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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올 초에 난다언니가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인데,
향주의 생일선물 가운데 이 책이 포함돼 있었다
요이땅, 하면서 읽은 것은 아니지만
대략 3시간 반만에 읽었다
그야말로 후루룩 씹지도 않고 국수 먹듯
책장을 넘겼다는 결론
내 일생에 이렇게 빨리 읽은 책은 아마 없을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메일로 주고받는 두 남녀(에미와 레오)의 편지글,이다보니
빨리 읽기가 가능했다
일단, 독특한 형식을 택한 소설들에
나는 일종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라디오에 보내는 엽서 테두리에 레이스 같은 걸 달거나
요란하게 치장을 해서, 쉽게 채택되도록 하는
일종의 "잔꾀" 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뭐 그렇단 얘기고 어찌됐건
서로의 외모를 모르는 두 이성의 이메일 교환은
사랑의 속성,을 관통하고 있다고 느꼈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두 남녀, 에미와 레오는
가장 이상적인 이상형을 서로에게 투영한다
당연히, 사랑이 싹튼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에미와 레오의 편지를 훔쳐읽는 나 역시
그들을 전혀 모르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에미처럼 레오를 매력적인 남성으로 기대하더란 사실이다
아마, 남성 독자들은 에미에 대한 환상을 가질 거다
작가는 그래서 이메일 이라는 형식을 가져왔나 싶다
이건 매우 영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당신 생각을 많이 해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과 그 바로 앞, 바로 뒤 시간에도. 다정한 인사를 보냅니다. 레오. (p.145 )
이런 낭만적 글쓰기를 하는 남자,
게다가, 왜 다음 부분이 젤 재밌었는지 알 순 없지만
Re: 레오, 당신은 그저 비관, 비관, 비관, 비관, 비관하고, 모든 걸 어둡게, 어둡게, 어둡게, 어둡게만 그리고 있어요
Aw: 어둡게.
Re: ???
Aw: 어둡게. (당신이 하나를 빼먹었어요. '비관'이 다섯 번이면 '어둡게'도 다섯 번이어야죠. 아니면 '비관'도 네 번, '어둡게'도 네 번이든가요. '비관'이 너무 많았어요) (p.280)
이런 말장난식의 편지글을 매우 좋아하는 얄팍한 노쇄처녀는
레오,라는 남자한테 꿈뻑 죽는 거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추억은 정말 한 두개쯤의 대표되는 왜곡된 기억으로 존재할 뿐이요,
그 시절들은 하나같이 무의미하게 텅비어 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사랑을 빼고 보면
나란 존재는 그 어떤 구체적인 모양조차도 갖추고 있지 않다
레오와 에미에게도 이메일의 시간은,
Delete 키를 누르면 흔적도 없이 삭제될 거다
참 쉽고 가볍게,
후속작인 <일곱 번째 파도>가 이미 출간됐다고 하는데,
쩝, 뒷얘기가 있어야 되는 것인가 싶다,
어쩌려고 말이다, 그건 사족이다, 난 전혀 궁금하지 않다
잠깐이지만,
꽤나 괜찮은 남자처럼 느껴진 레오 선생이 마신
2003년산 소비뇽 비신티니, 콜리 오리엔탈리 델 프리울리
화이트 와인을 찾아 마시고 싶다
아무튼, 저 너머 형체없는 사랑은 노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