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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요양보호 대백과 - 식사.환복부터 목욕.용변까지, 요양보호 이럴 땐 이렇게
아사히신문출판 지음, 지비원 옮김, 요네야마 도시코 감수 / 부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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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체가 글과 함께 그림이 곁들여진 '친절한' 책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당장 필요한 책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책으로, 나이 든 어르신이 있을 때 뿐아니라, 예기치 않게 환자생활을 하게 된 가족이 있을 때 역시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을 통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행동, 말들이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어떻게 와닿는지도 알 수 있다. 


병이나 부상을 치료하고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와 달리 '요양보호'는 목욕, 식사, 용변 등 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돕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나이든 부모나 배우자를 돌보는 내용을 안내하며, 국내 사정에 맞게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한다. 


요양보호를 할 때에는 말이 너무 없거나, 말이 많고 빨라도 곤란하며, 쉬운 말이라도 대상자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오른쪽 무릎을 세워달라"는 말대신, 오른쪽 무릎을 만지면서 "이쪽 무릎을 세워달라"고 해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혼자 침대에서 내려오는 방법이나, 계단 오르내리기, 휠체어를 사용하는 법 등 생활 속 기본 활동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음식을 삼키기 힘들 때 보호자가 식사를 돕는 법, 거동을 못하는 어른의 목욕, 특히나 배설, 기도 폐쇄, 경련 등 난생 처음 겪어보는 생활 속 이런 저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그림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주 구체적이고, 쉽게 설명이 되어 있어 도움이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보호 대상자를 이해하는 마음이겠지만, 실제로 마음만으로는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더 많다. 특히나 요양보호사가 아닌 보통의 자식들이, 연로하여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초기의 증상을 보이는 부모를 돌볼 때는 더욱 난감한 상황이 많이 발생할 것이니, 미리 기초 지식을 공부해둔다면 좋을 것이다. 딱히 병이 있으시지 않아도, 연세가 많은 부모가 체력이 현저히 떨어져 동작이 어려워지지는 않았는지, 때때로 눈여겨 보는 게 좋겠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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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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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도, 장소도, 소설의 스케일도, 주인공의 성격도, 그리고 물론 줄거리도 다르지만, 이 책을 읽으며 펄벅의 "대지"가 생각났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과도 닮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그냥 "스토너"다. 희극도, 비극도 아닌, 결국은 감동적인 이야기다.  


익숙한 주인공이라고 느껴지는 건, 스토너의 성격이 평범하고 무던해서 그럴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고, 그에게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해 농사를 더 잘 지을 생각을 했지만, 운명처럼 문학에 빠져들었고, 영문과 조교수가 된다. 대학에서 만난 친한 친구 둘 중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고, 하나는 평생을 같이 하지만, 그리 대단한 우정을 나누지는 못한다. 첫 눈에 반한 여자에게 청혼을 했고, 홀린듯이 결혼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결혼이 실패작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이혼은 하지 않는다. 중년이 되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연애를 했고, 종신교수로 재직중인 대학에 그 소문이 파다해지자, 난처해진 여자가 그를 떠나는 것으로 연애 사건은 마무리된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평생 단 한 번의 사랑이 된다. 한 괴팍한 동료교수 때문에 학교 생활이 고달파졌고, 모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묵묵히 그것을 버텨낸다. 아내가 애지중지 키운 딸 그레이스는 스물 몇 살 나이에 임신을 해 집을 떠났고, 알코올 중독자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환갑이 넘어 은퇴 무렵에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그는 그렇게 삶을 마무리한다.  

사람들의 인생은 부분적으로 조금씩 닮아있고, 그 부분, 부분의 조합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지인과의 관계와 학교, 일, 종교, 사회에서의 생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일련의 과정 속에 누구나 아주 익숙한 순간을 체험하기도 하고, 누구나 자신만 겪는 특별한 고통과 쾌락의 비밀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가고, 저물어가는 것이다.  

정말 인상적인 소설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출처] [book] 스토너 |작성자 marianstory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면,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내면으로 숨어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동안 전부다 한층 더 힘들게 새로운 한계까지 자신을 혹사했다. (p.107)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鄕愁)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예전에는 연구실에서 은은히 빛나다가 사라져가는 풍경을 창문을 통해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캐서린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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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모두 불법입니다 - OECD 한국 대표부 비정규직, 프랑스 법정에 서다
최은주 지음 / 갈라파고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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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은주는 파리 7대학에서 인류학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에 OECD 한국 대표부에 '비정규직 행정원'으로 채용된다. 7년간 근무했고, 자신의 상관인 김용필(가명)로부터 폭언과 폭력을 당한 후 이를 외교본부에 보고하면서, 이를 빌미로 2012년 해고당하고 이에 소송을 제기한다. 


처음에는 '사내 폭력'에 대해서만 소를 제기하려 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그녀의 프랑스인 변호사가 '대표부가 야근수당을 월급 명세서에 올리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한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와 함께 '부당해고'에 대한 것까지 추가한다. 결국 그녀가 제기한 내용 중 '부당해고'와 '야근수당 현금 지급'에 대해서는 승소했지만, 애초에 발단이 된 '사내폭력'은 증거 부족으로 패소한다. 직접적으로 증인이 되는 단 한 사람인 동년배 한국인이 '자신은 목격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단지 진술을 거부할 뿐'이라며 증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 사실을 듣고 증언한 프랑스인 세 사람은 모두 OECD 한국대표부를 떠난다. 


어쨌거나 그녀는 4만 유로 정도의 배상금을 받게 되었는데, OCED 대표부는 '면책특권'을 이유로 배상금 지급을 몇 년 동안 미룬다. 지리한 기다림 끝에 저자는 2016년 3월,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OECD 사무총장, 사무차장, 각 회원국 대사를 수신 참조로 포함한다. 보름 후 OECD 한국 대표부에서 변호사를 통해 '합의'를 요청했고, 그 내용은 2만 유로 정도에서 끝내자는 것이었다. 무슨 용기에서였을까. 저자는 명분없는 합의를 거절했고, 마침 6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하게 된다는 소식에 이 사건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마음이 급해진 OECD 대표부는 결국 배상금 전액을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다. 


다시 얘기는 이어진다. 대표부에서는, 배상금 외에 4년간의 이자는 지급하기 어렵다면서, 최은주가 찾아가지 않은 4년 전 상여금이 이자 정도 금액은 되니, 그것으로 마무리를 종용한다. 이쯤되면 누구든 지친 마음에 두려움까지 겹쳐 받아들일 만도 한데, 돈의 액수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최은주는 다시 이를 거절한다. 결국 한국대표부는 배상금 전체에 4년 간의 이자까지 지급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오면서, "상대의 명예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 그 어떤 정보나 의견도 제3자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한다"는 합의서를 제시했고, 최은주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면서 다시 한 번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것이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책을 냈다. 한국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녀는 프랑스에서 '체류증'을 받고, 프랑스 법에 따라 세금을 내는 신분이었고, 따라서 '프랑스 노동법'이 노동자인 그녀를 보호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그렇더라도 그녀같은 강단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 권력의 횡포와 갑질, 특권 남용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변함없는 모양이다. 유럽 땅에서는 한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자가 OECD 한국대표부를 상대로 싸움을 해 이겨내고, 대한민국 땅에서는 촛불민심이 당연한 정의를 바로 세운 시점이다. 어떻게든 세상은 변화할 것이고, 변화해야만 하겠지만, 그게 그리 쉬울까 싶다. 


좋아하는 소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쥐'의 등장으로 시작된 페스트가 엄청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후 결국 물러가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사실, 도시에서 들려오는 환성을 들으며 리외(Rieux)는 이런 환희가 항상 불길한 징조였다는 걸 생각해냈다. 기쁨에 찬 군중들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페스트균은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가구나 옷 속에 잠들어 있다가, 방, 지하실, 큰 가방, 손수건, 서류더미 안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고, 어느 날,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안겨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것이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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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1 15: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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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부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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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가 50대 후반인 1966년에서 1967년 사이에 집필한 이 중편소설은 작가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다가, 1992년에야 잡지 지면에 소개되었고, 2013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몇 년 후인 2016년에 책으로 나왔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사르트르와 함께 소련을 여러 차례 방문한 후 쓴 소설이라, 당시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은퇴한 60대 부부 앙드레와 니콜은 앙드레의 전처와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마샤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간다. 이미 3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고, 다시 여행 삼아 가는 것이다. 앙드레와 딸 마샤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둘은 소련의 현재와 중국의 입장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종종 논쟁을 벌였다. "앙드레는 중국인들을 옹호했고, 마샤는 중국인들을 싫어하고 두려워했다. 앙드레는 마샤가 지지하는 공존의 정치를 어떻게든 비판했다."(p.87) 둘의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에, 반복되는 대화가 니콜은 지겨울 정도였다.. 

앙드레와 니콜은 한 달 정도 머물 계획이었고, 여행 초반에 셋은 즐겁게 지냈다. 니콜과 마샤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마샤는 니콜에게 예의를 갖추었고, 니콜도 마샤를 좋아했다. 하지만 젊은 마샤의 안내를 받으며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동안 니콜은 자신이 이제 나이 들었고, 계속해서 젊음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체중이 무너지는 것도, 조금만 걸어도 지치는 것도, 남들이 이제 자신을 '무성(無性)'으로 대하는 것도 싫었다. 몸이 피곤하니 여행이 점점 지루해졌고, 오랜만에 만난 딸과 시간을 보내는 남편도 못마땅해졌다. 그리고 급기야 사소한 오해가 생겨 앙드레와 니콜은 말다툼을 벌인다. 여행지에서의 말다툼은 상대방과 단절된 느낌마저 들게 했다. 니콜은 "마치 그를 영원히 잃은 것 같았다."(p.102) 

모스크바에서의 오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오해였다. 그건 낯선 곳이었기 때문이고, 사소함이 서운함으로 느껴질 만큼  주인공들이 나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20대나 30대에 읽는 것과, 그 이후 더 나이들어 읽는 것이 다를 것 같다. 어느 순간 주인공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性)"(1949)이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서적이라는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책 속의 말은 잘 알려져 있다. 작가이면서 철학자인 그녀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남겼다. 이 소설의 중요한 축도 '노화'다. 이외에도 어머니의 병과 임종을 지켜보며 쓴 자전적 소설 '죽음의 춤'이 있고 불멸의 인간이 등장하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Tous les hommes sont mortels"라는 긴 소설도 있다. 소설은 아니지만, 늙음에 대해 다룬 "노년La Vieillesse"이라는 책도 썼다. 그녀는 78세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고, 평생의 연인인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것입니다. 


[...] 니콜은 다시 창가로 갔다. 광장, 벤치에 앉은 사람들, 오후의 단조로운 빛 속에서 모든 것이 우중충해 보였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었다. 시간이 매우 빠르게 지나가는 동시에 매우 느리게 흐른다는 건 끔찍했다. - 이건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니콜은 자기가 가르칠 학생들만큼이나 어린 나이에 읍 단위 고등학교에 부임했다. 당시 그녀는 머리가 잿빛인 나이 든 선생들을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휙! 그녀 자신이 나이 든 선생이 되었고, 그다음엔 교사직을 그만둬야 했다. [...] 시간이라는 대양 속에서, 그녀는 새로운 파도들이 와서 부딪히는, 닳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바위였다. 그런데 이제는 밀물이 그녀를 휩쓸어가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휩쓸어갈 터였다. 슬프게도 그녀의 인생은 퇴각하고 있었다. 시시각각 그녀에게서 물기가 빠져갔다. 설탕이 녹기를, 추억이 잠잠해지기를, 상처가 낫기를, 지루함이 흩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두 리듬 사이의 기묘한 단절. 하루하루가 내게서 빠르게 달아나고, 나는 그 하루하루를 따분해하고 있어. (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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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아직은 홍세화 씨가 파리에 있을 때, 한국에서 출간된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저자는 책을 통해 '똘레랑스'라는 말을 한국에 전했다.










1999년, 여전히 파리에 머물고 있는 홍세화 씨의 두번째 책.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형식과 권위가 중요치 않은 나라이고, 각자의 개성이 중요한 나라,  ‘질서’보다 ‘정의’가 앞서는(즉 ‘사회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나라다. 프랑스 역사가인 쥘 미슐레는 “영국은 제국이고, 독일은 민족이며, 프랑스는 개인이다.” 라고 했다. 


이와 관련한 사르트르와 드골 대통령의 일화가 소개된다. 2차대전  후 알제리가 독립을 외쳤을 때, 프랑스에서는 공산당 등 좌파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식민지 유지를 지지했다. 이 때 사르트르는 식민지의 반인간성과 반역사성을 강하게 비난하며 알제리 독립자금 전달책으로 나섰는데, 이는 반역행위에 가까웠다. 이에 드골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놔 두게. 그도 프랑스야!”(p.44)


홍세화 씨는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왕따’ 현상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책이 출간된 게 1999년이란 걸 생각하면 십 수 년 넘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10년 후, 또 10년 후는 어떨지 암담해진다.  


왕따란 결국, “너는 우리가 아니야!”라는 주장에서 비롯되는 행태이다. 반역행위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사람까지 ‘그도 프랑스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왕따가 설 자리는 없다. (p.45) 



홍세화 씨가 한국에 정착할 즈음인 2002년에 나온 책,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에는 ‘사회 귀족’이라는 계급이 있다. 사회 명사나 사회 지도층쯤 되는 이들, 신문 동정(動靜)란이나 부음란에 소개되는 이들이다. 


프랑스에도 국가의 공공기관 부문을 장악한 ‘국가귀족’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귀족은 사회 모든 부문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더 귀족다운 귀족이다. 귀족은 본디 종신이라, 정형근 같은 이는 서울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귀족의 반열에 올라 이제 평생 귀족으로 남을 예정이다. ‘이문열 책 반납운동’을 이끄는 부산사람 화덕헌에게 “당신 전라도 사람이지?”라고 묻는 이문열도 귀족 중의 귀족이다. 홍세화 씨는 이 견고한 ‘기득권의,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성채’를 하나하나 허물려고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책의 부제처럼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만약 진보신당에서 국회의원이 나오고, 그게 만약 홍세화 씨라면 그가 '사회 귀족'이 되는 건 아닌가? 그는, 유명인사이지만,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살고 있긴 하다. 여전히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진보를 지키려고 하는, 그리고 '연대'하려고 하면서, 대한민국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2003년에 나온 "빨간 신호등"


 







이 책은 홍세화 씨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묶은 것이다. 때는 김대중 정권이고, 정치인 노무현이 보수세력으로부터 ‘좌파 정치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다. 진보세력은 맥을 못추는 때였고, 신자유주의는 그 정체가 드러나기 전이다. 홍세화 씨는 프랑스 망명생활을 끝내고 2002년 귀국했으니, 이 칼럼들은 빠리에서 시작하여 서울에서 마무리한 것이다.

 

 

그는 ‘사회정의를 돌보지 않은 경제성장’을 경계하며, 따라서 무질서를 가져올지라도 파업노동자의 행동을 지지한다. ‘낙선운동’을 정치 회복을 위한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한다. 인권과 사회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소수파인 동성애자를 인정한다. 또한 보수세력의 지역주의를 혐오하고, 조선일보는 반대, 공기업의 사유화 역시 반대한다. 


프랑스라는 선진국가에서 수십 년을 살았기 때문인지 그의 눈에 이 땅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못마땅하다. 그건 결코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인권과 사회 연대를 생각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 차이 때문이다. 2003년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책 속 사회에서 조금은 벗어났는가? 어느 면에서는 그렇고, 또 그렇지 않다. 시민 의식은 성장했지만, 기득권의 세력은 더욱 단단해진 것이다.




2009년 출간된 "생각의 좌표"









이 책은 그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 강연 원고 등을 정리하고 새 글을 보태 2009년에 내 놓은 것이다. 제목처럼 ‘생각의 좌표’를 제시하려고 한 것이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물음에,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사유하는 인간’으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펴낸 것이다.


‘내가 가진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저자는 1) 폭 넓은 독서 2) 열린 자세의 토론 3) 직접 견문 4) 성찰의 네 가지를 꼽는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소년기를 거치며 받는 교육 경험에 비추어 얼마나 많은 독서, 토론, 견문, 성찰기회를 갖게 될까? 그렇게 형성된 내 ‘생각’은 제대로 된 것일까?, 하는 것으로 책이 시작된다.

 

 

왜 우리는 만점이 100점일까? 다른 나라들처럼 20점이나 10점이 아니고? 점수 폭이 넓어야 학생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기 쉽기 때문이다. 유럽의 학생들은 가령 12점(20점 만점) 이상을 받으면 그 시험 영역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한다.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고,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에게 석차나 등급을 주지 않고 합격/불합격 기준으로 절대평가만 하기 때문이다. 10점이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점수이므로 12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은 그 시험 영역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 12점 이상을 받은 학생은 그래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연애하고 여행하고 자연과 벗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적성을 발견할 수 있고 적성에 맞아 흥미를 느끼는 교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우리 학생들은 88점이 아니라 99점, 심지어 100점을 받아도 그 시험 영역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한 등수라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1등을 하고 1등을 끝까지 지킬 때까지. 모든 학생이 모든 과목의 모든 시험 영역에서 끝까지 해방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

다른 나라 학생들이 책과 토론과 여행으로 사회와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때 우리 학생들은 오로지 시험 문제지만 만난다. 상상력이나 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인간과 사회와 만나지 않은 채 오로지 시험 문제지와 만나려고 공부하고 또 공부할 뿐인데? 그런데 도대체 무얼 공부할까? (p.32~33)



홍세화 씨는 내가 글을 쓸 때 생각하는 롤모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허투루 쓴 문장이 없고, 쓴 내용이 진심이라는 게 느껴진다. 마음에 없는 칭송을 하지 않고, 괜히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일부러 꾸미지도 않고, 쓸데없이 공격하는 법도 없다. 그의 책 중에 괜히 읽었다 싶은 게 있었나? 없다


홍세화 씨는 20여 년의 프랑스 망명생활을 정리하고 2002년 영구 귀국하여 한겨레 기획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격월간지 “말과 활”의 발행인, 진보신당(2015년 10월 현재 노동당) 대표를 지냈다. 2015년 현재 노동당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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