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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의 빛을 따라 ㅣ 암실문고
나탈리 레제 지음, 황은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평점 :
평생을 함께한 남편의 죽음을 겪은 뒤, 나탈리 레제는 그 상실과 애도를 차분히 기록했다.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과 감정, 그리고 상실이 남긴 공허와 흔적들을 조용하면서도 치열하게, 글로 붙잡아 두려는 시도가 느껴진다. 문장들은 때로 부서지고 흩어지지만, 그 부자연스러움 속에서 추억과 공허함의 잔향들이 곳곳에 남는다. 흩어져 있으면서도 슬픔이라는 말로 모두가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라진,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이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기려는 절박한 기록의 의지가 곳곳에 스며 있다. 죽음이 남긴 공허와 침묵, 슬픔의 무게를 그대로 끌어안으며 먹먹한 마음으로 애도의 자리를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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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
이게 마지막이란 것을 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마지막이라는 것을.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만 할 테지만, 거기에 의미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다음엔? 매장. 의식들. 나는 너에게 입 맞추었고, 더듬거리며 속삭인 말들은 마치 접힌 쪽지처럼 너의 피부 위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네 눈꺼풀 위로 내 눈물이 재빨리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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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
아마도 두려워하는 대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고통을 진정으로 치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사랑으로 공포를 다스리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사랑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만 가지더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척만 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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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55
나와 떨어져 멀리 낯선 곳에라도 '있는' 편이 낫다고. 살아만 있다면, 아아, 살아 있기만 하다면, 거리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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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9
...말들은 금가루를 뿌린 옻 같은 무언가를 분비해서 파괴되었던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말들은 산산이 부서진 내 영혼의 *킨츠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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