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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ㅣ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랭크 밀러 글.그림, 린 발리 채색,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잠시 프랭크 밀러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자. 프랭크 밀러의 작품을 무엇을 보았더라?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없다. 그가 그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다 보았지만 정작 그의 만화는 본 적이 없다. 아니, <300>이 처음이다. 영화를 본 것으로 짐작을 하자면 아무래도 그의 작품은 밝기 보다는 어두울 것 같고 행복하기 보다는 슬프다. 신시티에서의 흑백의 강렬한 대비 속에서 목이 잘린 시체가 나뒹굴고 술집의 여인이 허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그렇다. 분명 그의 세계는 밝기 보다는 어둡다. 그리고 역시 <300>도 밝기 보다는 어둡다. 아니, 어두운 것을 지나쳐 암울하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그러니까 살라미스 해전을 치르기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파르타인들의 끝없는 행군 아래 그들의 인간이라기 보다는 야수와도 같은 생활 방식이 펼쳐진다. 그들은 절대 행군을 멈추지 않는다. 낙오자는 그저 낙오자일 뿐이다. 이러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투적인 성향의 스파르타인들이 멀리 바다를 건너 침략을 시도하는 페르시안에게 맞서 어떻게 대륙을 지키는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300>의 개요라고 하겠다.
여기에는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인 살라미스 해전은 정작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이들의 정신을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가 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를 알려준다. 아비 잃은 자식과 남편 잃은 부인을 뒤로 하고 그들은 다시 전쟁으로 나선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의 끝에는 승리가 있다는 것을. 주인공의 죽음을 뒤로하고 환희에 찬 영광을 그리기 보다는 그 환희에 가려진, 사실 환희를 만들었던 사람을 그린 <300>. 그러니까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머나먼 전쟁의 역사를 뒤로하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이긴 것이 중요한 것 보다는 그 사이에서 죽어갔던 생명들을 보였다는 점에서 내가 기대했던, 익숙했던 미국 특유의 분위기가 없음에 어안이 벙벙하다.
무엇이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과 끝의 사이에 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그림에 있어서 프랭크 밀러는 비장미를 더했다. 가슴에 파고드는 대사도 표정도 없다. 단지 그들의 어둡고도 결의에 찬 행군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전쟁터로 가는 결의가 빛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는 만화가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인 그림, 바로 그 그림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전쟁을 포장하기 보다는, 영광을 빛내기 보다는, 아픔을 감추기 보다는. 어두운 투구 아래 붉은 망토 아래 전쟁의 시작이 있음을, 모든 것을 전면에 드러내고 보여주는 <300>. 그저 전쟁을 반대하는 나로서는 큰 감동을 받진 못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만화의 스타일을 접한 것이 기쁘고, 애써 치장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