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이성형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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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찬가]로 잘 알려진 비올레따 빠라. 그녀는 농촌이 도시의 팽창에 움츠려들고 있던 1950년대에 이 남부 농촌의 노래를 채집하여,미국의 팝이나 멕시코 란체라 음악이 휩쓸고 있는 싼띠아고의 방송가에 잔잔한파문을 던졌다. 우리 칠레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살아 있구나!‘ 사람들은 놀랐다. 민속의 재발견, 그리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음악의 생산, 그로 인한
‘칠레인 됨에 대한 새로운 자각, 이 모든 것은 적어도 비올레따 빠라가 아니면시작되지 않았을 작업이었다. 그런 점에서 빠라는 음악적으로 ‘칠레인 됨을 표현한 최초의 가수이자 작곡자 겸 시인이었다. 빅또르 하라의 말대로 뒷세대가붙인 것은 그녀가 시작한 작업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그녀는 문을 열었고 성공했지만, 성공을 확인하기 전에 먼저 떠났다. 프랑스인들은 그녀를 알아주었지만, 칠레사람들에겐 아직 일렀던 것이다. 그녀는 평생 돈에 쪼들렸고, 주변의무지와 편견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이 자그마한 여인의 신경은 이를 버틸 만큼무디지 않았다.

「생의 찬가는 자신의 생에 대한 회한을 깊이 담고 있는 유서이자, 차라리 엘레지에 가깝다. 권총 한방으로 그녀는 자신의 절망을 조용히 끝냈다. 나는 비가주룩주룩 내리는 앙꾸드의 선창가를 거닐며 그녀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기억해내곤, 날카로운 금속성 목소리가 뿜어내는 불같은 정열과 그녀 특유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우리에겐 왜 이런 불같은 가수가 남아 있지 않은 걸까?

삶에 감사한다네, 내게 참 많은 것을 주었거든
내가 이를 열어보니 두 개의 빛이 있더군
난 검은색과 흰색을 확실히 구분한다네
하늘 높이 별빛 가득한 심연 속에서도
사람들의 무리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확실히 찾을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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