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율법, 유대인
E. P. 샌더스 지음, 김진영.이영욱 옮김 / 감은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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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E. P. 샌더스의 또 하나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1부 바울과 율법, 2부 바울과 유대인이란 주제를 다룬다. 특별히 샌더스는 바울의 서신서들이 율법과 관련해서 제기하는 질문은 무엇인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놀라운 학자적 혜안을 가지고 다룬다.

 

샌더스는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선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할진대 율법은 왜 주어진 것인지, 게다가 로마서 3-5장과 로마서 8장에서, 율법에 대한 바울의 진술 또는 태도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무엇보다 샌더스는 바울 사상의 핵심으로 그리스도에의 참여를 꼽는다. 이로써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게 되며, 또한 거기에 어떻게 머물 수 있는지를 밝힌다.

 

무엇보다 샌더스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없이 인간의 죄의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모두 죄 안에있으며 죄인들이다. 둘 다 죄 안에 있고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는 아무 효력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대속사역 덕분에 사람들은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은 자들의 단체인 (the body)”으로 옮겨진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백성에 들어가게 되는 조건은 동일하다. 구원받은 자들의 단체로 옮겨가지 아니하는 자들은 멸망 받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이전에 지은 죄들이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전의 범죄들로 인한 부담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용서받고 면제받았으므로 의롭다(35p). 이렇게 믿음에 의해서 의롭게 된 사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 사람들은 과거 이전 죄 안에 살았던 삶이 아니라, 일정한 방식에 따라 살아야 한다(31p).

 

여기서 샌더스는 우리에게 들어감(getting in)과 머묾(staying in)이란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서 그리스도에의 참여라는 바울 신학의 핵심을 표현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nomos()라는 용어를 서로 다른 두 개의 문맥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주해함으로써 칭의와 성화의 진리를 온전히 고수한다. 즉 하나는 사람이 어떻게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들어가는가를 논의하는 문맥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그 안에 있는사람이 어떻게 (율법을 지키면서) 행동하는가를 논의하는 문맥에서 사용하고 있음(36p)을 밝힌다.

 

샌더스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다라는 바울의 진술은 갈라디아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 로마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갈라디아서에선 사람이 의롭게 되는 문제는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문제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오는 세상을 유업으로 받는 문제였다.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길은 율법의 행위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후사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으로 된다. 율법은 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의미와 목표는 무엇인가? 율법은 모든 사람을 의에 이르기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였다. 이런 측면에서 율법의 효용성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기초로 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몸에 들어갈 수 있기를 뜻하셨다.

 

로마서의 맥락에서 율법의 효용성은 무엇인가? 물론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다만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옛 사람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시킴으로써, 율법에 대해 죽고, 죄에 대해서 죽음으로써 율법의 정죄하는 권세로부터 해방을 받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신자의 빚을 상쇄할 뿐 아니라 신자가 친히 죄의 세력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새 생명을 얻는 방도를 제공한다(373p).

 

따라서 육신에 있는 인간은 전체 율법을 도무지 이룰 수 없지만, 율법으로부터 해방을 받은 사람은 성령을 통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룬다. 따라서 육신에 속하지 않고 영에 속한 사람은 율법을 행한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율법" 혹은 "그리스도의 법"을 이룬다(173p). 동일한 율법이지만, 이 율법을 대하는 사람의 상황이 다르다. 죄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죄와 사망의 율법이지만, 성령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육신 안에 있는 사람은 율법의 선한 요구를 행할 능력이 없지만(185p), 성령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이룬다(187p). 샌더스는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반드시 이루어야 하고 실제로 이룬다고 주장했다(298p). 중요한 것은 사람이 육신에 있는가, 아니면 성령 안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바울 서신서의 전체적인 밑바탕이 되는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 율법과 은혜 사이의 날 선 대결이 거장의 주해를 통해서 그리스도에의 참여라는 신학의 정수로 꽃을 피워가는 과정을 직접 참관하는 듯한 기쁨과 환희를 충분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두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논문은 바울과 유대교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제를 한 가지씩 다룬다.

바울 사상의 중심이 되며 결정적인 특징들에 대한 논의를 길게 늘이고 싶지는 않지만 한 가지 특징을 더 언급해야 겠다. 즉 바울의 사상과 그 사상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술어 사이에 차이가 있는데, 바울은 바로 그 술어를 가지고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구원받은 상태로 옮겨진 것을 논의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과 ‘믿음의 의한 의‘를 논의하면서 나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게 되는가 하는 문제 대한 바울의 이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용어를 논의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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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기도 -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코 안전한 길이 아니다
크레이그 그로쉘 지음, 유정희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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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누는 사랑의 속삭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정말 기도를 단단히 오해한 것이다. 그런 기도는 정말 안전한 기도요, 하나님께 그저 보험을 드는 기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제 단순히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소통을 넘어서, ‘나를 살피시고, 내 마음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나를 시험하여 보소서라고 기도해보라고 초청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으로 보여주시는 대로 살기 위해 용기를 발휘해보라고 도전한다. 어린 독수리가 안전한 둥지를 벗어나 저 높고 푸른 창공을 날기 위한 격렬한 몸짓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만일 위험한 기도의 힘을 알고, 나의 안전한 기도들에 계속 넌더리가 난다면, 자기 중심적인 신앙을 벗어나 타인중심적인 신앙으로 도약하고 싶다면, 기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 위험한 기도를 시작할 때이다. 이것은 영혼을 정결케 하고, 마음을 고치며, 영원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우선시하는 마음과 줄곧 싸워 왔으며, 이것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영적 결함이라는 말을 했다. 목회자로서, 사역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분노하고, 다른 성도에게, 심지어 아내에게 화를 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순간, 왜 화를 냈을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을 위한 분노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을 하나님께 받은 인정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위신과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나를 깨뜨리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저 하나님께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생명을 보호해주시고, 더 많은 것을 달라고 구하는 대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깨뜨려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으려면 나 자신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손으로 완성하실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보려면 우리는 하나님께 굴복해야 한다.

 

우리가 설교하는 복음의 핵심은 와서 죽으라는 초청이다. 그런 복음을 설교하기 전에 목회자부터 죽어야 하지 않는가? 자신의 죄들에 대해서 죽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죽고, 육신과 자아에 대해서 죽고, 두려움에 대해서 죽고, 또 자신의 죄성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그것은 편안하고, 미적지근하고, 파트 타임의 헌신이 아니다. 주님의 뜻에 철저히, 담대하게 굴복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나를 보내소서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보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하실 수도 있다. 정말 엄청난 일, 아니면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순종의 기도는 결코 쉬운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경외심이 없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은혜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렇다. 위험한 기도는 처음부터 은혜였다.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보고, 주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는 훈련이다. 은혜는 나를 바로 세워줄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시는 모습대로 세워줄 것이다. 나를 바로 세우는 기도, 그것이 바로 위험한 기도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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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은혜의 능력
존 M. G. 바클레이 지음, 김형태 옮김 / 감은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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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이토록 성경적이고도 충격적으로 제시한 책은 보지 못했다. 참으로 놀랍고, 경이롭다. 이제야 성경의 맥이 뚫리고 은혜의 신선한 공기가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와 상통(相通)하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바울 신학의 정수를 만난듯하다.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은 구원을 오직 은혜로만받는다고 주장했고, 그 이전과 이후 그리스도들인 순전한 은혜’, ‘완전한 은혜’, 혹은 값없는 은혜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한 것과 달랐다. 제자도 없는 기독교, 방종과 방탕한 삶을 묵인하는 기독교, 성화 없는 크리스천 월드를 탄생시켰다.

 

순전한 은혜는 결코 순전하지 않은 결과를 내었다. 심지어 순전한 은혜의 왜곡까지 생겨났다. 즉 하나님은 세상을 은혜와 사랑으로 대하시기 때문에, 어떠한 진노나 심판까지 배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곧 하나님조차도 악을 벌하고 악인을 정죄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은혜는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를 허위로 받아주는, 무책임하고 도덕률 폐기론적인 주장을 위한 구실이 되어 왔다. 이 모든 것은 은혜를 잘못 이해한 탓이다. 은혜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의 어느 한쪽 측면만을 특별히 강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은혜를 극대화시키는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여섯 가지 요소를 이렇게 설명한다.

 

1. 초충만성(superabundance) : 초충만한 선물은 규모, 중요성, 혹은 지속시간에 있어서 극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즉 거대하고, 후하고, 끊임이 없고, 오래 지속되는 것 등을 가리킨다.

 

2. 단일성(singularity) : 단일성이란 자비나 선함이 수여자의 유일하거나 배제적인 활동 방식임을 의미한다. 즉 수여자는 언제나 오로지 혜택을 베푸는 특성만을 가진다.

 

3. 우선성(priority) : 우선성은 선물을 주는 시점과 관계가 있다. 즉 수신자가 어떠한 일을 행하기 이전에 선물이 주어지는 특징을 가리킨다. 우선적인 선물이란 요청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너그러움의 발로로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선물이다.

 

4. 비상응성(incongruity) : 수여자와 수신자 사이의 관계와 연관된 것으로, 선물과 수신자의 자격이나 가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화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비상응성이 극대화되면 선물이 수신자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5. 유효성(efficacy) : 선물은 긍정적인 효과를 산출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범과 격려를 통해 선행의 발전을 돕는다. 게다가 수신자를 새롭게 구성된 자아를 창조하며, 은혜의 작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반응하게 만든다.

 

6. 비순환성(noncircularity) : 선물은 보답이나 교환이 없을 때 순전한 것으로 극대화된다.

 

이렇게 정의하고 나서,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는 수신자의 가치에 상응하면서도(즉 비상응성은 채택하지 않으면서도), 초충만하며, 우선적일 수 있다. 그것은 가치와는 상관없이 주어질 수 있지만, 여전히 보답은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어떤 사람은 이러한 은혜의 다양한 측면 중 어느 하나의 측면 혹은 둘 또는 그 이상을 강조하고 또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은혜의 측면을 강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대립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 자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은혜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문제였음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은혜는 우리를 과거의 우리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은혜는 인간의 영혼에 주입되며, 영혼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고무시켜서 신자를 의롭게 만들어주며, 궁극적으로는 구원받을 만한 가치를 가지게 해준다. 형성시키는 능력인 은혜는 신자로 하여금 죄 용서로부터 성화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따르도록 인도하며 마지막 심판의 날에 구원받기에 합당하도록 만들어 준다.”(74-75p)고 했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은혜의 어느 한두 가지의 측면을 극단적으로 강조해온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너무 공짜 은혜에 익숙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바꾼 것은 아닐까 하는 자성의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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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 - 연결과 소통을 향하여
김상일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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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는 장로교 목회자이며, 농민과 노동자 대상으로 목회를 하다가 1989년 뉴욕 맨해튼의 리디머장로교회를 개척하여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되었다. 뉴욕 맨해튼이라는 서구 문화의 최첨단을 달리며 지성인들로 가득한 지역에서 도시교회를 개척하고, 어떻게 지성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괄목할만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어찌 보면 이러한 팀 켈러의 목회 성공의 비밀과 그의 신학적 비전을 연구하여 제시한 책이다. 저자의 노고가 상당히 엿보인다.

 

팀 켈러는 사실 찰스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즈, 마틴 로이드존스, 그리고 청교도들의 설교를 많이 참고했으며, 자신의 설교의 주동력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복음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이 현대인들의 마음에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즉 그가 생각했던 문제점은 이렇다. 복음이 지적인 체계로만 전달되는 경향이 있다. 정작 사람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의도치 않게 놓치고 있다. 복음이 마음에 전달되어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18p)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교회개척 초기에 많이 기도하고 연구했던 부분은, 어떻게 해야 이 복음이 사람의 마음에 닿게 해서, 현대인들로 하여금 피조계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개인과 공동체를 키워 낼 수 있는가(19p)였다.

 

이를 위해서, 교회개척 초창기에 켈러는 자신의 설교청중들에게 자신의 설교가 끝난 후에 그들이 들은 설교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청중들의 반응을 분석하면서, 대안을 찾게 되었다. 그 결과 켈러는 나름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사회적 상상이라는 렌즈를 사용할 것, 성육신적 설득 모델로 전향할 것, 현대문화의 정체성을 복음의 정체성으로 변화시켜 자의식의 변화와 자존감의 변화로 승화시킬 것, 성경의 내러티브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에 닿기를 시도할 것, 청중들의 니즈를 파악하여 그들의 의문과 문제들에 대해 답변을 주고 또 해결해주는 변증 설교를 하고, 개인 신앙에서 공적 신앙으로 도약시킴으로써 복음 메시지를 공적인 영역과 연결하고 소통시킬 것, 상황화를 통해서 복음과 문화 사이의 접점을 마련하여, 복음으로 문화를 도전할 것 등등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너무 많이 상황화된 복음 때문에, 복음의 진리가 희석된 모습으로 나타난 교회들도 있고, 반면에 너무 적게 상황화된 결과 교회 바깥 사람들과 불통의 길을 가는 교회들도 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우리는 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을 연구한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신학적 비전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저 다른 교회의 비전과 성장비결을 카피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영적 통찰력을 얻고,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새로이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다. 팀 켈러의 연결과 소통이란 신학적 비전을 통해서 현재의 목회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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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역사
게리 A. 앤더슨 지음, 김명희 옮김 / 비아토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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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2성전 이전과 이후로 죄의 의미와 용법이 바뀌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착상하여, 이러한 죄의 역사의 반전이 인류에게 가져온 위대한 진실을 숨막힐 듯 제시한다. 이렇게 죄에는 역사가 있으며, 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성경의 이념을 실행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저자에 따르면 죄는 막연한 실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이며, 누가 죄를 범하게 되면 실체가 있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 사람의 등에 짐을 지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사람의 손에 오염될 수도 있고, 빚이 생길 수도 있다. 이렇게 죄가 만들어 낸 실체는 그것과 씨름하여 처리할 때까지 죄를 범한 사람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과의 갈등과 고뇌를 만들어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은 오염된 손을 깨끗하게 하거나, 짐을 벗거나, 빚을 청산함으로써 면죄를 받아야 한다(20-21p).

 

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죄와 용서의 개념이 달라진다. 오늘날 죄를 용서받는다는 개념은 죄를 빚으로 보는 이미지에서 왔으며, 주로 제2성전 이후에 대중화된 죄의 개념에서 왔다. 이렇게 죄를 무엇으로 표현하는가, 죄의 배경에 흐르는 내러티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인간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구성 요소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서 레위기의 속죄일/ 1성전 시대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2성전 시대를 비교해보면, 죄의 개념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1성전 시대에 죄는 하나의 짐이었고, 짐으로서 죄는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한 후 광야로 보내었다. 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없애는 의식에는 속죄 염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 하나하나의 어깨에 얹힌 죄라는 물리적 실체를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24-25p). 하지만 제2성전 시대에 죄는 빚의 이미지를 입게 되었고, 죄는 탕감 받아야 하는 빚이며,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빚을 탕감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서 우리 빚을 탕감해 주소서”(6:12 KJV 참조)라고 기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 탕감 받은 자로서, 이웃의 빚 또는 죄도 탕감해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18:23-35).

 

저자는 이러한 죄의 역사의 변천을 제1성전 시대에서 제2성전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히브리어의 변화에 착상하고서 더욱 흥미진진한 성경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고 들어간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죄의 역사를 모세오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예레미야, 다니엘 등 예언서 등을 관통하면서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서에 이르기까지, 죄가 인류에게 가져온 그리고 인류가 감당할 수 없었던 형벌의 폐해와 채무 변제의 의무를 하나님은 어떻게 합법적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청산하는데 성공하셨는지를 풀어나간다.

 

구약성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이 책에 대한 논평에서 놀랍다. 눈을 뗄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이 책은 참으로 놀랍다. 죄의 역사에 따른 예수의 죽음과 부활, 속죄 규정, 자선 행위, 면벌부에 이르기까지 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을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다. 죄와 관련된 성서적, 종교적, 신학적 주제의 발전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엄청난 몰입감과 흡입력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며, 결국 죄를 죄답게 이해하지 못한 지난날의 죄를 고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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