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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평점 :
우리는 흔히 건축을 '공간을 설계하는 일'로 이해하지만 때때로 어떤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 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건축을 매개로 삶과 기억,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탐색하는 특별한 작품입니다.
건축가가 쓴 소설, 공간이 주인공이 되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저자가 실제 건축가라는 점입니다. 단순히 배경으로 건축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 자체가 이야기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됩니다.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이 섬세하고 사실적이어서 독자도 함께 그 공간을 탐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 책 속에 삽입된 건축 도면과 그림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분위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문장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한 장면을 실제 도면과 대조해 보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인물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아 책장을 넘기는 내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줄거리
이야기의 주인공인 건축가 뤼미에르는 파리에서 오래된 건물을 찾다가 우연히 독특한 구조의 집을 발견합니다. 낡고 버려진 듯 보이지만, 어딘가 특별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계약하려면 집주인 피터를 직접 만나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뤼미에르는 스위스로 향하고, 그곳에서 피터가 요양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피터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병원의 설계 또한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병원 원장 크리스 부인을 통해, 이 병원이 피터의 아버지 프랑수아가 설계한 건물이며, 피터가 남긴 서한 속에는 "이 병원의 비밀을 밝혀라"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건축가로서의 직감과 호기심이 작용한 뤼미에르는 결국 병원에 남아 숨겨진 공간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차 밝혀지는 건축의 비밀과 그 속에 얽힌 감정들. 처음에는 단순한 미스터리처럼 보였던 이야기가 점차 깊은 울림을 전하며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공간이 기억하는 것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실제로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파리 곳곳의 오래된 집을 조사하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2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인 사연들이 쌓여 하나의 소설이 되었고 결국 공간이 곧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독특한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머무는 공간 역시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이 스며든 장소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후반부에 밀려오는 감동
이 소설은 초반부에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예상치 못한 감정의 파도가 밀려옵니다. 단순한 공간 탐색이 아니라 그 공간이 간직한 사연들이 하나씩 밝혀질 때 느껴지는 감동이 더욱 깊게 다가옵니다.
원래도 소설에 감정 이입을 잘 하는 편이긴 하지만 후반부를 읽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감정이 밀려와 눈물을 참아가며 읽었습니다. 건축이라는 물리적이고 형식적인 구조물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담긴 삶의 흔적을 따뜻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깊이 있는 이야기, 오랫동안 남는 여운
이 책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닙니다.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주인공과 함께 하나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초반에는 건축적 요소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탐색 과정이 긴장감을 높이고,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의 깊이가 더해지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건축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며, 인물의 감정선과 서사가 유려하게 맞물려 있어 문학적으로도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스토리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기에 여운이 오래 남는 소설을 찾는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유튜브 리뷰: https://youtu.be/nuwoAvtCs9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