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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역사
존 우드퍼드 / 세종(세종서적)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허영의 역사』라고 하기보다는 『사치 혹은 치장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서양의 역사를 따졌을 때 허영의 최초 개념은 나르키소스로부터 시작된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러니까 온전히 겉모습에만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그것에만 빠졌던 나르키소스. 그 나르키소스의 모습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겉모습을 중히 여겨 목숨 정도는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이다. 이 허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모습과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습 두 가지가 동시에 드러난다. 허영은 사치 혹은 치장과 그 궤를 함께 하며 이 책에는 그러한 역사를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화장의 최초 기록은 이집트의 고대 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제시되는 허영의 산물들 중 의치, 가발, 의복, 신발 등에 이르는 거의 모든 치장에 관한 것은 비단 이집트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서 고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 면면이 워낙에 오래된 것이라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과도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이 역사는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이 허영에 집착해왔는지 생생하게 알게 하는데 과학 기술이 발전된 지금에 와서는 허무맹랑하고 한편으로 소름끼치는 시대상 까지 보여준다. 복식의 경우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오래 전부터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빈부의 격차에 따라서 판이하게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코르셋의 경우 몸의 기형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유행의 선두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허영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먼저 의치. 치과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 사람들은 이미 빠진 이를 위해서 나무부터 시작해서 온갖 치아를 대신할 것들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물론 섭식을 위한 용도로 시작된 치아 이식술은 나중에 가서는 부와 지위 혹은 미의 기준이 되었다. 불법으로 자행되고 또 검증되지 않은 것들을 대신 이식함으로써 얻어지는 수많은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의치는 꾸준히 계속되었다. 심지어 피아노 건반처럼 희고 매끄러운 치아를 가지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니를 뽑아 이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의복에 있어서는 부와 지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중세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가진 자들의 양복 혹은 드레스는 그 유행이 계속 바뀌면서도 생활이 편리함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가발은 더한 것이어서 여성의 가발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지도 못할 정도로 높고 무거운 것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금발의 유행과 권위주의 혹은 대머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발은 그 유행이 오래되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가발을 쓰고는 마차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엄청나게 크고 부풀려진 가발이 인기가 있기가 있었을 때에는 가발에 여러 장식을 하는 것이 함께 유행을 했는데 꽃을 장식하는 것도 모자라 그 꽃의 싱싱함 유지를 위해 가발에 물병까지 함께 달았다고 하니 그 위용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신발의 경우 하이힐의 유행이 척추와 발가락뿐만 아니라 건강에 전체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것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화장의 경우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납중독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유행이 극에 달했을 때에는 몇 센티에 이르게 분을 두껍게 바르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하니 짐작키가 어렵다. 눈동자를 크게 보이기 위해서 벨라도나라고 하는 독을 안구에 떨어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한편 목욕은 로마시대 이후 오랫동안 그 자취를 감추었다. 한 달에 한 번 목욕을 하는 것이 특별하던 시대에 얼마나 사람들이 안 씻었는지는 상상하기도 싫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향수가 발달했다. 또한 그 향수도 곧 사치의 일부분이 되었음은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이렇듯 허영이 꾸준히 발달(?)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이라고 또 다를 것은 무엇인가. 역시 눈동자가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 건강에 좋지도 않은 서클렌즈니 컬러렌즈니 하는 것들이 유행을 하고, 좀 더 아름다운 신발을 신기 위해서 새끼발가락을 뽑아내는 수술을 하고, 좀 더 아름다운 ‘쌩얼’을 가지기 위해서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가 아닌가. 시대가 변하고 기술의 발전이 있었을 뿐 허영과 사치 그리고 과시 치장의 역사는 쭉 계속되지 않는가 말이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하는 윤리적 문제를 뒤로 하고 극히 개인적이자 사회적인 이 허영의 역사는 곧 시대가 변하며 함께 변화하는 미의 의식 혹은 과시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100여 년 뒤에 다시 써질 허영의 역사에는 또 어떠한 군상이 그려질지 자못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