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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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오스터의 책에 대한 서평을 쓸 때는 나도 모르게 '그러니까'로 시작하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뉴욕에서 벌어진다. 거대한 매트로폴리스의 한복판에 널려진 사람들 사이로 한 명이 한 명을 추적하고 또 다른 한 명이 그를 주시한다. 이 이야기는 제목처럼 3부작인데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있는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이 세 소설들이 어떻게 해서 한 책에 실리게 되었는지 의문이 갈 것이다. 단지 장소적 특징인 뉴욕이라는 것밖에는 주인공도 모두 각기 다른 이야기인데 말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나면 다시금 첫 장부터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유는 분명 다른 사람이지만 이름이 같은 사람들이 몇 번에 걸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읽고나면 다시 읽어도 그 사람들은 이름이 같은 완전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이름은 단지 이름에 불과하고 인칭대명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될 쯤, 소설의 참맛은 다가오기 시작한다.

 세 작품은 모두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주시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정말로 탐정이 등장하던가, 탐정이 아닌 사람이 탐정 노릇을 하게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삶의 편린 속에서 부유하는 거대 도시의 역시 편린들과도 같은 존재이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지루하리 만치 들쑥날쑥한 문장이랄지 두서없는 이야기의 전개랄지 끝도 없는 미로 속에 서있는 것같은 이야기의 갈래와 일화들 속에서 해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뉴욕에서 자라고 뉴욕을 온전히 거리 묘사를 통한 것이 아닌 작품 분위기 속에서 펼쳐내는 작가의 마력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특징은 바로, 출처가 모호한 의문과 끝없는 탐색이다. 폴 오스터는 작은 일화들을 늘어놓는 것을 즐기는데, 익히 아는 바대로 그의 다른 작품인 『달의 궁전』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센트럴 파크에서의 거지 노릇과 어메이징 메츠에 대한 설명을 잊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작품을 휘어잡는 일화가 한 가지 있는데 우리는 바로 이 일화를 제대로 이해해야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세르반테스의 『돈 끼호떼』에서 등장하는 저자에 대한 논란이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그 책의 작가가 확실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책의 안에서 사실은 이 책이 아랍에서 떠도는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를 다른 작가가 썼는데 자신은 번역을 한 것 뿐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이 부분은 다른 책에서도 소재로 활용되곤 하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수록된 단편인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이다. 이 방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의심을 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이야기 자체에 대한 허구를 던짐으로써 다시금 혼돈에 빠지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온전히 폴 오스터에게 이식된다. 그 모호한 의문과 끝없는 추적은 탐정소설이라는 것과 맞물려 계속 의문을 던지고 또한 그것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내면으로까지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을 조명함으로 해서 극명하게 표출된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작자의 고민은 어디까지 이어지며 또한 끝은 어디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은 역시 질문과도 같이 미궁이며 끝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마치 책 속에 등장하는 팬쇼의 장편소설과도 같은 것처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을 말이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활자의 미혹 속에서 지푸라기 하나를 잡으면 그 지푸라기는 다른 거대한 뿌리와 이어져 있고 그 뿌리는 땅 속에서 또 다른 뿌리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 하나 딱히 전면에 나서지 않고 비등한 주제들 사이에서 그때서야 한 가지도 간과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다시 책을 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리좀적인 이야기는 시종일관 비정상적이지만 인간적인 주인공의 사건을 대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폴 오스터의 글쓰기 방식과 주인공의 삶의 방식과 이야기의 결말과 더불어 독자들의 반응까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거창하게 소개하는 까닭은 나 역시 책을 덮고 나서도 혼몽 중의 실체를 잡은 듯한, 도시에 흘러다니는 유령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폴 오스터의 책은 쉽지 않다. 줄거리가 명확하고 결론이 뻔하든 그렇지 않든 상상 용인 가능한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가판에서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어느 공산주의자의 선택과도 같이, 단 하나만이 유일한 진실이고 끝이라는 것은 통용되지 않는다. 조금만 방심하고 있으면 글을 유기체 돠어 머릿속을 돌아다녀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폴 오스터를 읽는 이유는 단 하나, 그의 방식은 언제나 다시금 책을 들게 만드는 바로 그 혼몽과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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