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水巖 > 박수근 목판화전 - 갤러리 화수목


판화로 만나는 박수근, 가슴 절절한 포근함


'갤러리 화수목' 박수근 목판화전

소·여인 등 유화아닌 작품 신선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입력 : 2005.09.26 18:07 50' / 수정 : 2005.09.27 02:48 29'


▲ 두사람
가난해도 참으로 가난한 그림. 주저 주저한 듯한 칼 선이 참 솜씨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들여다 볼 수록 허연 종이에 검게 찍힌 게 전부인 목판화가 애절하고 슬프다. 박수근(朴壽根·1914~1965)의 판화 세계가 한 자리에서 펼쳐진다.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갤러리 화수목’이 ‘박수근의 목판화-가난한 은총’을 마련했다.

박수근 화백이 나무 판을 칼로 파고 종이에 직접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1점(제목 ‘탑’), 나머지 14점은 화백이 깎아놓고 간 목판으로 다시 찍어낸 ‘사후 판화’다. 얌전한 목련, 착한 소, 광주리 이고 가는 여인, 무릎 감싸고 길바닥에 앉은 사내들. 유화로 숱하게 봤던 낯익은 형상들이다.

 


 


▲ 네발소

그러나 저 높이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어버린 유화보다 어쩌면 더 ‘박수근’적이다. “더욱 서민적이고, 서정적이다”라고 전시 자문을 맡은 명지대 이태호 교수는 설명한다. 날카로운 칼 맛은 덜하다. 그러나 “시골 동구 밖에서 서민의 애환을 지켜본 당나무처럼 너그럽고, 어린 동생을 등에 업은 누나의 포대기처럼 포근하다”(갤러리 대표 김주란씨). 빼어난 전문 테크닉은 없다. 그러나 아름답다. 좀 어수룩해 보인다. 그것이 박수근 아닌가.

 

 

 


 


▲ 나목과 여인
박수근의 사후 판화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2차례 제작됐다. “화백 10주기던 지난 1975년 한 화랑에 나온 판화들은 서양화가 김종학씨가 제작했다”고 이태호 교수는 설명했다. 지금은 ‘설악산의 화가’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한창 목판화로 이름을 날리는 중이었다. “목판화의 달인답게 그림 맛 좋은 작품으로 남겼다”고 이교수는 평했다. 그리고 2002년,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다시 한번 박수근 사후 판화가 제작됐다. 이번에는 종이 작업으로 유명한 화가 함섭씨가 나섰다. 박수근의 목판에 먹물 발라 전통 한지에 찍어낸 함씨는 “작은 판화에 박수근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시골 농부의 선이 매력”이라고 전했다.

이태호 교수와 함섭씨 둘 다 박수근 판화 중 ‘기름 장수’가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고 입을 모았다. “머리에 인 광주리 위로 고개를 뺀 기름병 2개 좀 보세요.”(함섭) “‘기름 장수’의 두 다리를 보고는 바로 외할머니를 떠올렸습니다.”(이태호) 뼈 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장딴지, 그러나 삶 위에 단단히 디디고 선 강인한 다리다. 박수근 화백 장녀 인숙(인천여중 교장)씨는 “나무판 얻어다가 판화칼로 즐겁게 깎던 아버지가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유화가 토속적이라면, 판화는 참 아기자기하고 시적이지요. 그 중에서도 특히 ‘소’의 꿈벅이는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우직하고 순진하고 거짓말할 줄 모르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보통 한 판에 그림을 두 개씩 파서 종이에 찍고는 크리스마스 카드로 보내곤 했다”고 인숙씨는 전하지만 이제 화백의 판화는 다 흩어지고 이번에 15점이 모였다. 귀해서 더 애틋하고 소박해서 더욱 가슴 절절하다. 전시는 10월 6~30일. (02)515-3725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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