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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 이클립스 - 무삭제판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위대한 영혼, 내게 오소서. 이는 운명의 부르심이니"
Romeo & Juliet 의 리메이크 버전은 굉장히 늦게 봤다. 역시 줄리엣은 올리비아 핫세! 라는 생각이 있어서기도 하지만 난 웬지 레오가 싫다. 너무 잘생겨서. 그냥 태생이 잘생겼던 그가 갖춘 뻔뻔한 연기력과 그저 잘생긴 배우에 만족하지않았던 욕심들이 거슬렸다.
조니뎁도 그런 케이스 중에 하나인데 조니뎁이 포스트 리버피닉스에 지나지않았던 시기를 생각해봤을때, 조금 더 쳐줄수있다.(이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나보다. 리버 피닉스가 죽고 난 뒤부터 조니뎁이 각광받기 시작했으니까)
어쨌든 토탈 이클립스는 중학생 때 쯤 본것 같다. 우습게도 난 근현대의 문학에 빠져있었다. 사랑과 자살을 논하는 베르테르가 멋있게 느껴졌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스토커- 뒤마와 마르그리트 고티에라던가 마농 레스코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런 팜므파탈의 길에 서보고 싶다는, 지금은 떠올리는것 만으로도 아찔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영화의 전반은 베를렌느와 랭보의 사랑이야기이다. 따지자면 16살의 랭보가 베를렌느를 만나 3년안에 현대 시의 판도를 바꿔놓았다는 이야기다. -사랑이라고 얘기하기 역겹다하는 이가 있으나 어쨌든 이 또한 분명 사랑의 정의에 타당하다.
누군가 그랬다. 천재들의 삶은 그로테스크하다고. 맞는 말이다.
마릴린 먼로도, 고흐도, 바스키아도, 내가 좋아하는 이디 세즈윅도 다 단명했고 비명횡사했다. 인생사 무서울것없이 뻔뻔하게 살았을 것 같은 앤디 워홀도 세명의 컴퍼니 사람들에게 총 맞아 죽었다고 했다. 영화는 1871년 9월, 파리의 성공한 시인 베를렌느가 아더 랭보가 보낸 시 8편을 받고 그를 프랑스로 데려오면서 시작된다.
당연히 비극을 안고 시작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서로를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영혼의 동반자라고 여겼지만 타인의 시선엔 그저 결혼한 중년의 남자와 미성년자의 변태적인 부조화에 불과했다. 이는 여전히도 엄격하게 다뤄지고 있는 동생애 코드를 도덕적 법률적 죄악으로 묶어놓고 있었던 사회적 통념에 대한 반향이다.
베를렌느는 랭보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보고 문단에 데뷔하게 해주었지만 그 한편으로는 그의 천재성을 따라갈수 없다는 근본적 자괴감으로 힘겨워한다. 상충된 두 사람의 세계관은 급기야 랭보로 하여금 베를렌느에게 절교를 선언 하게 하고, 이로 인해 감정이 격해진 베를렌느는 랭보를 향해 총을 쏘지만, 이내 체포되어 2년간의 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들의 관계는 복잡미묘한 애증으로 얽히고 섥혀있다. 그것은 비단 둘만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외면할수만은 없는 현실이 베를렌느의 어깨를 누르고 압박한다. 사회적 지위, 시선, 통념, 의무. 모든 것을 버리기란 쉽지않다. 원래 무에서 유는 가능하지만 유에서 무는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어쨌든 영화의 끝을 파멸로 보기에는 어렵다. 해석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말할수도 있다.
실제로도 랭보는 굉장한 미소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미소년 정도로 논하기 어려운 미를 가졌다. 마치 영화는 레오나르도의,레오나르도를 위한 영화 같았고 사람들이 타이타닉으로 한참을 대중적 선방에 섰던 그에게 여전히도 배우로써의 큰 기대를 저버리지않게 해주었던 것도 그가 어렸을적 선택했던 토탈 이클립스와 길버트 그레이프 같은 영화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유분방하고 이상학적이었던 랭보. 가끔은 궁금하다.
예술적 감각에 갖는 광기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