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사랑 파사랑
다이도 타마키 지음, 이수미 옮김 / 현문미디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가장 열정이 넘치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불안한 시기가 언제일까. 성인이 되기 바로 직전인 열여덟, 열아홉이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고 그러기 위해선 자기가 하는 일에 확신이 없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어른이 되기 전인 바로 그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또 펼쳐진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흥분이 되는 그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걱정하고 지키고 싶고 나아가고 싶은 나이. 그 나이에 서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 작가는 이 아이들에게서 불안하지만 또 반짝일 수밖에 없는 한때를 뽑아냈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그때에는 한창 불안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지만 그건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닌 잡힐락 말락하는 가느다란 끈과 같은 것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저 않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데 선택은 쉽지가 않았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도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고 오로지 나 자신만이 해낼 수,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마치 ‘케사랑 파사랑’처럼 혼자서 자라고 혼자서 번식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불안했지만 결국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그렇다. 그들은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그건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회 때문에 주변의 압력 때문에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이 그저 서있기만 하고 유예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과정이 힘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매끄럽진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제 막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작고 섬세하고 흔들리기까지 하는 그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야 할 과도기이기에 어쩌면 부질없어 보일지도 모르고, 사회는 기다리는 흔들리는 사람은 받아주지 않으니까 더더욱 안타깝기도 한 그들. 그들의 삶은 한 꺼풀 벗기면 그대로 제 몸뚱이를 비치는 아직도 딱딱한 껍질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딱딱한 껍질을 가지지 못하면 알맹이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아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딱딱한 껍질 혹은 야문 알맹이 만들기 과정을 거치고 있다.

   타인의 고민은 그저 유치한 투정으로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일이라면 누구나 심각하다. 그건 당연하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보일지 몰라도 당시엔 심각하다. 하물며 그것이 아직 온전한 어른이 아닌 예비 성인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어떨까. 그들은 심각하다. 이미 어른이 된 내가 보기엔 어쩌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순간엔 나도 심각했을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그토록 작고도 섬세하다. 큰 사건도 큰 위기도 큰 갈등도 없다. 담담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솜털처럼 약간 부분이 존재한다. 바람이 이끌리듯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한때이기에 건조함조차 미약한 시작처럼 보이기에 더 알맞다.

   허나 여기에는 알싸한 맛이 없다. 귤은 까면 그 톡하는 새콤한 냄새가 나는 것이 좋고, 멜론은 자르면 달달한 향이 나는 것이 좋다. 그들의 이야기 안에는 그런 맛이 없다. 청춘은 있을지언정 고민은 있을지언정 그 면면이 너도나도 단조로운 것이 흠이라 차라리 내 인생이 더 소설처럼 여겨질 정도다. 담담하게 그들을 비추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그들의 삶에는 그들은 있을지언정 그 밖의 사람들도 그리 없다. 온전히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비추는 것은 좋지만 그건 그들의 삶을 같이 하고 또 비춰줄 존재가 필요하다. 선생이나 부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민의 대상이 있되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거나 함께 보여줄 사람이 없다. 황량하다. 귤은 여러 알맹이가 서로 제 몸을 꼭 붙이고 있다. 그것처럼 같이 살아가는 삶도 있고 해야 그들의 삶이 더더욱 내 눈에 콕 박힐 텐데 말이다. 하나의 테마로 엮인 단편 소설들이기는 하나 거기에는 주제이외에는 다른 관계 설정이 없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설을 떡하고 펼치고 보니 그 안에는 오롯이 알맹이만 있을 뿐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도 그것을 까는 재미도 없다. 성장소설이기는 하나 성장에 비견될 것이 없어서 더더욱 아쉬운 채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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