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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난다언니가
한동안 김연수 김연수
자나깨나 김연수에 빠져있다는 얘기에,

김연수 책 추천해줘 했다가
엉겁결에 산,
청춘의 문장들

얼마전 임양을 만나서 물어보았다

내가 스무살때 너에게 준 깨달음 중에 기억나는 걸 대봐

스무살의 난,
친구들에게 매일 한가지씩
그날 내가 깨달은 바를 전하는 아이였는데

그걸 매일 한 줄씩 노트에 적었더라면,
두고두고 꺼내 읽어보며 키득거릴 수 있는
유머집 한 권은 가질 수 있었을텐데 싶다

청춘의 문장들,은
작가가 살면서 느꼈던 깨달음들을
옛 문인이나 시인들의 글과 함께 엮은 책이다.

다 읽고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훑어보니
작가의 깨달음 보다는
예쁜 문장에 밑줄이 훨씬 많다

70년생 작가니까
뭐, 나보다 6년 정도 많이 산 것인데
그 깨달음이란 게 뭐그리 대단한 게 있겠나... 별로 없다

내가 두어번 다시 읽기를 반복한 것은,
그리고 궤변에게 그대로 베껴 보내준 것은,
책의 서문, 그중에 도넛에 대한 얘기다.

아, 내가 왜 자꾸 무언가를 배우면서도 슬픈지
그리고 왜 자꾸 어딘가 비어있는 채로 사는 느낌인지, 

도넛이 쓰여진 서문이 가장 좋았고,
도넛이 쓰여진 서문만으로 
나머지 240 여 페이지를 꾹 참고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에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 밤이면 고향집 2층 지붕 위에 올라가 누워 있곤 했다. 처음에는 내가 아래에 있고 별들이 위에 있지만, 이윽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위치가 바뀌어 내가 위에 있고 별들이 아래에 있게 된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그 별들의 바다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별들만이 가득한 바다, 또 나는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지, 그게 너무나 궁금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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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엊그제, 액자걸이를 사서
그동안 방구석에 세워뒀던
김점선 그림을 걸었다

그리고, 오늘 부고를 접하다

난소암이었단다

보고있자면
절로 행복해지는
저 말그림들,

어쩌면 고인의 저세상 입구에
저런 표정의 말들이
마중 나와 있을 것만 같다

세상은 따뜻한 곳이었나요? 

뚱뚱해져서 죽어라! 예술가들이여!

   마티스처럼 지팡이로도 지탱할 수 없는 뚱뚱한 몸. 그래도 그의 마지막 작품은 모든 걸 바쳐도 아깝지 않은 걸작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걸작을 남겨야 한다. 한 번이라도 예술가라고 불린 자라면 그래야 한다. 무언가를 아끼고 무언가를 조심하느라 주춤거리고 그러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자는 예술가가 아닌 협잡꾼이다
. (본문 386p 전문)

난 누군가의 에세이에 내 돈을 지불할 만큼 돈이 많지 않다.
하지만, 교보에서 점선뎐을 들었다가 하필 이 페이지를 읽었다.

그리고 궤변을 졸라 일주일 후에 책을 선물받았다.
결국 내 돈으로 사진 않았네. 쩝

여튼, 그녀의 그림을 언제 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중만 사진작가와 공동으로 한 전시회에 간 적은 있다

그녀의 말 그림을 보고 있자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점선뎐'을 읽으면서, 나는 왜
그녀의 말 그림을 보면 행복해지는지 이유를 찾았다

분명 그리는 이는 1946년생 김점선이나,
그건 신체만 그러한 것이고
그리는 주체는 온전히 대여섯살의 꼬마라는 생각이 든다

2005년에, 소설가 박민규의 좌담식 강의를 들으러 갔을때
박민규가 그런 얘길 했다

내 소설은 내 안의 소년이 쓰는 이야기라고.

그래서 내가 그녀의 그림에,
그리고 그의 소설에 쉽게 감화되었나 보다.
꾸밈이 없으니 말이다.

배추와 인간의 나체는 뭐가 다른가? 배추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벌거벗고 있다. ... 사람은 배추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구성하는 한 종류의 생명체일 뿐이다. '나는 배추하고 사귀면서 놀아야지. 나는 커서 배추하고 결혼해야지. 나는 배추하고 한 몸이 돼야지. 나도 배추로서 일생을 살아봐야지' (본문 21-25p 中)

사춘기를 거치면서 여러 나라 시인들이 쓴 시를 읽고 그들의 생애를 알게 됐다. 수많은 시인들이 후대가 없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 그중에서도 아르튀르 랭보가 제일 불쌍했다. ... 랭보의 지방을 식구들 몰래 차례상 뒷다리, 안 보이는 곳에 붙였다. ... 조상님들이 음식을 잡숫는 시간에 나는 속으로 말했다. '랭보씨, 음식 먹는 시간입니다. 어서 드십시오' (본문 83-84p 中)

아, 귀여워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란 아이가 친구면 좋겠다 싶다
아무런 편견없이 그냥 보이는대로 보고 생각하는.

한때, 그녀같은 삶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접한 그녀의 결혼 비하인드 때문이었는데,

선배 전시회에 갔다가 뒷풀이에서
노래를 썩 잘하는 남자에게 대번 "나랑 결혼하자" 했고
그 역시 그러자 해서 그 후로 20년을 함께 살았다는 얘기였다.

책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는데,
예술가라면 마땅히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기저귀를 빨기 위해
얼음물에 손을 넣어봐야 한다는 어떤 선배의 얘기에,

부유하게 자란 이대생, 엄친딸은 집을 나와, 
노숙자같은 남자와 즉흥적으로 결혼하고
주어진 시간엔 오로지 그림을 그리다 잠을 자는 것으로
삶의 목표를 정했다.

그녀의 붉은 말그림은
물감을 한가지색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 때문이었던 거다. 

책을 읽으며 자꾸 고흐 생각이 난 건,
김점선도 참 외골수다 싶어서다 

삶의 주체, 오롯이 삶을 자기 식으로 만드는
그녀의 모습은 매혹적이나 여전히 내겐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나쁜 안색의 사람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 죽기 전의 얼굴색이 가장 끌리는 색이다. 건강해터진 인간들을 보면 그 긴 무의미한 인간 역정이 미리부터 피곤하다. 저토록 건강한 저자는 도대체 언제 이 생을 다하고 쉬게 될까? ... 인생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쓰라고 주어진 시간뭉치란 말인가? (본문 46p 中)

요 며칠 줄쳐둔 몇몇 문장을 반복해 읽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듯,
나도 무료한 이 생에, 내가 사는 증거를 찾고 싶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행복한 말그림을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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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시공아트 29
프랭크 휘트포드 지음, 김숙 옮김 / 시공아트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2005년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에서 
클림트를 처음 보았다.

그때 난 <프리차 리들러>를 한참 보았는데,
거기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인물화였으나 색채의 쓰임이나
인물 주변의 독특한 문양들로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보이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클림트전 관람을 위해,
내멋대로의 해석이 아닌 제대로된 배경지식이 절박했던 바

<클림트>를 구입했다.

작가의 서문은 클림트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당겼는데,
그건 클림트가 생전 일기나 편지에 인색했으므로
그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가 매우 희귀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내용의 전반은
연대기순으로 클림트의 행보에 초점을 맞춘
객관적인 정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휴, 지루해

게다가 클림트는 자기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자기 그림을 보라고 했다고 하니,
뭐... 더 파고들래야 알 수도 없겠다.

다만 나는 그의 화풍이
그 이전에도 그의 사후에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가 매우 남다른 감수성의 소유자였으리라 상상한다.

그가 스스로의 작품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고,
필력이 없어 편지쓰기를 싫어했다는 설명에 대해서
어쩌면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인물이었거나
혹은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거나 그는 매우 비밀스럽고
타인의 시선에 갇히는 걸 혐오했으며 
매우 자유로운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가 분리파의 일원이었고 또 엄청난 정력가였음에도
단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걸 보면 그렇다.
(그의 사후에 친자소송을 13명이나 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단 한 사람에게만은 예속되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그래서 매우 위험한 상상이긴 하나, 

혹시 그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를 사랑했으나 
결코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갈망하진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책에는 그녀와 그가 어쩌면 연인관계였을 수도 있다고 쓰여있지만
그 시대 둘 사이의 스캔들이 전혀 없었던 걸 보면
그건 전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그녀 이름으로 된 작품이 2점 있고,
<유디트>도 그녀의 얼굴이다.
유디트 속 여자의 목걸이는 실제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가
남편에게 선물받은 목걸이라고 한다.

나는 <키스>도 그녀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클림트는 어쩌면 그의 작품 안에서
그녀와 마음껏 정사를 벌였는지도 모른다.

<유디트>를 관람하던 중에 나는 나도 모르게
클림트가 어쩌면 자신의 목을 내어주고서라도
그녀를 품기를 고대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그녀는 유디트만큼이나 치명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달콤한 <키스>는 그가 꿈꾸는 완벽한 환상은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가 그녀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흉터를 감추고 싶어한 손가락을 표현한 그 섬세함과
모든 작품들 속 여자들의 그 섬세한 손들,
그건 어쩌면 그녀의 또다른 해석은 아니었을까 하는,

나만의 위험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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