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
로널드 롤하이저 지음, 이선정 옮김, 허찬욱 감수 / 생활성서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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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에게 깊은 영성의 사람이 아니면 길어낼 수 없는, 진리의 우물 속 깊은 곳에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헨리 나우웬 이후 대표적인 영성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로널드 롤하이저가 그런 사람이다. 이 책은 현대 성경신학 연구에 획을 그은 구약성경 학자로서 깊은 영성에 예리한 지성과 풍부한 문학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월터 브루그만에 의해서 부활의 힘에 대한 강렬한 증언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추천을 받을 만큼 강렬하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고통과 시련을 당한다. 그 때 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처럼 하늘을 우러러보며 구조의 손길을 보내주시길 기도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예수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것은 자신을 십자가에서 구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승리의 찬가가 아니라 버림받았음을 고백하는 자조섞인 신음소리였다. 왜 그럴까? 여기에 십자가의 신비가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수동성과 비활동성의 깊은 의미 속으로 끌어간다.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겟세마네의 외로움과 험한 십자가로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간다. 독자는 이 책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수동성과 비활동성으로 풀어내는 한땀 한땀 심혈을 기울인 스토리에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며, 신음하듯 예수님의 수난과 내가 이생에서 겪고 있는 시련의 동질감을 토로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무언가를 자신의 의지로 행하기 보다 모든 일을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순순히 수동성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수난의 입구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활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공생활 기간 대부분을 적극적인 활동가로 사셨다. 통솔하고 가르치고 치유하고 기적을 행하시고 조언해주고 죄인들과 식사하고 토론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시면서 사람들을 복음의 삶으로 초청하셨다. 예수님은 정말 바쁜 삶을 사셨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시작하신 순간부터 이러한 모든 활동은 중단되었다. 이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그저 맡겨진 분이 되었다. 이렇게 어떤 일을 적극적이고 활동적이고 능동적으로 행하시던 시간이 멈추고, 모든 것이 수동적으로 흐르는 시간으로 들어가셨다. 이것이 바로 수난의 의미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신 그 모든 활동보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고통이 더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다른 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능동적으로 행하던 시기보다, 오히려 무력하고 주도권을 갖지 못한 시기에 더욱 심오한 방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하셨다. 나에게 주도권이 없는 상황에서, 굴욕과 고통을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힘겨운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도 고통을 겪는다.

 

우리의 고통을 말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해보자. 동산에서 예수님이 느끼신 고통은 무엇보다도 인간존재의 가장 어두운 심연, 즉 오해, 외로움, 고독함, 굴욕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의 심연으로 홀로 들어가는 고통이었다. 동산에서의 고통은 냉담함으로 짓밟힌 섬세한 마음, 증오에 짓밟힌 사랑, 오해에 짓밟힌 선함, 잘못된 판단으로 짓밟힌 무고함, 살인으로 짓밟힌 용서, 지옥에 의해 짓밟힌 천국이다. 이 외로움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고통받은 이는 살려 달라고 외칠 정도로 큰 고통을 받았다. 이런 자리에 예수님이 먼저 가셨다.

 

이 자리는 바로 죽기 전에 죽는 법을 배우는 자리다. 다가오는 무섭고도 두려운 죽음의 순간에, 암흑과 기세에 눌려 모든 것을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려면 우리도 죽기 전에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통과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항상 진실함과 성실함, 올바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죽기 전에 죽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목숨을 빼앗길까 두려워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도를 통한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예수님처럼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사랑의 요구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믿음이자 순명을 따르는 길이다.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누구를 감명시키지도, 제압하지도 못하는 무력한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처절한 메시지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고통을 면제해주시지 않은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고통을 면제해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님을 굴욕과 고통, 죽음에서 구해주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굴욕과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어가시는 힘든 순간에 군중은 조롱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해주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렇게 굴욕과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다. 우리 하나님은 구조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십자가 안에 숨겨진 핵심적인 계시다.

 

하나님은 굴욕과 고통, 죽음에서 우리를 구해주고자 개입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일이 벌어진 후에 굴욕과 고통,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 우리는 종종 신앙의 근거나 설교의 근거를 구조하시는 하나님, 진실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특별한 면제를 약속하시는 하나님께 두고 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으면 굴욕과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으면 번영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모든 위험에서 고통을 면제해주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으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고, 우리가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계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셨다. 예수님에게서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수치와 부끄러움과 죄가 쏟아져나오고, 깨끗해지고, 자신들 안에 더 깊고 풍성한 생명이 흘러넘치며, 새로운 영적인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의 죽음에서 무언가 흘러나와 제자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죄의식을 덜어주었으며, 삶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피와 물로 씻겨 정화되었고, 새로운 힘을 얻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셨을 때, 마침내 부활의 아침이 밝았다. 예수님의 몸이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났을 때 우주의 물리적 구조까지 재배열되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은 구조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입증하셨다. 부활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믿음 속에 살게 되며 고통 속에서 괴로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 더 심오하고 영원한 힘으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이렇게 부활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공포는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부활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힘이 우리를 매순간 떠받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우리는 십자가 없는 신앙, 고통 없는 성공의 길을 약속하는 얄팍하고 허황된 말잔치 뿐인 헛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나를 구하시지는 않지만, 끝끝내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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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거룩하라 - 죄를 죽이고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삶, 개정증보판
찰스 피니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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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피니의 “죽을만큼 거룩하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온전한 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것을 넘어,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된 후에 어떻게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 책은 “죄를 죽이고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삶”이란 부제처럼 성화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키고, 성화만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메시지는 독자로 하여금 성화의 과정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일깨운다. “죽을만큼 거룩하라”는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헌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상기시킨다. 피니는 성화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적인 과정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성화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피니가 말하는 온전한 성화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4절에서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에 터 잡고 있다. 분명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성화”(살전 4:3, KJV)에 있음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성화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인 온전한 성화를 위해서 피니는 무엇보다 온전한 성화가 무엇이며 또한 온전한 성화가 의미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소상히 밝힌다. 이 부분은 독자에게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읽을 것을 요구하는데, 왜냐하면 의외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화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온전한 성화는 곧 우리로 하여금 죄를 전혀 지을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게 해주거나, 우리의 본질과 본성을 완전히 바꾸어서 죄를 짓지 않는 경지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는 기도와 믿음의 노력이 아예 필요없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성화가 단순히 외적인 행동의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마음의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종종 외적인 모습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진정한 변화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진정 예수님의 피흘린 사랑을 입은 자로서, 우리 몸과 마음의 능력으로 가장 높은 헌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고 또한 드려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면서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섬기려는 온전한 순종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성화를 실현하는 길이다.


 


 온전한 성화는 현실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선물이다. 이생에서 성화의 삶은 아예 포기한 채 죽음만이 성화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류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온전한 성화의 선물을 받아 행복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로 우뚝 서는 것을 보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성화의 삶은 단순히 우리의 노력과 애씀으로 가능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능력이 우리 영혼 속에서 풀어질 때 가능하다.


 


 혹시라도 완전한 성화가 우리의 생애 동안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거나 또는 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을 마음의 확고한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면, 온전한 성화는 어느 개인의 성취 정도로 치부할 위험이 있다. 오히려 피니는 성화의 과정이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는 한 몸으로서 교회가 온전히 성화될 것이라는 복된 약속 위에 굳건히 서 있음을 강조하면서,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온전한 성화를 향한 서로의 믿음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온전한 성화를 향한 무겁지만 희망찬 발걸음을 시작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아울러 성화의 과정이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지속적인 여정이란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 자신이 노력하고 애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재삼재사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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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스캔들 -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유는 어떻게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가
달라스 윌라드 지음, 노종문 옮김 / 복있는사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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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 나라의 스캔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안일해지는 것은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서가 아닐까? 이 책은 하나님 나라가 단순히 종교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되면 나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더욱 뜨겁게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강력한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달라스 윌라드는 이미 하나님의 모략이란 책을 통해서 국내 독자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출간된 하나님 나라의 스캔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가 어떤 사람들에겐 걸림돌(. skandaon, 스칸달론)이 되지만, 우리에겐 보배로운 모퉁잇돌이 되는 진리의 향연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삶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를 살아내게 해주는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왜 저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스캔들이라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스캔들인 것인가? 윌라드는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좋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의 믿음만큼 위대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늘들의 나라의 실제를 살아내려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도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윌라드는 하나님이 바로 여기에 계시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경험할 수 있게끔 이미 도래했다는 뜻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들의 나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의 믿음은 하나님을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신뢰하는 것이었고, “항상 하나님의 임재속에 거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내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자체였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자체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그저 장차 큰 영광과 권세로 임하는 미래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예수님은 그 자체가 스캔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의 말씀과 비유는 이제 누구든지 거듭남이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거듭나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다는 실현된 종말론의 서막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신적인 지혜인 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념은 잊게 되고, 점점 열리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며 또한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묘한 흥분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풍성한 삶, 하나님과 그의 나라로부터 우리 영혼 속으로 하늘의 영적인 자원이 밀려들어오는 삶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질서로서 정의가 작용하는 세계와 하나님의 질서로서 사랑이 작용하는 세계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줌으로써, 나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리트머스 종이처럼 보여준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가기를 열망하지만, 지금은 제자의 삶을 살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또 하나의 스캔들이 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살려는 갈망을 가진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눈 앞에 가져다주는 진리의 향연이 되어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선포하셨다. 그것은 곧 일어날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예수님이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재림하실 때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적 차원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미 와 있다. 그 나라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순간에 그 임금과 함께 왔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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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침묵 - 불안의 시대를 뚫고 그분의 마음을 듣다
헬무트 틸리케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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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헬무트 틸리케는 나치 치하에서 신앙적 양심을 지키며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요 윤리학자이며 복음주의 설교자다. 독일 전후의 비극과 불안에 짓눌린 독일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예언자적 설교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 책에 실린 설교는 1942-1951년 독일의 격동기에 작성된 것이다. 이러한 극심한 풍랑의 시대를 뚫고 나온 그의 10편의 설교에 담긴 선지자적 음성이 오늘날 불안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하나님의 침묵과 힘겹게 씨름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영혼에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공명하고 있다.

 

그 시대 독일의 격랑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또한 다양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불안을 느끼며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느껴보고 싶은 진한 열망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불안과 죄책감이 밀려올 때 하나님을 애타게 찾고 그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럼에도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망연자실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단순한 신학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현실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가 겪는 고통과 불안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과 불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침묵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이 침묵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그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시작 내러티브로서 마태복음 1521-28절에서, 한 가나안 여자의 절규어린 간구와 그에 대한 예수님의 침묵을 대조시키고 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15:22-23) 예수님은 침묵하셨다. 우리는 소리치고 절규하고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믿음과 의심 사이를 수천 번이나 왔다 갔다 한다. 저자는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는 대개 침묵 이면에 그분의 더 깊은 뜻이 있다”(39p)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제시하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의 신뢰라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침묵은 인간의 침묵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우리는 그 침묵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저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단순히 부정적인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고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나에게 큰 도전이 되었고, 앞으로의 삶에서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침묵을 통한 소통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그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단순히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것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나에게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가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결론적으로, 헬무트 틸리케의 하나님의 침묵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귀중한 책이다. 그의 깊이 있는 성찰과 통찰은 나에게 큰 위로와 도전을 주었고, 앞으로의 신앙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가고, 그분의 침묵 속에서도 신뢰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하게 되었다.


크리스천북뉴스 http://www.cbooknews.com/?m=bbs&bid=book_review&uid=1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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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시간 - 그리스도의 시간성 안에서 사는 삶
L. 앤 저비스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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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시간/L. 앤 저비스 지음/김지호 번역/도서출판 100/이종수 편집고문

 

이 책은 참 놀랍다.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의 진리를 시간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자가 전개하고 싶어 하는 주제, 곧 신자는 그리스도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거대한 모티프를 이해하려면, <구원사적 관점에 본 바울의 시간 개념><묵시론 관점에서 본 바울의 시간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바울 학파들의 반성 없는 습관에 도전하고 있는데, 이미와 아직을 결합하여 현재 신자들은 옛 시대와 새 시대 사이의 중첩내지 긴장속에 존재한다는 식으로 바울의 종말론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방식에 도전한다. 오히려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시고 높아지신 아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현재 시간을 신자들에게 열어주신다는 놀라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그리스도의 시간 속에서 신자는 그리스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는 엄청난 은혜와 특권 속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리고 이 시간 속에서 신자는 모든 것, 심지어 고통, 인간의 죄 성향, 육체적 죽음까지도 그리스도의 생명과 삶으로 변형되고 생명과 삶을 위해 변형되는 초월적인 삶에 참여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위해,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히포, 플라톤, 칼 바르트를 인용한다. 하지만 바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구원사적 관점과 묵시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구원사적 관점이란 시간을 선형적이고 순차적이며 목적론적으로 보는 것이며, 묵시적 관점이란 하나님께서 영원의 시간을 현재적 시간 속으로 침입하실 수 있고 또 침입하게 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구원사적 관점에서 본 바울의 시간 개념을 설명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 불트만의 역사와 종말론, N.T. 라이트의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제임스 던의 바울 신학 등에서 다루고 있는 직선적 시간 개념과 이미 성취된 것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사이의 긴장이라는 시간의 중첩이라는 개념을 저자 나름의 이해력으로 통찰해내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역사적 과정의 일부로서 구속을 성취해오셨고, 이 역사 속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종말의 시간에 꽃을 피우게 될 것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저자는 묵시론 관점에서 본 바울의 시간 개념을 설명하면서, 알베르토 슈바이처의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 카를 바르트의 로마서, 교회 교의학, 에른스트 케제만의 로마서, Primitive Christian Apocalyptic 등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 개념을 분석한 결과, 바울의 두 시대라는 개념 속에는 근본적으로 묵시적 개념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연속적인 두 아이온에 대한 묵시적 도식은 현재 시간 속으로 침입하였으며, 역사의 종말은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의 때에 이루어질 것이기에 시간은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실체임을 밝히고 있다.

 

이로써 현재 두 시대가 동시에 존재하며 신자들은 두 시대를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새 시대를 개시했기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서, 부분적으로는 새 시대에 살고 있고 부분적으로 옛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신자가 단순히 중첩된 시대에 살아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데 있다. 왜냐하면 항상 바울의 초점은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지닌 시간성을 다음과 같이 풀어내고 있다. 즉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다는 것은 곧 신자가 그리스도의 현재적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의 시간을 살아냄으로써 악한 현시대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시간성 속에 살아가게 되며, 악한 현시대에서 해방되어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되며, 인간의 삶 속에서 성령을 매개로 한 그리스도의 활동을 하며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은 현재 그리스도의 시간 속에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 가운데 살고, 현재적인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 속에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의 현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 위에서 누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그리스도의 날/ 파루시아가 도래하기 이전부터 현재적인 삶으로 누릴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신자의 승리로 치환할 수 있으며, 이미 그리스도께서 죄와의 전투에서 승리했기에 그리스도의 승리를 담보로 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현합한 사람은 사탄에 맞서는 선택만으로 하나님의 승리가 현시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이 모든 은혜를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부활, 높아지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시간성 안에 살고 있다는 말로 압축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웅장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서재에 꽂혀 있어서 틈틈이 탐독되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2025년 새해를 웅비(雄飛)하게 시작하고픈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들려져야 한다


크리스천북뉴스 http://www.cbooknews.com/?c=25/36&uid=1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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