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기도 -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코 안전한 길이 아니다
크레이그 그로쉘 지음, 유정희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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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누는 사랑의 속삭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정말 기도를 단단히 오해한 것이다. 그런 기도는 정말 안전한 기도요, 하나님께 그저 보험을 드는 기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제 단순히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소통을 넘어서, ‘나를 살피시고, 내 마음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나를 시험하여 보소서라고 기도해보라고 초청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으로 보여주시는 대로 살기 위해 용기를 발휘해보라고 도전한다. 어린 독수리가 안전한 둥지를 벗어나 저 높고 푸른 창공을 날기 위한 격렬한 몸짓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만일 위험한 기도의 힘을 알고, 나의 안전한 기도들에 계속 넌더리가 난다면, 자기 중심적인 신앙을 벗어나 타인중심적인 신앙으로 도약하고 싶다면, 기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 위험한 기도를 시작할 때이다. 이것은 영혼을 정결케 하고, 마음을 고치며, 영원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우선시하는 마음과 줄곧 싸워 왔으며, 이것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영적 결함이라는 말을 했다. 목회자로서, 사역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분노하고, 다른 성도에게, 심지어 아내에게 화를 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순간, 왜 화를 냈을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을 위한 분노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을 하나님께 받은 인정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위신과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나를 깨뜨리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저 하나님께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생명을 보호해주시고, 더 많은 것을 달라고 구하는 대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깨뜨려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으려면 나 자신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손으로 완성하실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보려면 우리는 하나님께 굴복해야 한다.

 

우리가 설교하는 복음의 핵심은 와서 죽으라는 초청이다. 그런 복음을 설교하기 전에 목회자부터 죽어야 하지 않는가? 자신의 죄들에 대해서 죽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죽고, 육신과 자아에 대해서 죽고, 두려움에 대해서 죽고, 또 자신의 죄성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그것은 편안하고, 미적지근하고, 파트 타임의 헌신이 아니다. 주님의 뜻에 철저히, 담대하게 굴복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나를 보내소서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보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하실 수도 있다. 정말 엄청난 일, 아니면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순종의 기도는 결코 쉬운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경외심이 없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은혜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렇다. 위험한 기도는 처음부터 은혜였다.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보고, 주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는 훈련이다. 은혜는 나를 바로 세워줄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시는 모습대로 세워줄 것이다. 나를 바로 세우는 기도, 그것이 바로 위험한 기도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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