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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개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누구나가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는 그 죽음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멀고 점차 다가오는 이별이오 파국이기에 활기차고 아름다운 주말의 어느 날에는 그 죽음을 느낄 수 없다. 당신이 연인과 행복을 느끼고 있을 그 때 서늘하고 딱딱한 시체로 변한 연인을 상상할 수 없듯.
만약에, 이것은 정말이지 슬픈 가정이지만 그녀가 죽는다고 가정해보자.
초가을의 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고 당신이 사랑하는 그녀의 스커트자락이 꽃잎처럼 퍼지고, 당신만을 향해 웃음짓는 그녀가 어서 오라고 저 앞에서 손짓을 한다. 하늘은 그저 푸르기만 하고 내일은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그렇게 세상이 끝날 그 날 까지 웃고 있을 것만 같은 그녀. 모처럼 영화를 보고 만족스럽게 팔짱을 끼고 시내를 거닐다가 멋진 음식점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 집 앞의 공원에 들러서 달콤한 입맞춤을 하고 사랑한다는 그 말을 나누고 품에서 꼬옥 안은 다음에 놓아주기는 싫지만 그래도 그래야하니까 보내주고. 대문 안으로 아쉽게도 쏙 들어가 버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쓸쓸한 듯 바라보고. 혼자서 집으로 향하는 그 길에 아, 오늘 정말로 좋았어. 그녀는 하얀색 원피스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내일은 만나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지만 내일이 되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내일은 무엇을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집으로 가던 그 길에 그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녀를 잃은 슬픔에 아무 것도 입에 못대고 그저 그녀만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지내지 못한 내일이 아니 오늘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우리를 놔둔 채로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후회로 남는 것은 어제도 만약에 오늘 이렇게 될 것을 어제 알고 좀 더 잘 대해 주었더라면, 오늘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어제 저녁에는 좀 더 맛있는 걸 사줄 것을. 오늘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녀가 투정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받아주었을 것을. 오늘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꼬옥 안아 주었을 것을. 오늘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여기에 한 남자가 있다. 아내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생의 행복한 그 때는 그저 보내고 있는 남자가. 허나 갑자기 아내는 죽어 버렸고 그는 그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그녀가 떨어져 죽었던 사과나무와 집과 그녀와 함께 키우던 개 한 마리. 그리고 흔적들.
그리고 남자는 추적을 시작한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녀가 남긴 모든 것을 헤집고 또 그녀와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을 헤집고. 그리고 그녀가 죽을 때 남겨져 있었던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을 개에게 말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개가 본 것을 내가 알 수만 있다면. 그녀가 왜 죽었는지 내가 알 수만 있다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무엇이었는지, 그녀가 죽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으리라. 추석의 편린들 더미에서 하나씩 찾아 낸 그녀와 그의 결말들을. 단지 내일이면, 내일 모레면 하고 남겨두고 또 남겨두었던 것들이 그녀의 죽음으로 인하여 덮어지고 말았을 뿐인 것을.
오늘 알았던 것을 어제도 알았었더라면.
이 이중적이고도 아쉬운 후회의 점철 속에서 그는 이미 그녀의 죽음 뒤로 사실은 어제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추억으로의 여행길과 개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그 부질없는 시간들의 틈 속에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되돌리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로 그는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듣지 않으면 나는 말할 수 없어요.
그녀가 계속해서 몸으로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던 것들을 사실은 그가 듣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냥 넘기고 말았던 그 수많은 언어의 물결 속에서 그는 표류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을 가르쳐서 개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을 하나 둘씩 자신이 알아가게 되면서 그는 삶에 대한 추억에 대한 그 아름답고도 찰라였던 순간들을 되새긴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 극도로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해서 준비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슴 한 쪽이 어릿해지는 그 통증을, 내가 왜 좀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그 후회를 지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기에 내일 일어나는 일도, 하물며 1분 뒤에 일어나는 일도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고 떠올리면, 죽음까지는 아니겠지만 그 과정이 있기 까지의 여정과 작은 표시들을 당신은 알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시키고 체념하는 가는 당신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