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에게 그 달콤한 설탕이 제공되지 않았더라면,아마도 커피, 초콜릿, 차는 대중 소비재가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슬람의 수피들이나 마시는 씁쓸한 커피, 아스텍의 왕족들이 들이킨 시큼한 초콜릿, 남부 중국인들이 마시는 차를 유럽인들이 어떻게 마실 수 있었겠는가?
사실 18세기에 커피와 초콜릿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게 되자 유럽의 세탕 소비량은 세 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심지어 영국인의 끽다(茶) 습관도 설탕이 없었다면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들의 끽다 습관은설탕이나 밀크를 듬뿍 넣은 달콤한 차를 마실 수 있음으로써 가능했다. 설탕은 칼로리를 보충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설탕은 새로 탄생한 미각자본주의(味覺資本主義, taste capitalism)의 진정한 총아였다.
유럽인들의 미각을 해방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설탕을 만든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서부해안에서 잡혀온 흑인노예들이었다. 노예선주들은 럼주나 총, 화약을 주고 추장들로부터 노예들을 샀다. 이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인들은 좁디좁은 노예선에 실려 한 많은대서양을 건넜다. 흑인들이 흘린 엄청난 눈물과 고통을 생각한다면, 설탕이 그토록 달콤할 수 있을까? 흑인들이 뿌린 엄청난 땀을 생각한다.
면, 커피를 노닥거리며 그토록 즐길 수 있을까? 흑인노예들은 농장의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착취와 망각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래서 그들은 고향의 악기를 만들어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고, 춤을 추었다. 에로틱한 룸바 음악에서 현란한 삼바 댄스에 이르기까지 아프로 라틴아으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아프리카 흑인들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세계를 향해서 아낌없이 ‘퍼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