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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평점 :
성(性)에 대한 담론은 이 사회에서 금기로 여기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조선시대에 뿌리를 내린 유교는 오랜 시간 우리나라를 지켜왔으며 지금도 그 힘을 잃긴 했지만 여전하다. 사회가 개방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성에 대한 것은 안으로는 은밀하게 이야기가 진행 중이지만 겉으로는 아직도 꺼낼 수 없는 화두 중에 하나다. 왜 그런고 하니, 앞에서 이야기했듯 유교의 영향권 안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성에 대한, 인간의 육체에 대한 그리고 나아가서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 유교의 아래에 있는가. 그것은 성이라는 것은 윤리적 문제의 아래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육체에 앞서 본능에 앞서 성이란 무릇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있는 일들이라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유교의 아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윤리적 문제로 보는 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도 이제는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한창 사회에서도 개방적인 성교육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성교육이 유행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몇몇의 작은 노력으로는 500년 이상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되었던 것을 한 번에 바꾼다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사람들에게 좀 더 읽혀지기에 좋을 법한 책이다. 윤리의 문제가 아닌, 본능이며 육체 그대로를 과학적인 증거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기에.
사람은 동물이다. 포유류에 속한다. 우리는 진화하면서 포유류이지만 동물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거부 또는 제어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인간에게만 존재한다는 이성이라는 것을 앞세워 우리는 여타 동물과는 달리 행동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는 평가 절하 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인간의 육체적인 면을 설명하기보다는 사회 규범적 틀에서 이야기 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작 우리의 몸이 수 천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가 생물 시간에 배웠던 여성의 배란은 28일 주기로 하여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건강한 20대 중반의 여성이라도 배란은 안 하고 그저 넘어가는 수도 많으며 심지어는 주기적이지도 않다. 월경이 주기적일 수는 있겠지만 배란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종족의 번식과 우수한 유전자의 습득을 위해서 여성의 몸은 진화되었고 좀 더 좋은 정자를 판단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정자전쟁까지 발발시킨다. 이는 그저 우리의 몸이 이성이 없는 부분에서는 자로 잰 듯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교활하고 정밀해서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향으로 이끈다. 이것은 수 천년 동안 인간의 진화에 힘을 주었고 또한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로 거듭나기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점은 모두가 알고 인정하는 바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렇게도 사람의 몸이 소위 말하는 '동물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식욕과 수면욕 그리고 성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몸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자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나 여성의 몸에 사정할 때 그 정자의 수를 조절한다. 심지어 그 정자도 모두 수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은 다른 정자를 죽이는 용도로 되어 있으며 어떤 정자는 그저 수태력이 있는 정자가 안전하게 난자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자멸하면서 돕는다. 그리고 극소수의 정자만이 난자잡이를 할 수 있는 진정한 정자이다. 이렇게 세분화된 정자의 모습은 단지 난자와 수정을 하기 전까지 순탄하게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다른 육식동물들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도구를 사용했다. 그것과도 같이 정자들은 수정을 하기 위해서 진화했다. 적은 다름 아닌 다른 남자의 정자.
우리의 몸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단순하게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고 사랑해서 아이를 낳는 방식이 아니었다.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은 끊임없이 서로를 재고 따지면서 종족번식을 위한 최선을 길을 모색한다. 그것은 우리의 이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것은 진화의 바탕이 되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른 치열함이다.
이 책은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그저 윤리적인 문제라는 이유로 혹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기피된 성 담론을 전면에 꺼내고 그것을 과학적 시각으로 그려냄으로써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성적 상식과 더불어 자기 자신의 몸을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것은 이 사회가 치열한 것을 떠나서 아직도 종족번식을 위해서 내 몸이 분투하고 있음을. 그러니까 정말로 사람은 확실하게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물론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동물은 동물이나 사람은 사람임에 틀림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