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의 도전과 복음주의의 응답
크리스토퍼 M. 헤이스.크리스토퍼 B. 안스베리 지음, 성기문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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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역사비평가들의 역사비평에 대해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일이 결코 복음주의자들의 기독교 신앙고백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역사비평적 방법을 진지하게 다루도록 격려하는데 있다.

 

역사비평가들은 누구인가? 역사비평가들은 지난 300년 동안, 창세기 2-3장의 역사성을 부인하며, 아담의 역사성을 부인하며(아담의 역사성을 부인함으로써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전가된다는 원죄론을 부인하는 주장, 74-82p), 신명기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하며(신명기는 모세 사후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저술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모세 언약의 계시를 지속적으로 후대에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위작이라는 주장, 144-150p),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을 부인하며(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민족적 자기정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신화적, 전설적, 비역사적 민간전승들을 통합한 후대의 문화적 창작물로 보는 주장, 115p), 역사적 인간으로서 예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신성을 부인하는 일을 해왔으며, 뿐만 아니라 이사야서의 다수 저자 저작설, 요한복음의 사도 요한의 저작설 부인(요한복음의 저자를 그저 아무개(John Doe), 또는 장로 요한, 또는 나사로라는 주장, 235p), 바울의 후기 서신서의 사도 바울 저작설 부인(모든 목회 서신이 위작이며 1세기 말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발생한 권위의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바울신학의 개정판을 담은 선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 249p) 등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모세오경, 이사야, 요한복음, 바울 서신 등이 위작이며, 이렇게 정경에 위작이나 위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들을 허무는 것은 아니며(251p), “예수가 물위를 걷는 기사나 폭풍을 잠잠케 하신 기사가 부활절 이후에의 조작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예수가 온전히 하나님이며, 온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다”(270p)며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주관적 환상에 의해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실제로 본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예수를 보았다고 믿었을 뿐이다(281p)라는 부활을 부인하는 비평에 대해선, 단호하게 어떤 형태로든 부활을 부인하는 견해에 대해 정통 기독교라는 우산을 제공함으로써 그런 견해를 이단이라는 고발로부터 보호해줄 수는 없다.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은 결국 기독교를 부인하는 것이다.예수의 신성이 단지 신화적 경건의 표현일 뿐이라면 속죄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힘을 잃고 마는데, 왜냐하면 예수가 부활한 적도 없고 하나님도 아니라면 그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셨다고 믿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286-287p)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역사비평가들의 비평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복음주의자들이 대답해야 하는 분명한 명제들이 있다. 역사비평가들은 신명기 내에서 모세가 3인칭으로 제시되고”(144p) 있는 점, “마태와 누가가 예수의 수태와 유아기에 대해 서로 상당히 다른 이야기들을 제시한다”(274p)는 점,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서 저자들의 묘사가 세부 사항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327p)는 점에 대해서 비평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자들은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을 배양함으로써 이에 대한 복음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한계는 있다. 그렇지만 성경의 역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수많은 아시리아 명문들, 여리고 발굴, 우주의 연대에 관한 근대의 천체물리학 이론”(38p)이 아직 존재하지 않은 현재적 상황에서, 성경이 묘사하는 사건들은 실제 시공간의 역사 안에서 발생하지 않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역사비평가들의 주장에 대해서, 복음주의 성서학자들은 그저 침묵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분명한 답변을 준비해야 될 것이다.

 

저자는 확고하다. 역사비평을 수행하되 그리스도인으로서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복음주의자들은 비평적 신앙을 통해서 역사비평과 전통적 논제들의 재진술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하며,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역사비평적 판단에 신실하게 참여하고 그 판단을 신학적으로 성찰하자(336-337p)는 저자의 외침에 독자는 어떻게 공명하고 반응할 것인가?

 

어떤 형태로든 부활을 부인하는 견해에 대해 정통 기독교라는 우산을 제공함으로써 그런 견해를 이단이라는 고발로부터 보호해줄 수는 없다.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은 결국 기독교를 부인하는 것이다. - P286

예수의 신성이 단지 신화적 경건의 표현일 뿐이라면 속죄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힘을 잃고 마는데, 왜냐하면 예수가 부활한 적도 없고 하나님도 아니라면 그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셨다고 믿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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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이 말하는 예수
제임스 D. G. 던 지음, 박규태 옮김 / 비아토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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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임스 던 교수의 마지막 작품이다. 신약성경이 예수를 얼마나 다채롭고 깊게, 그리고 풍성하게 제시하는지를 이 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교회 밖 사람들에게 제시하고픈 진지한 바람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역사적 인물로서 예수의 생애를 연구하고, 첫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운동의 본질로 회귀한다.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은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인이나 심지어 무신론자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수의 이미지 향상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예수의 신성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묘사하는 대로의 예수가 역사상 예수와 똑같지는 않다는 의혹이 깔려 있고, 또 이 역사적 예수를 교의敎義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예수의 본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려는 시도와, 또한 성서비평학과 엮여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런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초창기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해 놓은 첫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관하여 기억한 내용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특징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성경 안팎의 자료들을 통해서 예수의 본질을 조명하고 있기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예수에 대한 탐구를 제시함으로써, 신약성경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영향이 단지 역사 사건들의 연속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스무 세기 전에 주어졌지만 지금도 계속하여 의미와 힘을 발휘하는 가르침의 연속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온 뜻을 다해 증언한다.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계속되는 영향과 체험이 있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향이 존재하며, 이는 예배와 사귐을 통해서 알려진다고 믿는다”(289p)고 말했다. 결국 신약성경이 말하는 예수는 단순히 성경 속의 교리적인 예수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살아 계신 예수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재현되어야 하는 예수인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제자인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 묘사된 1세기 첫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이해를 접하면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멀리 표류하고 있는가를 진정으로 느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의 예수 신앙을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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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역사
게리 A. 앤더슨 지음, 김명희 옮김 / 비아토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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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2성전 이전과 이후로 죄의 의미와 용법이 바뀌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착상하여, 이러한 죄의 역사의 반전이 인류에게 가져온 위대한 진실을 숨막힐 듯 제시한다. 이렇게 죄에는 역사가 있으며, 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성경의 이념을 실행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저자에 따르면 죄는 막연한 실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이며, 누가 죄를 범하게 되면 실체가 있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 사람의 등에 짐을 지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사람의 손에 오염될 수도 있고, 빚이 생길 수도 있다. 이렇게 죄가 만들어 낸 실체는 그것과 씨름하여 처리할 때까지 죄를 범한 사람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과의 갈등과 고뇌를 만들어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은 오염된 손을 깨끗하게 하거나, 짐을 벗거나, 빚을 청산함으로써 면죄를 받아야 한다(20-21p).

 

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죄와 용서의 개념이 달라진다. 오늘날 죄를 용서받는다는 개념은 죄를 빚으로 보는 이미지에서 왔으며, 주로 제2성전 이후에 대중화된 죄의 개념에서 왔다. 이렇게 죄를 무엇으로 표현하는가, 죄의 배경에 흐르는 내러티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인간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구성 요소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서 레위기의 속죄일/ 1성전 시대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2성전 시대를 비교해보면, 죄의 개념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1성전 시대에 죄는 하나의 짐이었고, 짐으로서 죄는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한 후 광야로 보내었다. 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없애는 의식에는 속죄 염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 하나하나의 어깨에 얹힌 죄라는 물리적 실체를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24-25p). 하지만 제2성전 시대에 죄는 빚의 이미지를 입게 되었고, 죄는 탕감 받아야 하는 빚이며,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빚을 탕감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서 우리 빚을 탕감해 주소서”(6:12 KJV 참조)라고 기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 탕감 받은 자로서, 이웃의 빚 또는 죄도 탕감해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18:23-35).

 

저자는 이러한 죄의 역사의 변천을 제1성전 시대에서 제2성전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히브리어의 변화에 착상하고서 더욱 흥미진진한 성경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고 들어간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죄의 역사를 모세오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예레미야, 다니엘 등 예언서 등을 관통하면서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서에 이르기까지, 죄가 인류에게 가져온 그리고 인류가 감당할 수 없었던 형벌의 폐해와 채무 변제의 의무를 하나님은 어떻게 합법적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청산하는데 성공하셨는지를 풀어나간다.

 

구약성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이 책에 대한 논평에서 놀랍다. 눈을 뗄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이 책은 참으로 놀랍다. 죄의 역사에 따른 예수의 죽음과 부활, 속죄 규정, 자선 행위, 면벌부에 이르기까지 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을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다. 죄와 관련된 성서적, 종교적, 신학적 주제의 발전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엄청난 몰입감과 흡입력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며, 결국 죄를 죄답게 이해하지 못한 지난날의 죄를 고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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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정근두 옮김 / 복있는사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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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해설교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마틴 로이드 존스가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서 설교에 대해서 강의한 내용을 모두 16개의 장으로 싣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이 강의를 하기 전 42년간 웨스터민스터 채플을 진동시켰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의 진수가 오롯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오늘날 교회에 가장 긴급하게 필요한 일(21p)설교이며, 설교라야만 한다는 그의 육성이 생생하게 들릴 뿐만 아니라, 그가 현장에서 철저하게 몸소 경험하며 체득했던 설교의 위대성, 설교의 필연성, 설교의 적시성에 대한 강력한 외침에 죽어가는 설교자의 심장 마저도 다시금 힘차게 뛰게 할 만큼 강력한 자극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밝히며 그 유일한 해결책 내지 치료책을 밝히는 것이야 말로 교회의 주된 임무(47p)이며, 그 임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설교 외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설교에는 설교문(sermon) 내지는 메시지, 즉 전달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흔히 설교(preaching)라고 불리는 설교행위, 즉 전달하는 행위가 있습니다.(94p)라고 말함으로써, 설교에는 설교문 작성과 설교행위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설교문이란 하나님에게서 받은 메시지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글로 작성하는 행위이다. 설교문 작성부터 이미 설교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설교문 작성만으로는 설교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이후에 설교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설교행위엔 설교자의 됨됨이와 인격(95p)이 가미되고, 성령의 천둥과 번개(96p)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야말로 청중들을 하나님의 임재 폭풍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한다(162p). 이런 것이 설교이며, 이런 설교여야만 한다는 저자의 외침은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의 영혼을 뒤흔들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설교의 대상인 청중들에겐 케리그마로서 전도설교와 디다케로서 양육설교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102p), 저자 자신은 주일 오전에 전도설교를, 주일 오후에 양육설교를 하고 있다고 밝힌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녔을지라도 개인적으로 회심하지 않은 영혼이 있기 마련이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으로는 성경을 받아들였음도,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만난 일이 없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248p). 그리고 저자 자신도 명목상 신자 상태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말을 했다(241p). 그렇기 때문에 죄를 깨우치고 개인의 필요를 보여줌으로써 진정으로 회개케 하는 설교, 중생에 대해 말해주는 설교(241p)가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저자는 설교자의 준비사항으로, 설교자로서의 소명 점검 및 확신, 그리고 자기 훈련과 경건한 삶, 그리고 기도의 충동을 느낄 때마다 기도하기를 힘쓸 것을 권면하고 있으며(277-279pp), 영성과 지성을 위하여 부단히 독서할 것을 추천하면서(283-293pp) 또한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의 전기나 자서전(277p)을 읽을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이 모든 설교의 요소 가운데, 설교를 설교답게 만들며, 진정한 설교를 가능케 하며, 오늘날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성령의 나타나심을 꼽았다(522-524pp). 설교의 준비부터 설교의 마무리까지 성령의 기름부음과 나타나심이 없다면, 설교는 인간의 지적인 유희에 불과할 것이지만, 처음부터 성령과 함께 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의의 병기이며, 영혼의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갬으로써 영혼을 살리며 고치는 성령의 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만 설교는 성령의 설교가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설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은 모든 설교자로 하여금 자신을 설교자로 불러 주신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하며, 이처럼 영광스러운 설교사역으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며, 이제 다시는 과거와 같은 설교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성령의 설교를 하고픈 강력한 동기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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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 See In 시인특선 35
강기수 지음 / 문화발전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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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인의 날숨(비움)과 들숨(채움)의 결정체다. 시에는 시인의 눈으로 인생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통해서 관조(觀照)하는 대단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게다가 영성과 지성의 순수체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수밖에.

 

피곤에 지친 현대인들이 시인과 더불어 날숨과 들숨의 미학을 부둥켜안을 때, 영혼은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시인의 글말과 더불어 묻고, 쉬고, 느끼고, 감동하게 될 때, 우리 속에 침전된 낡은 것은 비워지고, 신선하고 새로운 통찰력으로 채워지는 기적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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