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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마다 정신적인 멘토가 있다. 살면서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을 열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정신적인 멘토가 있다. 물론 살아 생전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그는 죽어 있었고 나는 그의 책을 읽음으로서 그를 만났고 그의 사상을 흡수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사상에 감격했고 내가 세상을 살면서 절대로 지켜야 할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 말문을 연 것처럼 누구에게나 멘토가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만날 수 없는 사람이건 매일 만나는 사람이건, 유명한 철학자이건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건. 멘토의 자격은 단순하다. 나의 신념과 방향을 일깨워준 사람. 바로 그가 멘토인 것이다.
말했듯 나에게는 멘토가 있다. 유명한 수학자이자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으며 사상가이자 100세 가까히 장수했던 사람이며 평화주의자며 반전주의자인 버트런트 러셀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우연히 러셀의 패러독스('크레타 사람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라는 유명한 패러독스)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그의 저서라기 보다는 서간집인 '러셀의 철학노트'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부터 였다. 나는 그에게서 지식인의 소양을 느꼈고 지식의 방대함에 전율을 또한 그 명쾌한 대답에 놀라했다. 그리고 곧 그에게서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그리고 탁상공론을 하는 지식인이 아닌 스스로 행동하는 지식인에 대해서 배웠다.
그 책을 읽은 뒤로 거의 10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도 반전주의자 이고 평화주의자이다. 그리고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물론 그 노력이라는 것이 아주 미미하긴 하지만)
서론이 좀 길었다. 왜 이렇게 장황한 멘토에 대한 얘기를 했냐 하면 바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 버트런트 러셀을 만났을 때의 바로 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 지식인을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제 2의 멘토가 될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앞서 말했 듯이 나는 평화주의자다. 그리고 인권을 중시한다. 전쟁을 싫어하는 것에는 여러 중요한 이유가 있겠지만 거기에서 피해를 받고 처참하게 인권유린을 당하는 민간인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보통의 전쟁은 상위 몇프로의 인간들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민간인들이 낸 전쟁이 있었던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소수이지만 거기에 소모되는 인력과 피해보는 인력은 모두 우리 평범한 다수들이다.
지금의 세상은 어떠한가. 간단하게 쿠바에 대해서 예를 들어 보자. 미국에는 이상한 이민법이 있다. 그 이민법은 오로지 쿠바인 그것도 불법으로 귀국한 쿠바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법이다. 쿠바의 법 제도를 피해서 밀항하는 사람들을 합법적인 미국시민권자로 탈바꿈 시켜주는 법이다. 거기에는 많은 사상과 통제 그리고 미국의 단호함이 숨겨져 있다.
얼마나 오만한 법인가. 미국은 자신의 생각에 의해서 판단한다. 이른바 관용이 없다. 미국이 생각하기에 합법적인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불법이라도 상관이 없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합법이라도 미국에서 불법이라면 그것은 곧 온 세계에서의 불법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버젓이 대놓고 다른 나라의 법을 무시한 채 당당하게 정면으로 반대의 법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오만함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가? 이 책을 보라. 아, 방금 쿠바에 대해서 예를 들었다고 해서 나를 빨갱이로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이 책 보지 말라고 하고 싶다. 당신은 애초에 미국과 같이 다른 사람에 대한 수용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본론으로 더 들어가서, 제목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지금 이 순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본 신문에서의 편집장일 수도 있고 혹은 오후 9시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일 수도 있고 혹은 당신이 지금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니터를 만드는 컴퓨터 회사의 사장일 수도 있고, 세계의 강대국의 대열에 우리도 들었다고 으스댔던 OECD일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의 사상과 생활을 우리도 모르게 쥐고 흔들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어떻게? 간단하다. 우리는 그저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가가 기업가와 손을 잡고 세계 조직을 규합해 나가는 동안 언론사에서는 그것을 꽁꽁 막고 우리는 그저 할 일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모든 정보들은 진실인가? 아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모두 진실인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대신 터트려 주기 전까지는, 은밀하게 알고 있던 사람이 까발리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사실 그 까발려진 진실이라는 것도 정보의 혼재에서 쉽게 묻히고 그냥 넘어가 버리기 일쑤다.
이쯤되면 당신은 묻고 싶다. 우리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 진실이란 무엇이냐고, 혹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냐고. 물론 당신 너무 음모론자 아닌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이 알고 싶은 것들을 이 책에서 얻으라고. 그렇다면 이 책에 그런 진실이 다 담겨져 있냐고? 그것은 아니다. 이 책은 당신이 진실을 대하는 방법과 권력의 실체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줄 수 있는 자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내가 그토록 존경해 마지 않는 버트런트 러셀에 대해서 노암 촘스키 역시 존경한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