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비평가란 무릇 어느 나라이건 간에 그리 환영받는 대상은 아니다. 어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평가를 해대는 비평가를 좋아할 것인가. 독자 역시 그 관점이 일반인과는 요원한 비평가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물론 책을 살 때에 비평가의 글 한 줄이 크게 작용을 하긴 하겠지만. 비평가 김현은 처음에는 시인이었다. 어떤 연유로 그가 비평가가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하나 엄연히 그도 시를 쓰는 시인이었고 사계(四季)라는 동인에까지 몸 담았던 바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비평은 도전적이며 치밀하고 한편으로 대담하지만 그 기저에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대한 사랑이 깔려있었다. 너무도 이른 때에 세상을 등졌으나 그 업적이 평생을 살다간 사람도 다 이루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던 비평가 김현. 자신이 그렇게도 빨리 갈 줄 알았던 모양인지 그토록 부지런 했는지 그는 살면서 쉬는 때가 없을 정도로 많은 비평을 남겼고 비평가들의 꿈이라는 문학사(김윤식 공저, 『한국문학사』, 민음사, 1973)까지 편찬했다. 이토록 바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의 일기 혹은 독서 노트를 읽는다는 건 참으로 두근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그러한 김현의 유고작이자 죽는 그날까지 손에 잡고 있었던 마지막 원고이자 일기였다. 사적인 부분은 자기 검열로 삭제하고 독서 혹은 사유의 장만 최대한 열어놓은 그의 일기. 그것이 바로 『행복한 책읽기』인 것이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에 걸친 그의 독서와 생각의 깊이를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과감하게 추천한다.

남의 일기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읽는 것과도 같다. 물론 이 책의 경우 사적인 이야기를 많은 부분 삭제했기 때문에 그러한 은밀한 느낌은 다소 없으나 편한 논조로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을 볼 수 있으며 허심탄회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흥미를 유발한다.

그의 일기는 자기 자신에게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메모와도 같고 짤막한 서평 혹은 고찰 같다. 일기이기 때문에 더더욱 친절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다. 어느 날에 쓴 일기는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가 있어 읽으면서도 이해는 가나 공감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김현과 같은 독서가가 읽어야 더욱 재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데올로기나 문학이론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 문학사 혹은 비평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미하엘 바흐친의 이론을 전혀 듣지 않은 사람이, 비평가 김윤식의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분명 이 책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좋아하는 책의 글귀를 적고 되새기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일기는 거의가 독서에 관한(일부 문학이론)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 바, 개미 같이 부지런한 독서가의 모습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읽다가 내가 모르는 책에 관한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나도 읽어보리라 메모도 하고, 내가 읽은 책이라면 고개를 끄덕인달지 갸웃거린달지 하는 식의 소통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방대한 독서가의 모습이란 무릇 그 가운데에 부지런함이 있는 것이구나 하며 자신을 다독이는 계로 삼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위의 모든 행태를 하고 있었다. 아는 작가 모르는 작가, 아는 이론 모르는 이론, 아는 시 모르는 시. 나의 독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분명 이 책에는 담겨있었다.

시인이자 비평가이자 독서가였던 김현의 행적을 되돌아보면서 나 역시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던 책.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의 궤적을 보며 추억하고 애도하고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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