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아직은 홍세화 씨가 파리에 있을 때, 한국에서 출간된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저자는 책을 통해 '똘레랑스'라는 말을 한국에 전했다.










1999년, 여전히 파리에 머물고 있는 홍세화 씨의 두번째 책.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형식과 권위가 중요치 않은 나라이고, 각자의 개성이 중요한 나라,  ‘질서’보다 ‘정의’가 앞서는(즉 ‘사회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나라다. 프랑스 역사가인 쥘 미슐레는 “영국은 제국이고, 독일은 민족이며, 프랑스는 개인이다.” 라고 했다. 


이와 관련한 사르트르와 드골 대통령의 일화가 소개된다. 2차대전  후 알제리가 독립을 외쳤을 때, 프랑스에서는 공산당 등 좌파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식민지 유지를 지지했다. 이 때 사르트르는 식민지의 반인간성과 반역사성을 강하게 비난하며 알제리 독립자금 전달책으로 나섰는데, 이는 반역행위에 가까웠다. 이에 드골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놔 두게. 그도 프랑스야!”(p.44)


홍세화 씨는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왕따’ 현상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책이 출간된 게 1999년이란 걸 생각하면 십 수 년 넘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10년 후, 또 10년 후는 어떨지 암담해진다.  


왕따란 결국, “너는 우리가 아니야!”라는 주장에서 비롯되는 행태이다. 반역행위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사람까지 ‘그도 프랑스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왕따가 설 자리는 없다. (p.45) 



홍세화 씨가 한국에 정착할 즈음인 2002년에 나온 책,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에는 ‘사회 귀족’이라는 계급이 있다. 사회 명사나 사회 지도층쯤 되는 이들, 신문 동정(動靜)란이나 부음란에 소개되는 이들이다. 


프랑스에도 국가의 공공기관 부문을 장악한 ‘국가귀족’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귀족은 사회 모든 부문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더 귀족다운 귀족이다. 귀족은 본디 종신이라, 정형근 같은 이는 서울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귀족의 반열에 올라 이제 평생 귀족으로 남을 예정이다. ‘이문열 책 반납운동’을 이끄는 부산사람 화덕헌에게 “당신 전라도 사람이지?”라고 묻는 이문열도 귀족 중의 귀족이다. 홍세화 씨는 이 견고한 ‘기득권의,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성채’를 하나하나 허물려고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책의 부제처럼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만약 진보신당에서 국회의원이 나오고, 그게 만약 홍세화 씨라면 그가 '사회 귀족'이 되는 건 아닌가? 그는, 유명인사이지만,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살고 있긴 하다. 여전히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진보를 지키려고 하는, 그리고 '연대'하려고 하면서, 대한민국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2003년에 나온 "빨간 신호등"


 







이 책은 홍세화 씨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묶은 것이다. 때는 김대중 정권이고, 정치인 노무현이 보수세력으로부터 ‘좌파 정치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다. 진보세력은 맥을 못추는 때였고, 신자유주의는 그 정체가 드러나기 전이다. 홍세화 씨는 프랑스 망명생활을 끝내고 2002년 귀국했으니, 이 칼럼들은 빠리에서 시작하여 서울에서 마무리한 것이다.

 

 

그는 ‘사회정의를 돌보지 않은 경제성장’을 경계하며, 따라서 무질서를 가져올지라도 파업노동자의 행동을 지지한다. ‘낙선운동’을 정치 회복을 위한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한다. 인권과 사회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소수파인 동성애자를 인정한다. 또한 보수세력의 지역주의를 혐오하고, 조선일보는 반대, 공기업의 사유화 역시 반대한다. 


프랑스라는 선진국가에서 수십 년을 살았기 때문인지 그의 눈에 이 땅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못마땅하다. 그건 결코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인권과 사회 연대를 생각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 차이 때문이다. 2003년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책 속 사회에서 조금은 벗어났는가? 어느 면에서는 그렇고, 또 그렇지 않다. 시민 의식은 성장했지만, 기득권의 세력은 더욱 단단해진 것이다.




2009년 출간된 "생각의 좌표"









이 책은 그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 강연 원고 등을 정리하고 새 글을 보태 2009년에 내 놓은 것이다. 제목처럼 ‘생각의 좌표’를 제시하려고 한 것이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물음에,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사유하는 인간’으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펴낸 것이다.


‘내가 가진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저자는 1) 폭 넓은 독서 2) 열린 자세의 토론 3) 직접 견문 4) 성찰의 네 가지를 꼽는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소년기를 거치며 받는 교육 경험에 비추어 얼마나 많은 독서, 토론, 견문, 성찰기회를 갖게 될까? 그렇게 형성된 내 ‘생각’은 제대로 된 것일까?, 하는 것으로 책이 시작된다.

 

 

왜 우리는 만점이 100점일까? 다른 나라들처럼 20점이나 10점이 아니고? 점수 폭이 넓어야 학생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기 쉽기 때문이다. 유럽의 학생들은 가령 12점(20점 만점) 이상을 받으면 그 시험 영역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한다.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고,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에게 석차나 등급을 주지 않고 합격/불합격 기준으로 절대평가만 하기 때문이다. 10점이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점수이므로 12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은 그 시험 영역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 12점 이상을 받은 학생은 그래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연애하고 여행하고 자연과 벗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적성을 발견할 수 있고 적성에 맞아 흥미를 느끼는 교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우리 학생들은 88점이 아니라 99점, 심지어 100점을 받아도 그 시험 영역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한 등수라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1등을 하고 1등을 끝까지 지킬 때까지. 모든 학생이 모든 과목의 모든 시험 영역에서 끝까지 해방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

다른 나라 학생들이 책과 토론과 여행으로 사회와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때 우리 학생들은 오로지 시험 문제지만 만난다. 상상력이나 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인간과 사회와 만나지 않은 채 오로지 시험 문제지와 만나려고 공부하고 또 공부할 뿐인데? 그런데 도대체 무얼 공부할까? (p.32~33)



홍세화 씨는 내가 글을 쓸 때 생각하는 롤모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허투루 쓴 문장이 없고, 쓴 내용이 진심이라는 게 느껴진다. 마음에 없는 칭송을 하지 않고, 괜히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일부러 꾸미지도 않고, 쓸데없이 공격하는 법도 없다. 그의 책 중에 괜히 읽었다 싶은 게 있었나? 없다


홍세화 씨는 20여 년의 프랑스 망명생활을 정리하고 2002년 영구 귀국하여 한겨레 기획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격월간지 “말과 활”의 발행인, 진보신당(2015년 10월 현재 노동당) 대표를 지냈다. 2015년 현재 노동당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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