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심프슨의 성령론 크리스챤 신서 98
A. B. 심프슨 지음, 김원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A.B. 심프슨(Albert Benjamin Simpson)은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C&MA)의 창설자이자, 미국 부흥 운동의 선구자였다. 오늘날 심프슨의 여러 저작들은 깊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하여 널리 애독되고 있다. 특별히 20세기 신비주의자로 일컬어지는 A.B. 심프슨의 탁월한 영성의 비결을 이 책 한권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면 너무 과장된 말일까! 참으로 이 책은 성령님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탁월한 책이며,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성령님의 임재를 풍성히 맛보도록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성령, 위로부터 오시는 능력”이다. 이 책은 구약 성경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신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령에 대한 구약의 모형과 상징과 예언, 그리고 다양한 성령의 역사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님에 대한 신약의 약속과 기록, 그리고 계시 등을 각 책별로 다루면서, 우리로 하여금 깊은 성령님의 임재를 누리도록 해준다. 그야말로 복되신 성령님을 마음껏 마시도록 해준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성령님의 중생케 하는 역사를 넘어, 우리 속에 있는 생명샘으로부터 흘러넘치는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재촉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월터 M. 텀블은 “이 책 한쪽 한쪽에는 마음을 꿰뚫는 날카로움과 이상하리만치 영혼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마치 성령님께서 내게 친밀히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듯 했으며, 내 마음은 심히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서 과연 아름다운 성화의 삶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듯 흘러나오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삶에 대한 갈급한 마음과 갈증을 갖게 되었다.


심프슨은 성령님의 사역의 최대 영광인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일로 우리의 모든 관심과 시선을 이끌어 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인격적이고 의식적인 임재가 곧 보혜사의 사역을 통해서 임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도록 해준다. 성령님이 하시는 가장 큰 일은 막후에서 그리스도의 실재를 나타내어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것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에 심프슨은 그 일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우리의 내면에 그리스도를 향해 목말라 하는 갈증을 성령님의 사역과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이름으로써 풀도록 하고 있다. 심프슨의 말하는 바의 핵심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성령님의 깊은 사역을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된다. 진정 성령님의 역사 속에는 아름답고 장엄한 그리스도 생명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로 변화되는 놀라운 길이 있다. 이는 우리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본성과 생명에 일치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때로는 광풍과 같이, 또 때로는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의 귓전을 울리며, 우리의 마음을 진동시킬 것이다. 이러한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은 우리로 하여금 한 순간의 복스런 변화가 아니라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되어 갈 것이며,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의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영적인 사역을 갈망하는 모든 사역자와 승리와 성화의 삶을 갈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서재에 이 기념비적인 책이 꽂혀있길 바란다. 그리고 자주 읽고 묵상함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에 이르는 신령한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오 하나님, 우리로 아름답고 장엄한 그리스도 생명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로 변화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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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2005-05-0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 감사...
 
이야기 사도행전
진 에드워즈 지음 / 미션월드라이브러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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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진 에드워즈의 탁월한 상상력과 필력이 어우러져 초대교회의 역동적인 교회생활이 현대적인 의미로 되살아났다. 초대 교회의 모습을 현대적인 상황에서 다시 재구성해봄으로써 우리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을 만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도전은 사도들이 가졌던 역할과 열정에 대한 안목을 열어줌으로써, 지금 현대 교회 안에서 미래를 향한 교회의 소망과 비전을 새롭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교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저자의 야심찬 행보라 하겠다.


저자가 그려내는 초대 교회의 모습과 삶은 심히 감동적이다. 진정한 교회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역동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저자가 그려내는 초대 교회의 모습과 삶은 현대 교회와 비교해볼 때, 너무도 색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이단적이라 할 만하다. 즉 저자는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니라 곧 그들 자신이었다. 그들 삶의 순간순간들은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 자체였다. 그들은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러한 진정한 교회 생활이 몸에 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강력한 사도행전의 역동적인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온전한 사역자(목사, 또는 전도사)보다 오히려 훈련 중인 사람에게 더 많은 (사역의)기회와 혜택이 주어지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오로지 교회 생활만으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질인 겸손과 자비로움, 사랑과 인내심으로 무장된 복음사역자들이 잉태된다고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정말 저자가 말하는 이러한 교회 생활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사도들은 오직 한 가지만을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며, 발전시키는 일이다. 사도들이 경험한 초대 교회의 삶을 중심과 축으로 신약교회를 세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날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놓치고 있는 “교회 생활의 정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숨막히도록 박동감 넘치는 초대교회의 삶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올 때, 우리는 사도행전의 열정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경이로움을 맛보게 된다. 이에 우리는 현재 우리의 교회 생활을 뒤 돌아보게 되고, 무언가 놓치고 있는 교회 생활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진정한 교회 생활의 생명력과 역동성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기독교는 초대 교회의 생명력을 놓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사실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교회들이 제도적인 기관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우리의 교회 현실이자 영적인 현주소이다. 상황이 그럴진대 어찌 신약 성경이 말하는 교회 생활을 체험하며, 우리의 교회 생활을 통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드러낼 수 있을까? 진정한 교회 생활이 없이 어찌 교회의 믿음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책에서 하나님이 뜻하신 신약 교회 생활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 곧 진정한 교회 생활에 대한 기쁨과 환희를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교회 생활의 완전한 회복은 우리가 그야말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영성을 회복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 속에 초대 교회의 삶에 대한 열망이 일어나고 진정한 교회 생활을 향한 소망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시작이자 첫걸음이다. 진정한 교회 생활, 정말 열정적이고 생명력으로 충만한 교회 생활을 맛보길 원한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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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
유성준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요즈음 뜨는 교회는 주로 초대형 교회이다. 하지만 교회의 대형화를 추구하는 요즘 150여 명 정도의 극히 적은 성도 수로 거대한 미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교회가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과연 반응이 어떨까? 그것도 깊은 영성 뿐 아니라 예수 중심의 사역을 활발히 펼치는, 그래서 이 시대에 모범이 되는 교회가 있다면…


그렇다. 작지만 큰 영향력을 통해 결코 작지 않은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워싱턴에 위치한 세이비어 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이다. 1947년 고든 코스비에 의해서 설립된 이 교회는 철저한 입교과정과 고도의 훈련을 통해 150여면 정도의 성도로 거대한 미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교회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세이비어 교회는 모든 사역에 관상의 삶을 강조한다. 관상기도란 흔히 우리가 기도할 때 쓰는 기도문, 언어, 상상을 배제하고 우리의 감정, 의지, 감각 기관의 사용도 제한하며 오로지 하나님과 친밀히 사귀는 기도이다. 이러한 관상기도를 통해 세이비어 교회는 나를 철저히 비우고 하나님이 그 안에 들어설 수 있도록 기다리는 침묵의 기도를 훈련을 통해서 실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분명한 부르심을 받고 철저하게 그 명령을 그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순종하는 관상의 삶을 실천한다.


세이비어 교회가 행하는 사역의 핵심적인 철학은 다음과 같다.

①영적인 삶을 통해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②주님이 보여주신 긍휼의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며,

③주님이 섬기셨던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받은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며,

④용기와 희생적인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헌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이비어 교회 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신은 진정 하나님께 헌신된 교회를 지향하면서, 7개 분야에 75가지의 연관된 사역을 진행하면서 연간 1,000만불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역동적인 교회로 활동하고 있다. 몇 가지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주거사역-희년주거사역(저소득 지역주민을 위한 교육 및 아파트 임대사역), 사단법인 만나 지역개발(저소득 주님들이 소득에 맞게 주택을 소유하도록 하는 사역), 미리암의 집(에이즈로 죽어가는 여성들을 위한 주거시설), 요셉의 집(남성 노숙자들을 위한 요양시설), 사마리아인의 집(마약, 알콜에 중독된 노숙자들을 위한 치료 및 주거시설), 베다니의 집(도움이 필요한 노숙자 가족들을 위한 주거사역), 사라의 집(노인들을 위한 주거사역), 카이로스의 집(노숙자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들이 임시로 머무르는 주거시설), 방주의 공동체(지체 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라르쉬 공동체), 안드레의 집(세이비어 교회 방문자들을 위한 주거시설)

치유사역-콜롬비아 로드 진료소(건강보험이 없는 저소득 주민을 위한 치료시설), 그리스도의 집(노숙자들을 위한 치료시설)

영성사역-토기장이의 집(워싱턴에서 처음 시작한 커피 하우스 및 서점), 여명수양관(침묵기도를 위한 수양관), 웰스프링 컨퍼런스 센터(침묵수양관과 같은 지역에 있는 세미나 또는 수련회를 위한 시설), 물질사용에 대한 수련회(물질과 신앙과의 연관과 제 3세계 순례에 관한 수련회), 추수의 시대(가난한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부를 나누는 사역) 등등


이처럼 오늘날 세이비어 교회의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서게 된 것은 대형화를 통한 자기 권력 과시라는 문화로의 중독을 철저히 탈피하고, 숫자를 통해서 오는 힘의 유혹을 의지적으로 거부한데서 온 것이다. 그리고 채우는 것 보다는 비우는 삶을 사는 것으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날마다 나타나도록 철저한 훈련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전한 헌신을 위해 삶의 4가지 영역인 ‘변화, 증거, 양육, 활동’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이 4가지 영역을 바로 이해할 때, 세이비어 교회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이에 소개를 하자면, ‘변화’란 내면적인 훈련의 길을 걷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내 안의 자아는 죽고, 내 안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증거’란 교회에 대한 참된 이해로부터 오는 것인데, 즉 교회는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에 대해서 증거하는 증인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이 능력이란 죄를 회개케하고,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바꿈으로써 개인과 도시와 국가를 새롭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결국 이 능력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능력에 의지하여 회복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 세상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가 있는 것이다. ‘양육’이란 교회는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길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고자 하는 자들을 인도하고 격려하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교회는 영적인 노정을 분명히 아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활동’이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도 고통을 체험한 자로서, 이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이 치유 받도록 끊임없이 중보하고 진심어린 노력을 통해 활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4가지 영역에서의 세이비어 교회의 활동은 결국 오늘날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셀교회, 속회, 구역, 순모임, 목장 모임 보다 더 체계적으로 발전된 사역공동체(Mission Group)로 구체화되었다. 이 사역공동체는 참여하는 모든 멤버들이 각자 비전과 사명감을 안고 헌신하는 삶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내면을 향한 여정(영성)과 세상을 향한 여정(사역)의 조화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의 삶을 그대로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이 예수의 삶을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봄으로써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 교회의 본질을 통찰하고 초대교회의 비전을 따라 진정한 교회(Authentic Church)를 추구해온 세이비어 교회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교회가 처음 가졌던 비전이 퇴색되면 생존을 위한 제도만이 남게 된다고 말했다. 과연 한국 교회는 얼마나 초대 교회와 일치하는가? 또한 한국 교회는 신약 교회의 본질을 얼마나 통찰하면서, 신약 교회의 원리에 충실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를 위한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되는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과 삶을 통해 진정한 교회를 향한 자성의 운동이 일어나길 바라며, 우리의 토양과 정서에 맞는 적용을 통해서 진정한 교회로 발돋음하는 놀라운 역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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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근 2005-04-20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야 하겠습니다. 마스길님의 친절하고 정확한 리뷰가 저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데이비드 보건 지음, 김은홍 옮김 / 기독신문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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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존스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영국의 청교도들을 알프스 산맥으로, 칼빈을 히말라야 산맥으로 표현한다면, 에드워즈를 에베레스트산에 비유하고 싶은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일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기를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다면, 과연 그 말이 진실하다는데 이의가 없을 줄로 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출생한 그 시대의 배경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처럼 위대한 그리스도인을 만드시는데 사용하시는 합당한 환경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시대는 “(교회의)권징은 느슨해지고, 교리는 희미해지고, 그리고 설교는 맥 빠지고 생명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어느 시대건 성도의 성별된 삶이나 경건한 삶, 즉 성화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면, 그 교회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영적인 불모지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성을 빛낼 종들을 일구어 내시고, 영적으로 가장 암흑한 때를 거룩의 가장 밝은 횃불을 치켜들 시기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과 자랑이 무색해졌을 때,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때임을 이러한 방법으로 알리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때에 “에드워즈는 신앙의 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경건하게 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혹의 내적 투쟁과 갈등으로 되풀이해서 고통을 받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그는 진정한 기독교는 규칙에 대한 단순한 외적 순응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음 깊은 곳의 항구적인 변화를 필요로 했다. 새로운 열망을 가지고 그는 구원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마침내 디모데전서 1장 17절을 읽으면서 구원의 기쁨과 평화에 들어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바대로 구원은 지극히 피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저 그리스도의 속죄론에 대한 강좌를 듣고는 지적인 동의만으로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회심했다고는 하나 회심 이후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은 달랐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감미롭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만물이 달리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이제 “모든 것에서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된 형상을 닮고자 하는, 그리고 모든 것에서 순결하고 감미로우며 복된 복음의 법칙을 따라 살고자 하는 불타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과 거룩함!”, “그리스도와 거룩함!” 이러한 생각들이 에드워즈의 생각과 경험 속에서 불가분 연결되었고, 거룩함은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거룩함은 하나님과 연합한 영혼의 아름다운 상태라고 했다. 따라서 에드워즈의 성화 체험은 결코 이론적인 것이 아니었다. 에드워즈의 마음은 목회를 하는데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마음은 목회에 가장 먼저 가 있었고, 새로이 이뤄보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주해였다고 한다. 자신에게 맡기운 그리스도의 양무리들을 위하여 그가 필요로 한 힘은 오로지 하나님의 힘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최고의 갈망으로 삼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성령 체험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진정한 성화의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에드워즈의 성화의 체험과 성화의 삶이 영국의 대각성 운동과 이어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표면적이고 겉치레뿐인 종교생활로 인해 영적인 쇠퇴 현상이 두드러지고, 종교적 합리주의의 결정체인 이신론(deism)이 세력을 얻을 때, 강력한 체험 종교의 변증가로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복음 진리의 횃불을 가장 환하게 밝힐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강력했던 부흥의 시기에 성령의 역사로 인한 은혜로운 정서와 사단의 모조품인 거짓된 정서의 차이를 구분할 수가 있었다.


결국 이러한 차이를 극명하게 구분하고자 한 그의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자격에 대한 엄격한 기준 적용으로 나타났다. 성찬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는 공개적인 경건의 고백을 하고, 그 고백에 따른 경건한 삶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는 이러한 성경적인 원리와 원칙이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원칙은 배척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조나단 에드워즈는 면직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한 교회 사임은 에드워즈와 그의 가족에게 충격과 동시에 큰 어려움이 되었지만,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했다. 이후 에드워즈는 선교사로 신학자로, 마침내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취임 일주일 뒤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은 에드워즈는 이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취임 후 한 달 만에 많은 세월 동안 충성스럽게 섬겼던 영광의 하나님을 마지막으로 증언하면서,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갔다.


에드워즈의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본다. 어쩌면 에드워즈는 겸손한 선교사로서 자신의 시대를 마치며 만족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추방지에서 이끌어 존경의 자리에 앉히심으로써, 자신의 충성된 종에게 영예를 돌리시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그렇게 영광의 집으로 맞아들이셨다.


저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에 대해 ‘그의 책들은 설명의 걸작이지만, 그의 삶은 헌신의 걸작’이라고 했다. 회심의 시기부터 삶의 마지막까지,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과 영원의 빛 가운데 살았던 성화의 사람이었다. 오늘날 복음은 편만하게 증거되고 있지만, 그 삶에 복음의 능력은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힘써 조나단 에드워즈를 알아야 한다. 그와 더불어 사귄 시간 만큼, 우리는 더욱 성화의 삶에 가까이 갈 수 있을 줄로 안다. 그리하여 그의 정신에, 그의 육체에, 그리고 그의 영혼에 비친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의 빛이 우리의 정신에, 우리의 육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밝히 비치길 소망하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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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찢는 우는 사자를 몰아내라 - 내 영혼을 갉아먹는 분노를 향한 선전포고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김진웅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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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에 상처를 받으며, 때론 고통을 느끼고 분노한다. 어떤 때는 상처가 너무나 크고 깊어서 감당할 수가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복수하고픈 충동을 느끼며, 마음 속에선 이미 수백 번, 아닌 수천 번도 더 복수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자기 연민과 분노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조용하고 침착한 태도를 보이지만 안으로 숨겨둔 감정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이며, 사건들 또한 실화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몇 가지 이야기만 적어본다.


마리에타의 딸은 유괴된 후 살해되었다.

캐럴의 남편은 이웃집여자와 간통을 저질렀다.

델프는 트럭을 후진하다가 두 살짜리 아들을 치었다.

케이트는 알콜 중독자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았다.

빌의 아들은 음주 운전자에게 희생되었다.

스티븐은 총에 맞아 평생 장애인이 되었다.

(……………)

그리고 여기 이 자리는 당신의 자리다.


만일 우리가 이 이야기의 희생자나 또는 희생자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사실 이것이 우리가 당한 현실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엄청난 현실 앞에 사실 우리는 무력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가운데 안팎에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복수를 향한 외침은 오히려 정당한 일이다. 그래서 상처로 황폐해진 마음 밭과 그 가운데 어슬렁 거리는 사자들의 고함 소리가 우리를 잠식시킨다.


바로 이 때, 우리 속에서 용서하고픈 마음도 가냘프지만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용서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당한 일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데, 그저 용서한단 말인가?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으로 용서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용서치 못하는 마음을 품음으로써 그 영혼이 깊은 감옥에 갇힌 듯 파리해져만 간다. ‘증오하는 사람은 증오에 매몰돼 철저히 황폐해진다’고 했다. 또한 저자는 ‘가장 끔찍한 감옥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영혼’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복수인가 용서인가 사이의 갈등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쏟기로 결심했고, 그것이야말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겪은 고통을 극복하는 길임을 발견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용서가 지배하는 정말 위대한 삶을 발견할 것이다.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이 모두 용서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길을 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에서는 용서가 해낼 수 있는 정말 위대한 기적은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랑이 이룰 수 있는 풍요로운 삶은 맛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삶은 보잘 것 없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게 그토록 깊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희생과 고민과 갈등과 그리고 마침내 사랑을 선택하는 위대한 용기를 보면서, 내 눈에서는 환희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곤 한동안 잠자는 듯 하다가도 일어나 다시금 으르렁거리는 못된 사자를 몰아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우리가 아무리 진실하게 용서하기로 결심했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결심을 날마다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선택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위대한 선택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원수를 친구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사랑이다. 미움을 미움으로 갚아서는 원수를 없애지 못한다. 적개심을 없애야만 원수를 없앨 수 있다. 미움의 본성은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것이다. 사랑의 본성은 새롭게 변화시키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사랑에는 변화시키는 구원의 능력이 있다. 마틴 루터 킹 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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