했득 편지 않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자신, 부인, 친구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족의 역사이자 어쩌면 시대에 따라 변모하고 심지어는 몰락했던 미국의 가슴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아들을 위한 편지라고는 하지만 그 무게나 애용으로 보아서 목사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을 정리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담담함과 아련함은 눈물을 빼게 하려는 것도 아니오 감동과 족보와도 같은 정보를 주기 위함도 아니다. 이미 관조하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황혼의 오박빛을 즐길 수 있는 자의 것이다. 남은 자를 위한 순수한 마음이다.
햇빛을 받은 찰랑거리는 머리와 제 어미를 닮은 진지한 눈빛을 가진 이 아이와 함께 알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유언도 편지도 아닌 듯한 이 장문의 글은 여타 마지막을 앞둔 사람들의 처절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슬펐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내가 그의 나이에 이르러 어린 자식을 둔 사람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세상에는 이해하고 타협해야 할 것이 많음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많은 가족들이 있음을, 그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또한 너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 것 임을 이토록 담담하게 쓸 수 있을까.
아이는 먼 미래에 또한 편지를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남긴 것들을 보면서 남겨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은 아닐런지.
늦가을의 매서운 바람에 낙엽들이 무자비하게 떨어지는 이 계절에 이토록 아름답고도 잔잔하게 떨어지는 생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가을을 생각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