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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아버스 -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
퍼트리샤 보스워스 지음, 김현경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다이앤 아버스를 처음 만난 것은 어언 7년 전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백과사전을 훑어보다가 한 흑백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쌍둥이 자매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었다. 다른 것은 없었다. 단지 쌍둥이 자매는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진을 보고 충격, 그래 쇼크를 받았다. 쌍둥이는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찍이 이런 쌍둥이 사진은 본 적이 없었다. 나란히 서 있는 쌍둥이 자매는 얼굴이 엇비슷하게 생겼고 키도 비슷했고 머리스타일도 같았으며 심지어 옷도 같았다. 아마도 되새겨 보면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공포였을 것이다. 도플갱어를 보는 듯한 느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구한 의심. 기교도 딱히 유별나지 않은 단순한 사진 한 장에서 나는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다이앤 아버스의 다른 사진도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서 보았다. 흑백 사진들이었고 역시 충격적인 사진들이었다. 세상의 이치에서 벗어난 듯한 기묘한 세계가 내 앞에서 펼쳐졌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그리고 나는 공통적으로 사진들 속에서 느껴지는 한 가지를 알았다. 그것은 불쾌함이었다.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들에서는 아름답지만 무엇인가 뒤틀린 세계가 있었고 나는 그것이 왜인지 모르게 불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불쾌한 동시에 매력적인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후일 그렇게 다이앤 아버스가 내 기억의 저장고에서 순위가 밀려가고 있을 때쯤 이 책을 만났다. 검은머리에 검은 눈. 그녀는 흡사 평범한 여인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장난감 같은 저 사진기에서 놀라운 것들이 터져 나왔다는 것을.
그녀의 사진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삶은 일개 범인인 내가 온순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어쩌면 내가 그녀의 사진에서 느낀 그 불쾌하면서도 매력적인 기운을 그녀의 삶에서도 느꼈다면 당연한 말일까. 기묘하고도 불쾌하고 타락했으면서도 한편으로 순수한 세계에서 자신이 살았음으로 그녀의 사진에서 자연히 그런 분위기가 풍겼던 것일까. 그녀의 삶 역시 이해 불가한 점들이 많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유별나다는 예술가들의 삶에 비하면 이해할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녀의 삶은 무엇인가 갈증으로 가득 찬 세계였고, 자신이 채우지 못한다면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갈증이었다. 아마도 그 갈증은 불가해한 것들에 대한 그러니까 미지에의 의구심이었을 것이다.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 속 세계는 단지 우리 사회의 일부분에 있는 것들을 찍어 놓은 세계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범용치 않은 것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흡사 카니발에서의 수염 기른 여자와 자라지 않는 난쟁이들을 보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신기하다라고 느끼는 것들을 그녀는 세상의 한 귀퉁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의 삶이 그토록 범접치 못할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일지도.
나는 그녀를 살아생전에 만나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사진들로 하여금 나 역시 그녀의 삶 속에 그리고 이해하지 못한 기묘한 것들의 향연, 세상의 귀퉁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조금은 불쾌하겠지만 이런 불쾌함은 내가 이때까지 용납하지 못한 하나의 고정관념이나 기준들을 없애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상한 것들의 마법사라고 했던가. 나는 다이앤 아버스를 마법사라고 보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우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던, 정면으로 마주하려 했던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용기 때문에 나는 다시금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껏 숨겨진 세상의 귀퉁이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