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벗겨줘 - 빨간 미니스커트와 뱀피 부츠 그리고 노팬티 속에 숨은 당신의 욕망
까뜨린느 쥬베르 외 지음, 이승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20세기를 바꾼 위대한 3명의 학자를 꼽으라면 여러 사람이 거론되겠지만 굳이 간추리자면 소쉬르, 마르크스, 프로이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프로이트가 주창한 이론들이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근 숭배, 거세 공포 등 심리학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이용해서 옷차림 혹은 옷과 관련된 사람의 심리를 파헤치고 있다.

저자의 약력을 살피니 그럴만하다. 두 사람 모두 일단 정신과 의사이다. 이 두 사람은 옷이 사람의 제 2의 피부라는 것에서 벗어나 쇼핑 그 자체와 옷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식과 깊게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 책은 옷과 관련된 것을 주 대상으로 삼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하고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은 대체 어떤 비밀을 담고 있을까. 단순하게 내가 빨강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빨강색 아이템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일까. 빨강색 그 자체가 담고 있는 어떠한 상징성이 있는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쇼핑 중독과 노팬티 붉은 부츠와 오래된 스웨터 등 우리가 선택하고 간직하고 있는 옷들은 단지 그 자체로의 상징성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투사한 하나의 매개체로 볼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은 옷 그 자체가 아니라 옷을 선택하는 당사자라는 점이다. 아무리 같은 옷일지라도 개인이 선택하는 이유는 모두 다를 것이고 그 이유 또한 그럴싸하게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기저에는 개인은 알지 못하는 개인의 심리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부인이 연애시절의 추억이 담긴 옷에 집착하고 그 비슷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옷이 비싸고 좋은 것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욕망을 옷에 투사해서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 책에는 실질적으로 옷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옷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내면이 숨어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나를 벗겨줘’에서 벗기는 것은 옷뿐만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 여성의 옷 구매 습관을 인생을 모두 거세 공포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여성의 불안함과 동경을 남근 숭배 의식이라고 일축할 수 있을까. 심리학에서 종종 저지르곤 하는 치명적인 실수는 한 인간을 재단하려 하는 데에 있다. 방대한 데이터와 그에 따른 표준편차는 있을 수 있지만 같은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 자칫 이 책을 읽고 빨간색 뱀피 부츠를 신은 여성을 보면서 저 여성은 분명 자신의 성적 욕망과 자신감을 부츠에 투사 시키고 있다고 지레짐작 추측할 사람이 과연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옷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물건들과 행위들은 이미 기저에 유아기에 겪었던 트라우마나 무의식의 욕망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어 보인다. 고로 이 책에서 친절한 일화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모든 글은 프로이트 식 설명을 위해서 차용한 하나의 걸출한 예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단순히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을 터. 그렇기에 이 책은 어쩌면 조금은 위험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재미로 그리고 이렇게 설명하는 방법도 있구나 하면서 살피면 충분히 유익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이론에 맞추어 무조건적으로 설명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간단한 일화를 소개하고 그에 따른 주석과 가까운 저자의 설명은 프로이트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되어 있다. 게다가 챕터가 잘 나뉘어있고 호흡이 짧아 부담 없이 금방 읽기에 좋다. 프로이트 팬이라면, 가벼운 심리서를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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