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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들이 한 철 내내 혹은 일 년, 이 년, 몇 년의 시간 동안 공들여 써 놓은 소설을 내가 하룻밤 만에 홀딱 읽어버리는 것은 무례한 일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소설 역시 맛집 탐방이나 화장품 후기처럼 출간 되자마자 인터넷에 인증샷이 찍히고 서평을 등록함으로써 ‘일회용 상품’ 같은 이미지가 되어 가고 있는 오늘이지만,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할 만큼 책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나였기에, 아직 나에게 책은 ‘반영구적 상품’이었기에, 언제부터인가 소설가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소설을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큼이나 행동이 따라주지는 못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운데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친필 사인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팬레터를 보내기도 하고, 낭독회를 찾아가 질문을 드린 분은 신경숙님이 유일하기에 팬으로서의 조금의 자부심을 가지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고, 7월의 산울림 소극장에서의 시간을 더듬어 보며 서평을 쓴다.
가평에서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소나기처럼 후두둑 서울에 도착해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만 같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지하철에 냉큼 올라타니 마치 다른 나라 낯선 도시에라도 와 있는 듯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 기분 그대로 홍대에 도착해 마주한 신경숙 선생님 앞에서는 왠지 모를 숙연함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지만 말이다.
혹자는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라면 몰라도 소설은 절대 사서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 날 산울림 소극장에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의 이야기를 기꺼이 돈 주고 사서 보는 지극히 참견 많고 감성 많고 눈물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나벨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자료를 찾아 읽으며 써내려간 이야기이기에 읽으면서 걱정과 안타까움이 많이 교차하는데 낭독회 중에도 그런 여운이 감돌아 장내는 곧 숙연해지는 듯 했다. 작가는 충분히 애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하는 것이 문학의 몫이라고 하면서 80년대 한국사회에서의 죽어버린 청춘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것만 같다. 여러 인물의 죽음을 그리고 있어서 왜 그렇게 많이 죽였냐는 질문에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에요. 주인공들은 내가 하자는 대로 안 해요, 생명력을 가져요.”라고 진지하게 이야기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이 죽었다기보다 지금 이 공간에 살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일 년 후, 십 년 후 다시 우리 사회에 짠하고 등장할 것만 같은, 아니 어쩌면 벌써 또 다른 청춘의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청춘 소설이면서 한국 현대사에 발을 담그기도 한 소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에 고마움을 느끼는 건 따스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들이 함께 밥을 짓고 오순도순 먹는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해 놓아 읽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간직하고 있을 ‘밥정’에 대해 추억하도록 했으니 말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크리스토프 이야기 역시 신발을 잃어버리고 정윤을 업는 명서를 통해 재연되면서 인간과 인간 간의 밀착을 강조한다. 내가 강을 건너면서 동시에 강에 업히기도 하는 것처럼 매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빚을 지고, 함께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굳이 모르더라도 업어보고 업힘을 당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는 편안함과 따스함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상처는 치료해야 되고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가만히 안아주고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하는 화법도 우리들의 어깨를 토닥인다. 포옹은 곧 온기를 말하는 것, 명서의 프리허그는 80년대 청춘을 보냈고, 지금 청춘을 보내고 있고, 앞으로 청춘을 보낼 우리 모두를 향한 몸짓이지 싶다.
어나벨은 겨울과 어울리는 소설이다. 지난겨울 동안 이 소설을 써 왔다는 작가의 말 때문이 아니라, 소설 뒷부분에서 명서 이름을 다시 만났을 때, 몇 년 전 겨울에 보았던 영화 ‘내 사랑’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헤어진 애인을 만나기 위해 6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프리허그 운동가가 타국에서 프리허그 운동을 하는 명서와 오버랩 되었다. 청춘 소설이기에 청춘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것이기에 이 소설이 과연 잘 쓰여졌구나 싶다. 겨울은 포옹이 더욱 잘 어울리는 계절이기에, 그래서 이제 곧 찾아 올 겨울에도 나는 어나벨을 읽고 있지 않을까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