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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소주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25
안상학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안상학의 <안동소주>는 요즘 시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그의 시들은 6,70년대를 연상하게 하고 가난을 생각하게 한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는 젊은 시인, 하지만 난 그가 가진 맑은 정신이 좋다. 그의 시는 오랜 냄새가 난다. 냄새는 고소하고 향기롭다. 때론 코를 훌쩍거리기까지 하는 매움도 느낄 수 있다. 안동하면 난 사과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이 시집을 찾을 때도 몇번의 실수로 안상학의 '안동사과'라고 했었다.
사실 난 안상학 시인을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권의 시집을 읽은 지금 난 그를 반쯤은 안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진다. 아니 자랑하고 싶어진다. 소박하고, 외롭고, 정겨운 그의 문체가 좋아졌다. 예전에 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땐 난해한 문장이 성공한 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상학의 시는 어렵지 않다. 전혀, 누구라도 시에 문외한이라도 그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아픈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어린 날들을 꼼꼼히 사랑한다. 사랑해서 그래서 외롭고 죄스럽다.
돼지 오줌보를 차고 놀던 어린 안상학의 모습을 우린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가 그리워 하는 것은 사람의 끈적한 정이 아닐까 싶다. '딸에게'는 어린 딸 은서를 형편상 외할머니께 맡겨야 한는 아비로서의 마음이 잘 들어난 시로 대놓고 울수도 없어 밤짐승같이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는 부분이 좋았다. '보리밭'이라는 시는 때 이른 봄나비를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4행으로 짧지만 문장이 분명해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밖에도 가난함을 짊어지고 벙어리에게도 시집간 운명이라고 믿는 '납뜰 고모'나, 연탄가스에 체한 날을 홍역으로 기억했던 '모랫골 이야기', 가족의 형상화를 나무로 비유한 그래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아부지, 형, 누이, 막내누이를 차마 보지 못하고 되돌아서다 마당에 다정하게 모인 아니 따로 떨어져 있지만 뿌리만은 하나로 연결되었을 거라고 믿는 나무들을 보고 돌아서는 시인을 난 안타깝게 바라본다.
메말라 가는 나의 정서에 안상학의 시가 주는 위력은 충분했다. 그간 덮어두었던 내 마음에 시 쓰기를 다시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된다.
8년 만에 시를 엮었다던 시인은 수줍어했다. 공소시효가 지난 시들이라고 너무도 현실적인 자신의 시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시인 자신이 자주 쓰는 말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시는 느끼고 깨달은 것을 그때그때 붙잡는 거라고 생각한다.
당분간 그의 시집을 표지가 닿도록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