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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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사람이 떠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자신이 살던 곳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려는 요량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여행이란, 제 살던 곳을 등 뒤로 남기고 잠시 홀로 되는 것이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 다시 익숙한 곳으로 되돌아가기까지. 나는 바로 그 여행이라는 것을 오로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 티베트 여행은 한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의 종말, 소멸이 새로운 시작을 불러왔다. 저자 박동식은 그렇게 지상에 마지막 남은 낙원이라던 티베트로 열리지 않는 문을 뒤로 하고 나섰다. 상실이 상실이 낳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빈 곳을 채워야 할 것을 찾으러 갔는지, 상실의 빈자리를 좀 더 덤덤하게 보기 위해서 갔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이 지금 한 권의 책으로 나와 내 앞에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덮고 나는 머나먼 고원의 티베트의 갈색 흙들을 내 손으로 쥐는 상상을 한다. 메마른 흙이 내 손에서 자꾸만 부스러진다.

티베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았던 적이 없다. 단지 중국의 아래에서 탄압을 받고 있으며 달라이라마는 끊임없이 티베트 반환을 위해서 세계를 돌고 있다는 것. 그리고 2006년 6월에 있었던 ‘세계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 정상회의’에서 비자 발급 승신 거부로 인해서 달라이라마가 참석할 수 없었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천장(天葬)이라는 장례 풍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티베트 관련된 영화를 몇 편 봤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골랐던 것처럼 나는 티베트에 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천국과도 같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대한 탐미나 박해 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나 그저 떠나고 싶다는 자기 연민이 아닌, 그저 무심하게 흙만이 있는 티베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거기에 가서 내가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 무엇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여긴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렇게 홀로 고원 위에서 서있고 싶었다.

그래서 만난 이 책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내가 동경, 연민, 동정 등의 감정을 가지지 않고 그저 티베트 자체를 보고 싶어 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곳은 끝내주게 멋진 풍광을 지난 곳도 아니며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며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밖에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티베트. 단지 여기가 아닌 낯선 곳. 절대 누군가가 흥분하며 말했던 것처럼 티베트는 지상에 마지막 남은 낙원이 아니다. 거기에는 여느 사람들이 살고 있고 나도 여느 때와 같이 가서는 보고 올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떠나는 여행에 사람이 없는 곳은 없을 것이며, 거기에서 또 사람을 보고 오지 않는다면 무엇을 얻겠는가. 저자가 본 것과 같이 나는 티베트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았고,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고원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지천의 산을 보고 느끼는 것처럼 꼭 같은 고원으로 여기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했다. 나는 이제까지 티베트라는 이국적인 향을 맡고 붉은 흙을 떠올리면서 제 멋에 눈을 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티베트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보는 풍경과 저자가 느낀 허심탄회한 여행기를 통해서 나는 티베트를 다시 보았고 사람을 다시 보았고 여행을 다시 보았다. 내가 잡을 수 없는 곳에 멀리 떨어진 심사가 아닌, 어쩌면 내가 떠나는 것 자체가 특별할 뿐인 다른 평범한 곳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상실과 함께 여행을 떠났고 마지막에 그것을 채웠는지, 덤덤하게 볼 수 있게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책을 덮으며 무엇인가를 채우거나 혹은 덤덤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같은 마음으로 인사를 할까. 안녕,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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