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연습
박정현 지음 / 오블리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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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방식으로 독서의 희열을 다시 느끼게 하는 소설.


어떻게 이토록 담담하게 소설을 풀어갈 수 있었을까.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각자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태어난 직후부터,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를 그 아픔은


타의에 의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차곡차곡, 켜켜이 쌓여온


체념이 묻어난 상처었다.


“어떤 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후회를 배운다.”(p.7)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분위기로 이어지지만

그 잔잔함 속에는 분명한 힘이 있었다.

철학적인 사유를 담고 있는 질문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여운을 만들어낸다.


소리를 높이지 않기에,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


p.25


둘 사이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언어가 쉬는 동안 더 많은 말을 건네는 침묵.


*



p.59

"레테는 망각의 강. 고통을 그대로 붙들지 않도록 잠시 내려놓게 해 주는 쪽. 반대로 므네모시네는 기억의 강. 사라지지 않게 천천히 이름을 불러주는 쪽, 숨을 세어주듯 이어 가는 방식. 결국 무엇을 잊고 무엇을 남길지, 그 순서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이야기야. 급하게 선명해지는 걸 경계하고, 흐리지만 오래 남기는 법을 말해."


*



p.154


숨이란, 가만히 내쉬고 다시 들이쉬는 단순한 리듬으로 세워져 있다. 우리의 하루도 그 리듬을 닮아야 한다. 큰 약속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 우리를 지탱한다. 그 반복 하나하나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지 않되, 그 반복을 성실히 수행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일. 이것이 남아 있는 자의 최소한의 품위다.


*



p.156

당장은 제목 없는 하루를 살아도 좋다. 제목 없는 하루가 쌓여 문장이 되고, 문장들이 모여 한 권의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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